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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인터뷰] 김명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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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0-01-09 14:19 조회1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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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장 김명환 회원을 만나다 


한영인: 바쁘신 와중에 인터뷰 수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세교 회원분들께 근황을 전하며 간단한 인사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김명환: 제가 주인공이 된 기분이네요.(웃음) 올해 4월 서울대 중앙도서관장을 맡게 되어 바빠졌습니다. 서울대 도서관 직원이 130여명쯤 되는데 이 조직을 관리하는 일을 하다보니 세교포럼을 두번 빠지고 한번 나가고 그러는 것 같아요. 그래서 세교 회원들께 죄송스러운 마음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음주엔 꼭 나갈 거예요.(웃음)

한영인: 도서관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가장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곳이지만 사실 도서관장이 무얼 하는 자리인지는 저를 비롯한 다른 학생들도 잘 모를 것 같아요. 혹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시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김명환: 도서관에 대한 전반적인 관리를 다 하는 거죠. 지금 다른 대학 도서관들도 마찬가지만, 대학 예산이 동결되다보니까 도서관 도서 구입 예산이 줄어드는 문제가 있어요. 서울대의 경우 현상유지는 하고 있지만 다른 학교는 예산이 많이 줄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또 하나, 전자저널도 큰 문제예요. 서울대 자료구입비의 80% 가량이 종이책이 아닌 전자저널 구독료입니다. 그런데 엘스비어(Elsevier) 스프링거(Springer) 와일리(Wylie) 같은 해외의 거대 출판사이자 전자저널 업체들이 가격을 너무 많이 올리는 바람에 다른 대학에 비해 예산이 많은 서울대도 누적 적자가 생기고 그랬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도서관장으로서의 제 과제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도 몇년 전에 디비피아(DBpia) 문제가 벌어졌잖아요. 디비피아 역시 무리한 가격인상을 했다가 보이콧을 당했죠. 도서관이 이런 문제도 원만하게 해결해야 합니다. 혹시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최근에 ‘지식공유연대’라는 단체가 출범해 누구나 학술저널에 무료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오픈 액세스’(Open Access)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도 앞으로 그쪽을 공부해 학술지식의 유통 구조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전자저널들의 횡포가 심각해요.

한영인: 연구자 입장에서는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누가 챙기는 형국 같습니다.

김명환: 독일은 막스플랑크디지털도서관(Max Planck Digital Library)을 중심으로 ‘오픈액세스 2020’ 운동이 펼쳐지고 있는데, 그 덕분에 지금은 많이 나아지고 있어요. 미국 같은 경우는 캘리포니아대학의 열개 캠퍼스, 버클리부터 UCLA까지 엘스비어 보이콧 운동을 벌이고 있고요. 저널을 구입하지 않고 도서관 상호대차로 한다든가 다른 오픈액세스 저널을 이용해서 연구자들이 필요로 하는 논문을 찾아주는 식으로 말이죠. 상당히 힘든 일이지만, 엘스비어의 횡포를 막아야겠다고 해서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구매력 규모도 작아서 엘스비어 코리아가 아주 배짱을 내밉니다. 그래서 굉장히 상황이 힘들어요.

한영인: 도서관장이라고 하면 도서관 높은 곳에 책에 둘러싸여 신선처럼 고고하게 앉아 있는 이미지가 연상되는데 실제로 해결해야 할 현안이 무척 많은 자리네요. 다른 세교 회원님들께서도 김명환 선생님께서 왜 그리 자주 결석을 하시는지 충분히 이해하게 됐을 것 같습니다.(웃음) 선생님을 인터뷰하러 오기 전에 올해 신문에 쓰신 칼럼을 모두 찾아 읽고 왔습니다. 대략적으로 살펴보니 칼럼 주제의 70% 이상이 고등교육 개혁 문제일 정도로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드러내시고 계신데요, 한국사회에 여러 현안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특별히 고등교육 문제를 천착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김명환: 2010년 12월에 이명박정부의 국회가 예산안을 날치기로 통과시킬 때 ‘서울대 법인화 법’도 함께 통과됐어요. 아주 졸속이어서 굉장히 문제가 많았음에도 서울대 내부에서는 그다지 반발이 심하지 않았어요. 서울대가 한국에서 제일 좋은 대학이라는 자부심과 특권의식 때문인지 많은 교수들이 법인화에 대한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었거든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죠. 그때 서울대 법인화에 반대하는 공동대책위원회가 만들어졌고 교수, 노조, 학생이 함께 대학본부 앞에서 천막농성을 했어요. 또 점심시간마다 피켓 들고 캠퍼스를 돌아다니면서 구호를 외쳤고요. 저는 대학 졸업한 후로 처음 농성을 해본 건데 2010년 겨울이 정말 추웠어요. 밤새 천막에서 자는 건 아니었지만, 공대위 분들이 오전과 오후로 나눠서 그 추운 겨울에 천막을 지키고 그랬어요. 점심시간마다 피케팅하고 돌아다니면 점잖은 서울대 교수 체면에 저런 이상한 행동을 한다고 눈총도 받고 그랬죠. 2011년 봄에 학생들이 본부를 28일간 점거하기도 했는데 결국 잘 안됐죠. 그래서 법인화는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때의 문제의식 때문에 대학 개혁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한영인: 교육 문제를 주제로 한 선생님의 글을 읽다보면 문제의식이 고교체제 개편과 대학 내 학문 후속세대 지원 사업, 그리고 공영형 사립대 사업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폭넓게 포진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최근 여러번 강조하고 계신 것이 공영형 사립대 시범사업인데 그 사업의 중요성과 의의를 풀어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명환: 제가 공영형 사립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사립대학이 우리나라 전체 대학의 80%가 넘는데 그 사립대학을 제대로 대학답게 만들지 못하면 우리나라 대학에 희망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에요. 사립대학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공영형 사립대인 거죠. 이는 OECD 기준에 따르면 전체 운영예산의 50% 정도를 정부가 지원하는 대학을 말하는데, 저는 절반은 바라지도 않고 30%라도 지원한다면 대학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봅니다. 공영형 사립대를 주장하는 이유 중 하나는 지금 우리나라에 대학이 너무 많기 때문이기도 해요. 그것도 사실은 정부와 교육부가 잘못한 거죠. 90년대 중반부터 설립준칙주의에 따라서 대학을 막 늘려왔거든요. 인구가 줄어드는 걸 뻔히 보면서도 말이죠. 2024학년도부터는 입학자원이 12만 4천명이나 부족해요. 그러면 입학정원 3000명 정도의 대학을, 그러니까 서울대 정도의 대학을 40개 없애야 한다는 꼴인데 이 이야기를 제가 여러해 전부터 해왔거든요. 대학의 수를 줄여야 하지만, 그렇다고 대학을 그냥 망하게 방치할 수는 없거든요. 통폐합을 하면서도 교수와 학생과 지역사회에 피해를 주지 않고 대학이 대학답게 되는 방향을 찾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공영형 사립대밖에 답이 없습니다. 예컨대 작은 지방도시 하나에 A, B, C 대학이 있다고 가정하면 모두 학생이 줄어서 망하게 되는 ‘한계사학’이에요. 그런데 만약 A에서 교직원과 학생들이 힘을 모아 대학민주화운동을 통해 비리 소유주를 쫓아내고 대학의 민주적이고도 투명한 운영 기반을 만든다면, 그 대학을 공영형 사립대로 선정해 지원해주는 거죠. 그러면 B, C도 살아남으려면 저 방법밖에 없다며 대학민주화운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을 테고 이런 변화를 바탕으로 정원도 조정하고 서로 합칠 수도 있겠죠. 비리소유주가 전횡을 일삼는 대학들은 통폐합이나 구조조정이 불가능해요. 지금 대학의 공공성을 위한 원칙 정립도 필요하지만, 이 다급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공영형 사립대 말고는 대안이 전혀 없다고 봅니다. 사실 공영형 사립대는 문재인정부의 대선공약이었어요. 그런데 전혀 신경도 안 쓰고 여기에 투자도 안 하죠. 얼마 전 통과된 내년 예산안에서 공영형 사립대 예산은 또 ‘제로’입니다. 저는 또 신문에 칼럼을 써서 시끄럽게 떠들어야죠. 사실 정말 실망스러워서 밤에 잠이 안 올 정도예요.

한영인: 제가 오늘 선생님을 인터뷰하게 된 데는 젊은 학문후속세대의 입장에서 대학 교육 개혁 전반에 큰 관심을 두고 계신 선생님과 만나 좋은 말씀 나누라는 암묵적인 배려도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해 저희 또래에게 요새 가장 크게 와 닿는 문제 중 하나가 강사법입니다. 저를 비롯해 이제 막 박사과정을 수료한 또래들에게는 이 강사법이 사실 그렇게 달갑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실제로 주위를 보면 강의 자리에서 쫒겨난 친구들이 많거든요. 예전에는 강사들이 교수 자리를 얻지 못해 힘들었다면 제 또래 세대들은 강사 자리 얻는 것조차 하늘의 별따기처럼 되어버렸는데 학문후속세대들이 처한 이런 열악한 상황을 어떻게 풀어가면 좋을까요?

김명환: 촛불 이전에 추진되었던 강사법은 대학 현장을 엄청난 혼란에 빠뜨릴 법이어서 국회 통과 후에도 여러번 시행이 유예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죠. 그런데 지금 시행되는 강사법은 2017년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후에 이해관계자들이 모여서 몇달 동안 토론해서 합의를 본 법이거든요. 저는 모범적인 절차를 밟았기 때문에 잘되리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각 대학들이 강사법에 대응하기 위해 강좌를 줄이거나 강사를 해고하는 등의 일을 어마어마하게 했잖아요. 그걸 보는데 ‘내가 부패 비리 사학의 현실에 대해서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잘 모르는구나, 우리 대학들이 이렇게 지독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심한 충격을 받았어요. 여기에 간단치 않은 문제가 있다는 것도 절실하게 깨닫게 됐죠. 지금 강사법이 굉장히 어정쩡한 법이에요. 교원의 지위를 부여하긴 했지만 사학연금이나 공무원연금에 가입시켜주지는 않는 게 단적인 사례이죠. 그러니까 큰 원칙이 섰다면 그 원칙에 맞게 모든 제도를 정비해나가야 하는데 거기에 학문후속세대나 신진 박사들에 대한 배려가 없는 거죠. 대학도 그렇고 정부도 그렇고.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가 고민인데, 저는 정부가 재원을 투입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이전 정부에서도 그런 노력은 있었다고 봐요. 이명박정부 때 반값 등록금 이슈가 나왔고 그걸 실현하기 위해 박근혜정부도 노력한 거 아닙니까. 박근혜정부에서 4000억이 안 되던 국가장학금을 4조로 늘렸어요. 그런데 문제는 반값 등록금을 하면서 대학 등록금은 등록금대로 동결했다는 데 있어요. 지금 11년째 대학 등록금이 동결되고 있는데 대학이 등록금을 올리지 못하게 할 거라면 정부에서 고등교육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데 등록금은 계속 동결하면서 고등교육 예산은 제대로 늘리지 않고 있죠. 그러니 대학 당국도 강사법 시행에 따른 예산이 부담된다며 강좌를 마구 줄이고 강사를 자르는 거죠. 결국엔 재원 투입이 관건입니다.

한영인: 재원 투입이 필요하다는 말씀에 적극 동감하지만, 그게 잘 안 되는 이유 중 하나로 선생님께서도 여러번 말씀하신 지식 생산의 식민성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실제로 한국의 많은 대학원들이 미국 유학을 위해 거쳐 가는 코스처럼 되어버렸잖아요. 선생님께서는 인문사회과학 대학원에 진학한 학생들에게 월 150만원가량의 생활장학금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미국에서 사회학을 전공하는 한 선배는 1년에 4만 달러 정도를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 대학에서 그런 식의 과감한 투자를 할 의지와 역량이 있는지를 물으면 매우 회의적입니다.

김명환: 지식생산의 식민성은 심각한 문제죠. 고급 두뇌를 양성하는 것을 해외 대학에 맡긴다는 생각 때문에 지원을 안 하는 것도 분명 있고요. 서울대 교수들만 해도 그런 문제에 관심이 많지 않습니다. 어차피 외국 유학 갈 텐데, 하는 생각이 있어요. 사실 자연대나 공대를 보면 국내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외국 대학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친 후 거기서 교수가 되는 바람직한 사례도 있긴 하거든요. 그런데 인문사회과학 분야는 여전히 지식생산의 식민성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방금 미국 대학의 예를 언급하셨지만 지금 미국 대학도 어려움에 부딪히긴 마찬가지예요. 거기도 대학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고 있거든요. 제 전공인 영문학만 봐도, 예전엔 장학금 받고 영문학 박사과정에 가면 대개 과정을 마치는 2년간은 강의를 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재정상태가 어려워지니까 이제는 박사과정을 밟으면서도 바로 가르치게 만들어요. 근데 아무리 영어 잘하는 학생도 영어로 가르치는 건 힘들거든요. 영어 강의를 두개씩 하면서 수업을 두세개씩 듣다보니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죠. 미국도 이런 식의 대학원생 착취와 정규직-비정규직 교수의 격차가 굉장히 심해지고 있어요. 전반적으로 교육의 질적 수준도 하락하고 있는데 이건 전지구적인 문제이기도 해요.

한영인: 말씀을 듣고 보니 대학의 위기라는 게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다시 국내로 시선을 좁히면 최근 ‘조국 사태’를 통해 한국사회에서 입시가 계급의 재생산을 도모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라는 사실이 다시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었는데요, 이렇게 계급 재생산의 수단이 된 교육의 현실을 바꾸지 않고서는 어떤 식으로든 그 자원에 독점적이고 수월하게 접근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나타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 문제를 우리 사회가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요?

김명환: 이렇게 말씀드리면 제가 아주 19세기적인 맑스주의자로 규정당할 수도 있겠지만 계급이 철폐된 사회가 이상적인 사회라는 대전제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사회는 계급에 따라 교육기회의 차이가 심해서 불평등하다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죠. 서울대의 경우 국가장학금 대상이 되는 1분위부터 8분위까지의 학생이 25%도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어요. 4분의 3이 국가장학금 수혜 대상도 아닌 부자 학교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에 저도 놀랐습니다. 결국 저는 정공법을 택해야 한다고 봐요. ‘기회균형’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당장의 성적이나 점수는 좋지 않더라도 잠재력이 있는 학생에게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하죠. 관련해서 『창작과비평』 이번 겨울호에 김종엽 선생이 쓴 글이나 교육평론가 이범 선생이 여기저기서 밝힌 이야기는 경청해볼 만해요. 이범 선생은 SKY 대학 일인당 학생 교육비가 다른 대학에 비해 훨씬 높아서 모두가 거기에 가려고 하고, 그 학교들이 지니는 상징자본까지 더해져 경쟁이 심각해진다고 말하죠. 저는 다시 한번 공영형 사립대 이야기를 강조할 수밖에 없는데, 특히 4년제 대학보다도 전문대학을 주목해야 한다고 봐요. 우리나라에 138개의 전문대학이 있는데 그중에 국공립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이 소위 ‘흙수저’인 전문대학 학생들이 충분한 장학금과 좋은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도 정말 중요합니다. 또 4년제 대학의 경우엔 상위권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줘야 돼요. 기회균형을 늘려서 조금은 점수가 나쁘더라도 잠재력 있는 학생을 선발해서 좋은 대학에 입학해서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줘야죠. 입학만 시켜주면 되는 게 아니라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장학금도 충분히 줘야 해요. 이를 위해서는 중고등학교도 바뀌어야 해요. 세교연구소와도 인연이 있는 국어교사 이기정 선생이 얘기하는 교사별 수업, 고교학점제, 절대평가제 이 세가지가 함께 선행되어야 합니다. 무척 어려운 과제이지만, 점수로 줄 세우지 않아야 학생들의 다양한 잠재성을 평가할 수 있을 테니까요.

한영인: 보통 대선을 앞두고는 정치권에서 정책을 짜고 각종 플랜을 세우고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말하면서 교육 문제에 엄청난 관심을 갖는 척하는데 정말 중요한 건 정권을 잡은 측에서 얼마나 큰 사명감을 가지고 임하는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김명환: 그렇죠. 우리가 지금 돈이 없는 것도 아니에요. 그동안 결과적으로 불황인데도 계속 긴축정책을 썼다는 거 아녜요? 물론 제가 주장하는 걸 하려면 돈이 들긴 합니다. 제가 판단하기엔 매년 파격적으로 예산을 늘려서 한 4~5년 안에 3~4조 늘려야 하거든요. 투자하면 그만큼 결과가 나오는 정책들이니까 이 정도는 늘릴 만하죠. 과감한 투자에 기반을 둔 정책을 써야 하는데, 청년정책이나 저출산 대책도 마찬가지지만 결국 찔금찔금 생색만 내는 것이 문제라고 봅니다.

한영인: 한편 교육 문제 외에도 한반도 평화 정착과 분단체제 극복이라는 과제 역시 선생님의 중요한 실천적 관심사 같습니다. 그 사안들은 세교연구소의 과제이기도 하죠. 최근 북미 간의 긴장이 다시 고조되는 가운데 남한의 역할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아쉬움을 표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올 초에 쓰신 칼럼에서 “2019년은 분단 극복의 역사에서 영원히 기억될”(『경향신문』 2019.1.17) 해로 기억되길 바라는 소망을 적으신 바 있는데 이 어려운 시기를 어떤 태도로 마주해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도 부탁드립니다.

김명환: 저 역시 올해가 분단 극복의 역사에서 영원히 기억될 해가 되길 기대했지만… 어렵게 된 건 분명한 사실이죠. 분단체제 극복은 절대 쉬운 게 아니구나, 지그재그로 갈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 몇해 남북관계가 롤러코스터를 탔기 때문에 거기에 실망하고 북한은 변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생각하게 된 분도 많아진 것 같아요.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분들은 북한을 더욱 압박하고 제재해서 항복시켜야 한다고 말하지만 강하게 제재한다고 북한이 항복하지 않는다는 건 수십년의 역사로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남북관계는 어찌됐든 평화롭게 풀어가야 하고, 실망스러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더라도 이 길밖에 없지요. 요새 트럼프 대통령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죠. 방위비 분담금을 다섯배로 올려달라고 하는데 만약에 분담금을 그렇게 올려주면 교육이나 복지 예산에 쓸 돈이 없어져요. 그리고 또 문재인정부가 평화를 이야기하면서도 미국 무기를 많이 사고 있는데 그 비용도 어마어마하죠. 그렇기 때문에 이게 하나로 얽힌 문제라는 걸 깨닫고 강하게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아쉬운 건 남북 간에 해야 할 일들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거예요. 북한에 제공하기로 한 타미플루도 결국 유엔군 사령부가 막아서 못 갔잖아요. 이런 인도적 지원은 정부가 아주 강하게 추진했어야죠. 지금 금강산 관광 시설을 점검하러 가는 거나 개성공단의 사업주들이 자기 시설 보러 가는 것조차도 유엔군 사령부가 막고 있잖아요. 주권국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정부가 강하게 밀어붙여서 북한의 신뢰를 얻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영인: 좋은 말씀 듣다보니 어느새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교연구소에 오래 몸담고 활발하게 참여하신 회원으로서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세교연구소의 의미와 활동방향에 대한 제언을 말씀해주세요.

김명환: 세교연구소를 위해 기여한 바도 적은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좀 우습지만 한가지는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분단체제를 살아가는 이 시대의 지식인이라면 사실은 폭넓은 안목이 있어야 되거든요. 그런데 시대의 흐름은 자꾸 전문화되고 세분화되기 때문에 자기 분야에서는 독보적으로 전문성을 갖고 옳은 판단을 하지만 일반적인 민주시민으로서나 정치적 의사표현을 하는 시민으로서는 꼭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지는 것 같아요. 현실을 제대로 보고 현실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내는 중심에 세교연구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창작과비평』이라는 계간지의 의미도 거기 있다고 봐요. 문학을 중심으로 하되 여러 분야의 학문을 다루잖아요. 종합적이고 거시적인 안목이 점점 중요해지는데, 대학에서 활동하는 지식인들은 자기 것 이외엔 관심이 없잖아요. 그러다보면 이명박 박근혜정부 같은 폭주하는 정권이 나올 때 그걸 제어하는 비판적 지식인의 기능을 할 수 없다고 봅니다. 이건 개인적인 편견일 수도 있는데, 진보적인 사회과학자 가운데 시나 소설을 즐겨 읽는 분들은 변함없이 진보적이에요. 그런데 좋은 문학을 읽지 않거나, 읽고 나서 엉뚱한 소리를 하는 분들은 끝끝내 진보적이지 못하고 흔들리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인간은 언어적 존재이기 때문에 세교연구소나 창비의 문학 중심성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한영인: 시간 내어주신 것도 감사한데 부족한 질문에도 답변을 잘해주셔서 많이 배운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문학 중심성에 대한 말씀은 저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건데 명료하게 정리해주시니 머릿속이 확 맑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2019년 12월11일,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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