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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인터뷰] 김숙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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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9-07-01 17:47 조회9,5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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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할 수 있는 평화통일운동, ‘조각보’

사단법인 조각보 이사장 김숙임 회원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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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현: 먼저 바쁘신 와중에 세교연구소의 뉴스레터 인터뷰 요청을 흔쾌히 수락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여성평화운동단체인 ‘조각보’에서 대표로 오래 활동하시다 얼마 전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기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큰 변화와 더불어 선생님께 듣고자 하는 이야기가 많아 인터뷰를 청하게 되었습니다.

 

김숙임: 제가 세교 뉴스레터의 두번째 주인공이 되었네요(웃음). 감사합니다.


최시현: 저희가 영광이지요. 먼저 조각보를 소개해주시고, 그간 하셨던 활동에 대해서도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숙임: 조각보를 소개하려면 제가 2007년까지 일했던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창립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네요. 잘 아시겠지만 1990년대 중후반 무렵 북한이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면서 탈북자가 급증했지요. 마침 창립 시점과 맞아떨어져 저희가 탈북여성 실태조사를 실시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만난 여성들과 ‘진달래무궁화’라는 이름의 남북여성 월례 모임을 만들었어요. 그때는 전체 탈북자가 90여명 수준이라 매달 모이는 여성의 숫자가 30명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과 비교하면 아주 소박하죠. 그런데 2000년 6·15공동선언이 이루어지면서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에서도 남북여성교류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당시 북한 측에서 탈북여성과 계속 관계한다면 교류하지 않겠다고 의사를 피력해왔습니다. 그래서 진달래무궁화 모임은 정리하게 되었지요. 당시 저의 은사님이자 여성평화운동의 상징이셨던 고(故) 이우정 선생께서 한국에 와 있는 이 소수의 여성들도 포용하지 못하면서 남북여성교류를 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강력한 유감을 표하셨어요. 그럼에도 저는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가 남북여성교류의 창구가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제한적인 조건에서나마 여러 행사도 열고 활동도 많이 했는데, 심적으로 아주 힘들었습니다. 가슴에 대못이 박힌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래도 탈북여성들과 인간적 교류까지 끊긴 건 아니어서 나중에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활동을 정리하면서 그들과 새로운 모임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중국동포 조선족도 자연스럽게 합류하면서 조각보가 출범하게 되었지요.



코리안 디아스포라 여성이라는 영역


최시현: 코리안 디아스포라 여성이 조각보의 주축이 된 것은 꽤 지난한 과정을 거친 뒤에 야 가능했군요. 조각보는 단체의 이름부터 당사자성, 다양성, 그리고 개인을 중시한다는 인상을 줍니다. 그런데 평화운동, 통일운동은 어쩐지 개인이 접근하기에 쉽지 않다고 느껴지는 면이 있어요. 분단이라는 현실이 국경과 민족이라는 경계를 더 경직되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고요. 코리안 디아스포라 여성들이 모인 조각보의 활동은 어떤 가치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숙임: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에서 일하면서 저는 항상 허전한 마음이 있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평화와 통일운동이 많은 사람들에게 거리감을 주는 것이 사실이에요. 사람들이 자기 일상을 유지하면서 평화와 통일에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느끼곤 합니다. 통일운동은 전문가들이 하는 것이라 여기기 쉽고, 때로는 평화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이해하기도 간단치 않아요. 그러다보니 실질적인 평화, 통일, 분단의 극복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경계들을 과감히 뛰어넘고자 했어요. 코리안 디아스포라라는 호명 자체가 남과 북을 넘어서 성, 인종, 민족, 국가를 초월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고 창립선언문에도 그러한 취지가 담겨 있지요. 특히 남성성, 정치인들이 갖고 있는 국가안보의 틀, 남북 군사주의의 틀, 그리고 민족주의의 틀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은데, 우리는 이제 그들이 말하는 개념과 과제에 동원되는 것이 아니라 개념을 전환해야 한다는 관점을 담았던 것이죠. 그리고 그 문제의식으로 8년간 열심히 활동해온 결과 많은 부분이 진전되었다고 감히 평가해봅니다(웃음).


최시현: 네, 그 과정에서 코리안 디아스포라라는 영역이 새롭게 등장한 것 같습니다. 기존에 남북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사유를 넓히고 다양한 주체들을 발굴하는 과정에 있는 듯한데요.


김숙임: 저는 코리안 디아스포라가 평화운동, 통일운동, 여성운동 모두에서 중요한 큰 줄기라고 생각해요. 더 많이 주목받아야 하고요. 제가 평화운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그 역시 별 관심을 받지 못했어요. 당시 평화교육, 갈등해결, 남북교류 같은 이슈를 주장했는데 주목을 덜 받다보니 예산상으로도 어려움을 겪었지요. 기업들은 (평화운동이나 통일운동을 지원하면) ‘불매운동 들어가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며 호응도 잘 안 해줬어요. 그런데 이제는 평화운동이 두루 공감받고 있고 통일운동도 얼마간 진전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코리안 디아스포라 차원의 운동도 인내와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규모를 보자면 700만 동포 중에 414만명이 유라시아, 동북아 동포예요.


최시현: 절반이 넘네요.


김숙임: 그런데 한국정부는 이 사람들에게 한국 국적을 잘 내주지 않고, 일반 시민들의 인식도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지요. 한국 내 외국인이 160만에서 180만 정도인데 그중 80만에서 100만명 사이가 우리 이주동포입니다. 분명 소수자이지만 다른 차원에서 보면 소수자가 아니기도 한 거죠. 이들이 평화통일운동에서 얼마나 주체적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향후 한반도 평화의 맥락이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삶이야기운동’, 경청의 놀라움


최시현: 사회적 인정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은 이들이 가진 역량을 어떻게 재평가할 수 있을지 갈 길이 멉니다. 그럼에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서 이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그 동력을 제공하는 일을 조각보가 해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각보의 남다른 운동방식이 궁금한데요. 조각보에서 핵심적으로 운영해온 ‘삶이야기운동’에 대해 들려주시면 어떨까 합니다. 조각보의 주력사업인 ‘삶이야기운동’은 남과 북이 통일의 과정에서 서로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해요. 여기에서의 앎이란 제도적이거나 피상적 지식이 아닌 오랜 시간 대화를 통해 ‘깊이’를 포괄한다는 점에서 무척 인상적입니다. 대화, 그러니까 말하기와 듣기가 모두 포함되는데 그중에서도 경청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된 계기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김숙임: 무슨 일이든 사람들은 자기가 말할 수 있어야 참여한다고 느껴요. 그렇지 않나요? 그리고 조각보를 창립할 때부터 우리는 ‘누구나’를 강조해왔지요. 그래서 ‘삶이야기운동‘뿐만 아니라 조각보의 모든 운동은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것으로 선택했어요. 사실 대화는 2000년대 이후 많은 단체에서 시도해왔어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는가겠지요. 저희가 ‘삶이야기’를 하게 된 것은 자기가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못할 사람은 없다는 점 때문이에요. 이슈나 정치적 아젠다를 거론하면 격론이 되고 갈등의 소지가 있지만 자기가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이야기하면 서로가 그 차이와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돼요. “저 사람이 저렇게 살아서 지금 이렇게 되었구나” 금방 알게 됩니다. 먹고사는 일은 누구에게나 있고, 들어보면 이해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최시현: ‘평화의 부뚜막’에서 음식도 같이 만들면서요. 먹는 이야기도 빠질 수 없을 것 같아요(웃음).


김숙임: 맞아요. 김장 얘기로 시작해 다른 이야기로 충분히 발전됩니다. 가을마다 ‘남북김장담그기’를 7년째 해오고 있거든요. “우리는 어릴 때 김장을 이렇게 담갔다” “고춧가루와 젓갈을 구할 수 없어서 다르게 만들어봤다” 같은 이야기를 하다가 정치적 아젠다로 자연스레 넘어가는 거예요. 한번은 미국의 피츠버그 대학 그룹과 함께 국제 화상전화로 연결해 8개 지역에서 동시에 북한음식을 만든 적도 있어요. 그리고 ‘평화의 사람책 도서관’이라는 행사도 2013년부터 매년 서울국립현충원에서 ‘내가 기억하는 한국전쟁’이라는 주제로 개최해왔는데 우리는 이런 운동을 전개할 때 절대로 프로젝트성 기금을 받지 않습니다. 돈을 받으면 그에 따라 주제가 제한되잖아요. 한국전쟁을 이해하고 규정하는 관점도 다르고 전쟁에 대한 각자의 기억도 다를 수밖에 없는데 진짜로 터놓고 얘기하려면 그런 제한이 없어야 하거든요. 우리는 서로 다른 경험의 사람들이 모여서 한국전쟁과 평화에 대해 이야기해요.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의 힘이라고나 할까요.


최시현: 경청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대단한 끈기와 집중력, 그리고 공감능력이 필요하지요. 몇분짜리 자극적인 유튜브 동영상을 보는 데 익숙한 요즘 사람들에게 평범한 사람의 생애사를 긴 시간 집중해 듣는 일은 생경한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아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상당한 노력과 기술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삶이야기운동’이 체득한 특별한 경청의 방식과 규칙이 있을 것 같습니다.


김숙임: 처음에는 다른 단체들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봤고, 유럽의 대화운동에 대해서도 공부했습니다. 한국 상황에 어떻게 접목할까 많이 고민했어요. ‘삶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한양대 정병호 교수와 함께 독일의 대화운동을 이끈 괴델리츠 선생님으로부터 사회자 교육을 받았습니다. 거기서 대화운동의 철학, 인간에 대한 이해를 많이 배웠고 ‘삶이야기’ 프로그램에 접목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저희는 매 기수마다 남한에서 3명, 그리고 북·중·러·일 동포 중 3명, 이렇게 총 6명만 초대합니다. 경청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이죠. 그리고 그분들을 1박 2일 동안 좋은 장소에서 모시고 좋은 음식을 대접하면서 최고의 귀빈으로 대우해요. 그리고 프로그램은 30분 동안 자기 인생을 세 시기로 나누어서 말하도록 합니다. 이후 30분은 다른 참가자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에 답변합니다. 그 시간에는 절대로 끼어들거나 평가하지 않고 온전히 듣는 거예요. 1시간을 온전히.


최시현: 남의 이야기를 온전히 듣는 것도 어렵지만, 자기 이야기를 제대로 하기도 쉽지는 않겠습니다. 많은 준비가 필요하겠네요. 선생님께도 특별한 경험이 되었을 것 같은데 해보니 어떠셨는지요?


김숙임: 이전에도 평화운동을 하면서 다양한 평화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봤지만 나의 존재 전체가 귀가 되는 경험을 처음 해봤어요. 어린 시절에서 시작했던 ‘삶이야기’가 자신의 부모 또는 조부모가 왜 유라시아, 중앙아시아로 오게 되었는가, 어쩌다 하얼빈, 심양, 그리고 사할린으로 오게 되었는가, 어떻게 동경으로 오게 되었는가로 이어지면서 어떻게 한국까지 오게 되었는가에 다다르는데, 여기서 코리안의 역사가 다 나옵니다. 조상들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어떻게 직장을 잡고 결혼해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이주의 과정을 거쳤는지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30분은 온전히 이야기를 듣고 30분은 나머지 참가자가 듣고 싶은 질문을 할 수 있어요. 그러나 대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아도 됩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경청을 통해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은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 사람의 인생을 듣다보면 내가 갖고 있던 선입견이나 집단적 편견이 극복되는 것이 느껴져요. 1박 2일이라는 그 짧은 시간에요.



차이와 다름의 아카이브


최시현: 그렇게 맺어진 관계와 이야기가 얼마나 되나요? 이미 상당한 아카이브가 쌓였을 것 같은데요.


김숙임: 올해 6월까지 23기를 했으니 거의 150명에 이르는 이들의 이야기가 축적되어 있죠. 그렇게 해서 매년 가을에는 ‘삶이야기 동창회’라고 1기부터 지금까지 다 모이는 시간을 가져요. 백명쯤 모이고 춤, 문학, 노래 등 여러 활동을 하면서 아카이브를 축적하고 있어요. 이번에는 ‘코리안 여성들의 스토리가 있는 사진전’을 기획해서 사진 전문팀도 합류했고 ‘삶이야기’ 책도 출간 예정에 있습니다. ‘삶이야기’를 나누는 분들 중에는 정말 멀리서 오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북한, 일본, 중국은 물론이고 유라시아, 중앙아시아에서도 오시고요.


최시현: 엄청난 스케일입니다. 이분들의 ‘삶이야기’가 담고 있는 문화적 역량은 얼마나 크고 유연한 것일까요.

 

김숙임: ‘삶이야기’를 들어보고 저도 그 지역들을 답사해보았어요. 사할린, 중국, 알마티, 타슈켄트, 노보시비리스크, 하얼빈 등 말로 다 못하죠. 이렇게 한국 상황이 방대하고 특수하기 때문에 정병호 선생님이랑 저는 독일의 괴델리츠 선생보다 우리가 더 잘한다, 한국 상황에서는 그분이 우리보다 못할 것이다고 농담도 하지만, 앞으로 더 진화시켜나가야겠지요?(웃음)


최시현: 이 운동이 시공간적으로 엄청난 이야기창고의 역할을 하고 있네요. 이 이야기의 아카이브는 통일의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 같아요. 자료에 대한 풍부한 해석도 필요할 텐데 그러려면 상당한 수준의 젠더 감수성과 동시대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요구될 것 같습니다. 막연히 우리는 70년간 다른 체제에서 살아왔다, 혹은 같은 민족이니까 결국엔 비슷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기대하는 것과 실제로 만났을 때의 격차는 상당하지 않을까요?


김숙임: 저는 차이와 다름을 강조하고 싶어요. 다른 건 당연하잖아요. 상이한 체제에 다른 문화적 코드로 살아왔으니까. 그렇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비슷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서로가 너무 다른데 어떻게 덜 힘들게 만날 수 있을까를 준비한다고 보는 것이 맞겠지요. 아마도 엄청난 인내가 필요할 거예요. 그렇지만 알면서 인내하는 것과 모르고 그 충격 속에서 혼란을 겪는 것은 다르잖아요. 독일도 통일과정에서 처음에는 동독과 서독이 서로를 원망하며 비난했다고 하잖아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괴델리츠 선생이 저희를 도와주신 거거든요. 한국의 통일과정에서도 분명히 문제가 예측되기 때문에 충격을 줄일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최시현: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동질성에 무게를 두면 힘을 가진 쪽의 방향대로 무게중심이 기울겠죠. 차이에 집중하면 왜 그 차이가 발생했는지, 어떻게 그 충격을 완화하면서 살길을 모색해야 할지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할 것이고요.


김숙임: 독일은 특수한 상황이었죠. 동독이 원하기도 했고 과정이 굉장히 급속했는데, 남북은 양쪽의 체제가 훨씬 더 공고하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북한을 여러차례 다니면서 그런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안보의 재개념화, 여성리더십의 재평가가 이뤄져야


최시현: 현재 이슈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이어나가보지요. 여러 변수가 있었지만 작년과 올해 그 어느때보다도 두드러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진행 중입니다. 무척 고무되는 현상이지만 여성의 참여가 미흡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데요. 여성평화운동을 지속해온 선생님께서 보실 때 한반도 평화과정과 평화협상에 여성들이 어떤 아젠다로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김숙임: 저는 1995년 북경여성대회 때 평화파트를 맡아서 준비했었어요. 당시 무력갈등과 여성행동을 아젠다로 삼고 여러 논의를 해보았습니다. 이후 2000년에 여성, 평화, 안보에 관한 유엔안보리 1325호가 통과됩니다. 한국에서도 2014년 국가행동계획이 수립되고 여성발전기본계획에도 명시되었잖아요. 제도화의 발전이 분명히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 6·15 때도 그렇고 2007년에도, 또 작년 9월 평양에 갈 때도 합류한 여성의 숫자는 다섯 손가락도 넘기기 힘들었어요. 두세명이나 되었을까요? 왜 이런 문제가 계속 반복되는가, 결국 남성들만의 리그가 될 수밖에 없는가 하는 회의감이 많이 들었어요. 여성의 참여와 성주류화를 보장하는 제도화도 힘들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절감합니다. 더욱더 구체적인 전략과 인식전환이 필요합니다.


최시현: 제도는 여성의 참여와 역할을 보장하지만 현실에서는 작동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사실 한국사회 대부분의 영역에 해당하는 문제지요.


김숙임: 사실 탈북여성들에 대한 지원도 국가행동계획 9조 1항에 나와 있어요. 난민여성, 종군위안부, 모두 보호조항이 있거든요. 여성이 평화통일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성인지적 관점과 내용도 모두 들어가 있어요. 예산의 문제까지도요. 그런데 왜 현실적으로 작동이 안 되는가…… 저도 궁극적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하나 고민이 많아요. 뾰족한 답을 내리기 어렵지만 제가 2004년 독일에 갔을 때 독일여성연합대표가 이런 말을 했어요. “남성들의 귀가 따갑도록 계속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최시현: 매우 급진적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숙임: 사실 유엔 안보리결의 1325호에도 군사안보가 여러차례 언급됩니다. 그런데 안보라는 개념 자체가 여성이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이 굉장히 협소해요. 정상회담 할 때마다 앉아 있는 사람은 전부 남성이잖아요. 1995년 유엔 사회개발정상회의 때 제가 여성NGO대표로 참여했고 인간안보와 여성의 문제를 제기했는데 그때 강조했던 것은 인간안보는 정치, 군사,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와 문화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안보를 군사안보로만 볼 때 여성은 계속 배제되고 소외되고 뒤로 밀리거든요. 아무리 ‘귀가 따갑게’ 이야기해도 결정적인 순간마다 여성들이 소외되는 문제는 안보에 대한 인식이 좁기 때문인 것 같아요. 안보를 군사주의적이고 정치적 차원에서 인식할 때 가장 큰 문제는 안보와 평화를 연결하기 어렵다는 점이에요. 그렇지만 이를 인간안보로 접근할 때 사회문화적 접근은 필수적이잖아요. 정치, 군사보다도 중요한 것이 인간 중심의 사회문화적 통합이기도 하고요. 우리가 계속 듣는 이야기는 군사안보와 정치문제, 국제적 역학관계, 한미일공조체제 같은 말이에요. 이렇게 하면 잘 풀릴 거라고 하는데 비슷한 문제를 계속 답습하고 있잖아요. 누가, 무엇을 중심으로 삼고 어떻게 사고해야 하는가가 현실적인 숙제라고 저는 생각해요. 북미 하노이회담이 결렬된 것은 매우 유감이지만 이를 계기로 차분히 우리의 무엇이 문제인지 군사주의적 안보 개념을 넘어선 본질적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것 같아요.


최시현: 선생님의 답답한 마음이 느껴지네요.


김숙임: 저도 여성평화운동 하는 후배들한테 이 고민을 많이 털어놔요. 사회문화적인 접근이 반드시 필요한데 이때 여성의 능력이 대등한 리더십으로 인정되어야 하고 여성도 그것에 대한 자존감을 가져야 한다고요. 포스트 통일의 상황에서 사람들의 급속한 만남과 갈등, 다른 문화와의 접속에 관심과 초점을 두어야 여러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을까. 여성 내에서도 다양한 역할 분담이 필요하고 다양한 연대에 대한 정부와 국제사회의 공통된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최시현: 안보의 재개념화와 여성 리더십에 대한 재평가가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씀에 저도 공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각보가 진행해온 운동이 동포여성과 탈북여성만이 아니라 남한여성들에게도 평화운동가로서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게 도움을 주지 않았나 싶은데요. 피스테이블을 연속적으로 개최하고 계시는데 그 안에서 중요하게 논의되어온 주제는 무엇이 있었는지 소개해주시면 어떨까요.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관점에서 통일을 준비하기


김숙임: 저희는 올해 프로젝트를 ‘코리안 여성들의 한반도발(發) 평화프로세스’라고 이름 지었어요. 한반도 여성들이 당사자가 돼서 주도적으로 평화를 만들겠다는 거예요. 이 안에는 피스테이블도 있고 상호이해 평화교육도 있고, 가을에 열릴 동북아코리안여성평화회의도 있습니다. 이것이 한 세트에요. 피스테이블은 남북관계의 빠른 진전 속에서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위한 여성들의 역할을 토론하는 장으로 기획되었지요. 원래 조각보 내부적으로 열다가 점차 외부 전문가와 이 문제에 뜻있는 분들을 초대하게 되었어요. 사회문화적 접근에서 통일의 비전과 의제를 그리는 데가 없다는 이유에서에요.


최시현: 현재 시점에서 코리안 디아스포라 여성들에게 중요한 이슈는 무엇이 있는지요? 


김숙임: 지난 5월에 논의했던 주제인 탈북여성들의 딜레마를 소개해드릴까요. 대북관계가 막히면 탈북여성들에게 “여러분이야말로 통일의 가교요, 징검다리입니다” 치켜세우면서 찾아와 설문하고 발표도 의뢰하고 여기저기서 그렇게 정신없이 찾아와요. 그러다 남북관계가 열리면 다시는 찾지 않는 거예요. 이 경험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탈북여성들은 통일과정에서 자기들이 얼마나 소외될지 걱정해요.


최시현: 탈북여성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분단과 이산과정에서 겪은 코리안 디아스포라들의 소외감과 고통도 있을 것 같아요.


김숙임: 조선족, 중국동포, 유라시아, 재일동포 여성들 모두 남과 북이 준 상처와 폭력을 간직하고 있어요. 한국의 미디어에서는 중국 조선족을 주로 범죄자 이미지로 그리면서 무슨 사건만 나면 조선족이 문제라고 떠들고, 기본적으로 코리안 동포, 특히 동북아 유라시아의 가난한 동포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잖아요. 거기에 재일동포는 한때 봉인된 디아스포라로서 지금도 남한을 출입할 수 없는 분들이 있고 북한에서도 자기 형제를 찾을 수 없는 분들이 많아요. 사할린 분들도 고향과의 교류가 오랫동안 단절되는 뼈아픈 고통을 겪었죠. 저희는 남한과 북한의 정부가 이들을 정치적으로 이용만 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가 되었고, 다시 통합하고자 할 때 이들이 일정한 역할을 맡고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했던 거고요.


최시현: 통일에 대한 상상이 이전에 비해 빠르게 현실화되고 있다고 느껴지는데요. 코리안 디아스포라 여성들이 통일에 대해 갖는 희망과 우려는 각자의 경험과 배경에 따라 매우 다를 것이라고 봅니다. 이 다양한 관점이 통일 과정에 어떻게 반영될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해야 할 시점인 것 같습니다.


김숙임: 그래서 8월에 열릴 피스테이블에서는 구체적으로 우리가 꿈꾸는 통일의 그림이 무엇인지 다루기로 했어요. 제가 제일 듣기 싫은 질문이 통일이 언제 될 것이라고 보느냐는 거예요. 5년 후? 10년 후? 그 질문이 가장 우매하고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보통 하나의 통일국가로 두 체제가 통합되는 것만 통일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러나 통일은 다양한 모습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백낙청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남북연합의 국가연합체제일 수도 있지요. 저는 평화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얼마나 다양한 통일의 형태를 우리가 수용할 수 있을지 각자의 생각을 자유롭게 논의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5월에는 동포들이 자기 목소리를 터뜨리는 것으로 시작한 것이고요.



아래로부터의 평화통일을 위하여


최시현: 선생님 말씀을 듣다보니 통일과 평화에 대한 인식이 저조차도 상당히 경직되어 있지 않았나, 여전히 남북 중심, 한반도 중심으로 상상해오지 않았나 반성하게 됩니다. 북한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코리안 디아스포라 여성들의 경험과 문화적 역량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김숙임: 저는 이분들이 남북의 매개자와 소통자라고 생각해요. 고려인들도 남한 사람보다 북한을 훨씬 많이 알고, 북한의 제2외국어는 러시아어잖아요. 오히려 제3자로서 객관적으로 이야기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지요. 중앙아시아, 러시아, 중국, 일본, 북한에서 오신 분들은 안 다닌 데가 없어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노동과 생계를 위해 이주하거나 보따리장사를 해왔는데 캄차카, 훈춘에서 중앙아시아, 우크라이나에 이르기까지 무대가 광활합니다. 이미 민족국가의 경계를 오가며 살았기 때문에 보유한 문화적 역량이 상당한 것이죠. 그리고 이들은 환대하는 법을 알아요. 남한 사람들은 경계가 많은데, 우리는 간첩을 보면 신고해야 한다고 배웠잖아요(웃음). 북한 사람들이 가진 공동체성에서 배울 점이 있고, 중국에서 온 이들은 그 공간만큼의 아량이 있습니다. 러시아권, 고려인들도 환대가 체화되어 있다는 것을 제가 경험으로 알게 되었어요. 이들과 접할 때 호연지기를 실감합니다. 이들은 대륙을 횡단하면서 이민족들과 다문화 속에서 이미 살아버린 거예요. 저도 통일운동을 오래 해왔지만 그것이 너무나 남북 중심이라는 것, 평화운동도 너무 한민족 역사를 짧게 보고 해왔다는 것을 계속 깨달아요. 근현대사를 이들의 삶 속에서 다시 배우고 있달까요. 저는 이들이 이미 워낙 광활한 조건의 삶을 경험했기 때문에 우리의 단절된 역사, 분단을 다시 넘어설 수 있는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최시현: 방금 말씀하신 지점은 아래로부터의 평화, 아래로부터의 통일에 주목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같은 맥락에서 여성의 관점에서 평화운동을 하는 의미도 같이 이야기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숙임: 여성의 관점이라는 것은 남북의 공고한 체제, 군사주의, 민족주의와 국가담론이 얼마나 가부장적이며 문제적인지를 인식하고 비판하는 것이죠. 조각보에서 활동하면서 미시적 차원, 일상의 차원에서 운동을 하는 것이 평화통일운동을 재구성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것을 새삼 상기하게 됩니다. 미투운동으로 인해서 일각의 남성들이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하지만 저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마찬가지로 개개인의 인권, 일상, 이런 것들이 성차에 의해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해서 통일과정과 평화운동으로 진입해야 한다는 거죠. 사회문화적 접근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이러한 접근이 병행되어야 군사안보도 틀이 바뀌고 내용이 달라질 거예요. 여성주의적 접근이 사회운동의 본질을 완성하고 재구성하는 힘이라고 봐요. 이 동력을 놓쳐서는 안 되는데 남성들이 얼마나 이 공감대와 감수성이 있을지, 아직도 취약한 것 같지만……


최시현: 지금까지 활동가로 살아오면서 겪으신 에피소드가 많을 것 같아요. 감동적이었거나, 재미있었거나, 아니면 위험천만한 상황 같은 것을 세교연구소 회원들과 공유해주시면 어떨까요?


김숙임: 이 질문이 가장 어렵네요. 너무 많아서요(웃음). 정치적으로 민감한 에피소드도 많고 잊지 못할 일들이 여럿 있습니다. 제가 남북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위험한 상황에서 일했잖아요. 북한과의 에피소드는 극적인 것이 많고, 재미있기도 하고요. 문화적 차이로 인한 에피소드도 말도 못하죠. 한국에 온 코리안 디아스포라 여성들 중 남편이 때리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고 여자는 당연히 맞는 것으로 알다가 남한에 와보니 이것이 가정폭력이라는 것을 알고 헤어졌다는 분들이 있어요. 그러면서 자기의 삶을 이해하고 여성으로서 당당한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하시죠. 사소하게는 탈북 여성들이 프라이팬을 보고 때가 낀 것으로 알고 철수세미로 박박 밀어서 코팅을 하얗게 벗겨놨다는 식의 이야기도 들었죠. 남북교류를 위해 만나서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는데 북쪽 사람이 조용히 다가와서 “선군정치를 어떻게 생각하냐” 물은 적도 있는데, 그럼 저는 “나는 평화운동가예요. 군사를 우선하는 것에는……” 이렇게만 말하고 자리를 조용히 떴어요. 다 이야기하면 남북관계 실무에서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입을 다문 일이 많았어요. 차이와 다름을 실감하죠. 그렇지만 저한테는 북한을 이해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 누구도 경험할 수 없는 기회였어요. 그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탈북자들을 좀더 알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할린, 우즈베키스탄, 일본 등을 다니면서 이주동포들의 친척도 만나고 그 가족과도 함께 지내면서 이해도를 높였습니다.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세교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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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현: 언젠가 그 에피소드들을 여과 없이 들을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웃음). 세교연구소도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바를 고민하면서 여러 연구와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세교연구소 이사이자 회원, 그리고 평화운동가로서 세교연구소에 애정 어린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김숙임: 매달 포럼 시간에 저희 조각보 행사가 겹쳐 못 가보는 일이 많은데 제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될는지요? 그래도 세교에 가면 배우는 것이 많아요. 많은 담론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공부하게 해주는 것이 저의 활동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지식인 중심으로 모이다보니 다양한 현장,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가 담보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좀더 다채로운 목소리를 담는다면 우리 운동을 실천할 때도 구체적인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최시현: 현장의 중요성을 말씀하신 것에 동의합니다. 한국사회에 필요한 담론을 생산하고 발신하기 위해 어떤 목소리를 발굴하고 수용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던져주신 것에도 공감이 되고요. 


김숙임: 그리고 우리 동포, 코리아 디아스포라 문제도 세교연구소에서 더 관심 가져주시고 진지하게 다뤄주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존경하는 분들이 세교연구소에 많이 계셔서 저는 늘 힘이 됩니다.


최시현: 오늘 말씀을 통해 보이지 않는 목소리에 가치와 의미를 불어넣는 일에 대해더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뜻깊은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2019년 6월 4일, 서울여성플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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