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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박정희 동상 말고 전태일기념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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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4-05-08 13:09 조회4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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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독재자 이승만을 몰아낸 4·19혁명을 짓밟고 군사쿠데타로 등장한 1961년에 전태일은 13세였다. 전태일이 1970년 11월13일 자기 몸에 불을 놓았으니 9년6개월 정도를 박정희와 전태일은 ‘공적’ 공기를 함께 마시며 산 셈이다. 실제로 전태일은 근로기준법마저 잘 지켜지지 않는 현실을 바꿔보기 위해 대통령 박정희에게 탄원서를 보내기도 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전태일의 그런 ‘상소’는 다소 순진하게 보이겠지만, 당시 전태일에게는 해볼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만 했고, 알다시피 그 마지막 선택이 자기 몸에 불을 놓는 것이었다.

민주화 세력, 박정희 산업화 인정 

1970년이라면 새마을운동이 막 태동하려는 시점이자 포항제철소가 공장 가동을 시작한 해였다. 정치적으로는 7대 대통령 선거를 1년 정도 앞둔 시점인데, 평화시장의 일개 재단사인 전태일의 호소가 장기 집권에만 관심이 있던 박정희에게 무슨 의미였건 전태일과 박정희가 공적으로 연결된 순간이 바로 전태일의 탄원서 제출 사건이었던 것이다. 박정희의 조국 근대화 프로젝트는 폭력적으로 진행됐지만 훗날 ‘경제 발전’의 공로를 인정받게 되었다. 경제 발전이라는 것이 전태일 같은 노동자들에게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강요하고, 농촌을 ‘싼’ 노동자들을 공급하기 위한 인력 기지로 삼아 가능했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아는 역사적 사실이다.

전태일이 비참한 노동자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제 몸을 봉수대에 올렸다면, 박정희는 끝내 독재를 포기하지 않다 9년 뒤에 자기 수하의 총에 맞아 죽었다. 전태일은 죽음 이후 한동안 망각을 강요당했다면 박정희는 신화화되었고, 급기야는 ‘민주주의 세력’에게까지 경제 발전의 공을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민주주의 세력’이 전태일 대신 박정희의 손을 잡은 것은, 그를 떠받드는 세력이 엄연히 존재한 때문이었지만 본질적으로는 ‘민주주의 세력’마저 경제 발전을 숭배하면서 박정희를 독재자라고만 부를 수 없게 된 것이다. 근대 자본주의는 이렇게 경제 발전 귀신에 들린 체제를 말하는데 사실 경제 발전은 절대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현상’을 보여주지만 그것을 위한 수탈과 착취와 자연 파괴는 은폐한다. 그리고 그 수탈과 착취와 자연 파괴는 경제 발전에 더욱 목매달게 하는 환영을 심어준다. 이반 일리치가 빈곤과 도시의 슬럼화는 경제 발전의 불가피한 결과가 아니라 그 전제 조건이라고 한 것은, 이 환영의 실체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려준다.

‘민’ 수탈한 경제발전이 옳은가? 

홍준표 대구시장이 박정희 동상을 만들겠다고 해서 대구 시민사회가 발칵 뒤집힌 모양이다. 이에 대해 홍 시장은 자신에게 무슨 정치적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분의 산업화 정신을 기리자”는 뜻이라면서 박정희의 공과를 함께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숨은 정치적 목적이 없다는 말을 믿기 힘든 것은 홍 시장 자신이 독재자 기질이 다분한 데다 무슨 일이 벌어지면 수준 낮은 우스개로 뭉개는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새삼 그것을 따질 일은 아니고, 홍 시장이 공식적으로 밝힌 입장인 박정희의 ‘산업화 정신’, 즉 독재자 박정희의 ‘공’인 경제 발전을 ‘민주주의 세력’마저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박정희 신화가 깨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게 문제다. 민주주의는 ‘민’이 주인인 것을 말하는데 민을 노예로 만든 바탕 위에서 이뤄진 경제 발전을 박정희의 공으로 돌려놨으니, 애초 의도가 무엇이었건 박정희를 군사독재자라는 수렁에서 건져준 꼴이 된 것이다.


황규관 시인

경향신문 2024년 4월 28일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404282034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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