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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언]문학이라는 노란 리본을 거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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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4-04-01 18:40 조회17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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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여름, 서울 광화문광장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향한 투쟁으로 뜨거웠다. 자식 잃은 부모들이 곡기를 끊어 자기 목숨을 걸고 싸웠다. 그 처절한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애가 탈 일이었다.

8월에서 9월로 넘어갈 무렵, 피해자를 모욕하는 이들이 광장에 나타났다. 그들은 세월호참사의 의미를 사회의 책임이 없는 불운한 사고로, 진실을 밝히려는 가족들의 투쟁을 자식 팔아먹는 일로 왜곡했다.

2014년 9월 20일 오후 4시 16분, 그 참혹한 광장에 문인들이 늘어섰다. 누군가의 입을 막고 상처 입히는 '폭력'이 아닌 '사람의 말'을 한 문장씩 낭독했다. 삼백여섯 개 문장이 광장을 둥글게 둘러쌌다. 


지나가는 시민들이 그 소리에 이끌려 하나둘씩 섞여들었다. 원은 점점 커졌다. 문학이 세상을 구원할 수는 없어도 누군가를 위로하고 자신을 바꿔낼 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304낭독회는 그렇게 시작했다.

304낭독회는 작가들과 시민들이 매달 한 번씩 모여 세월호참사를 둘러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다. 미리 신청한 참석자가 직접 쓴 글이나 다른 이가 쓴 글을 낭독한다. 노래나 연극을 올리는 사람도 있다. 언제나 "오늘은 4월 16일입니다"라는 문장을 함께 읽는 것으로 시작한다. 세월호참사로 희생된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기억하기 위해 304회까지 이어갈 예정이다. 마지막 낭독회는 2040년 1월에 열린다. 


304낭독회를 이끌어가는 이들을 '일꾼'이라고 부른다. 수십 명의 문인이 일꾼으로 함께한다. 그중 김현 시인과 양경언 문학평론가를 만나 '사람의 말'이 그린 궤적을 함께 돌아보았다.

양경언| 문학평론가. 2011년 <현대문학>에 평론 '참된 치욕의 서사 혹은 거짓된 영광의 시―김민정론'을 발표하며 비평활동을 시작했다. 2019년 비평집 <안녕을 묻는 방식>을 펴냈으며, 같은 해 '비평이 왜 중요한가: 비평이 혁명을 의미화하는 방식'으로 신동엽문학상을 받았다.

김현| 시인. 2009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송행진곡> <호시절> 등 일곱 권의 시집과 <고스트 듀엣> 등의 소설집, <다정하기 싫어서 다정하게>, <어른이라는 뜻밖의 일>, <당신의 슬픔을 훔칠게요> 등 일곱 권의 산문집을 펴냈다. 김준성문학상,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인터뷰사진
▲  인터뷰사진
ⓒ 김지은

 
- 304낭독회가 100회를 넘기고 10년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양경언 : "세월호 사건을 겪고 작가들도 참담함에 빠졌어요. 작가는 글을 쓰는 일을 하는 사람들인데, 내가 쓰는 언어가 이런 참사를 일으키는 사회구조의 한 부분인 건 아닌가 고민하게 됐어요. 몇몇 작가들이 일단 뭐라도 해보자고 제안해 만났어요. 우리는 언어로 작업하는 사람들이니까 읽고 쓰는 행위로 함께 무언가 해보자는데 의견이 모인 거죠.

첫 낭독회에서는 한 작가당 한 문장씩을 가져와 304개를 낭독하기로 했는데, 참여가 늘어나 306개 문장이 모였어요. 작가들이 광장에 동그랗게 모여 문장을 읽는 동안 지나가는 시민들도 끼어들어 같이 읽게 됐어요. 작가들이 주축이지만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304낭독회가 그렇게 만들어진 거죠."

김현 : "조금 더 자세히 말씀을 드리자면, 2009년 6월 9일, 188명의 시인, 소설가, 평론가들이 모여 이명박 정부의 국정 기조 전환을 요구하며 시국선언(6.9작가선언)을 했어요. 이후 '6.9작가선언'은 느슨한 공동체가 되어 여러 현장에 연대했고요. 저는 2009년 겨울에 등단하여서 4대강 반대 투쟁부터 합류했습니다. 어쨌든 2014년 8월 25일, 6.9작가선언 온라인 카페에 '긴급 제안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왔고, 그로부터 이틀 후인 27일에 스물다섯 명의 작가가 모였어요.

그 자리에서 글을 써서 현장에서 의사를 표현하는 긴급행동을 결의했고, 두어 차례 더 이어진 회의를 통해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한 304명을 기억하기 위한 낭독회를 매달 한 번씩 304번을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9월 20일 오후 4시 50분, 광화문광장에서 작가와 시민이 어우러져 문장을 나누어 읽는 긴급행동이, 첫 번째 304낭독회가 진행된 거죠. 말씀처럼 그로부터 10년이 흘러서 어느덧 304낭독회는 오는 2월, 112번째 낭독회를 계획 중입니다."

- 지난 10년간 세월호 운동의 흐름 속에서 304낭독회의 고민도 변화를 거듭했을 것 같습니다.

양경언 : "처음에는 광화문광장을 지키기 위한 낭독회로 시작했어요. 그러다 광장에 오지 못하는 상황에 있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양한 장소에서 낭독회를 열게 됐어요. 젠트리피케이션과 재개발로 밀려나는 테이크아웃드로잉 카페, 옥바라지 골목과 같은 현장에서 진행하기도 했고요."

김현 : "여러 현장에 연대하며 부러 낭독회의 외연을 넓혀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에요. 그냥 더 많은 곳에서 여러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있었죠. 서울을 벗어나 광주, 속초, 제주 등에서도 낭독회를 연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고요.

사실, 초기엔 낭독회를 304번 지속하기 위한 고민이 많았어요. 회의도 자주 했고요. 그런데 매번 논의의 결론이 '지금처럼 하자'는 것으로 지어졌어요. 304낭독회가 어떤 이벤트 같은 게 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모두 생각한 거죠. 일상에 스며드는 낭독회를 바랐던 것도 같고요. 그래서 세월호 10년을 맞는 지금도 뭘 더 하려 하지 않고, 하던 대로 하자는 말을 자주 해요."

양경언 : "304낭독회에 처음 오신 분들은 웃어야 할지 말지 고민해요. 세월호 낭독회라는데 웃으면 이상하지 않을까 싶은 거죠. 2014년 9월에 304낭독회가 시작되고 한동안은 낭독을 이어가지 못하고 우는 사람이 많았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담담해지는 방향으로 향해 갔어요.

이제는 우리 웃으면서도 이야기해 보자고 말해요. 죽은 이를 초혼하는 의식을 치를 때도 마냥 울기만 하지 않잖아요. 춤도 추고 곡도 해요. 304낭독회도 슬프게 울기만 하는 게 아니라 춤추는 곳이기도, 노래하는 곳이기도, 웃고 떠드는 곳이기도 해야 하겠다. 그래야 조금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으니까요."

- 낭독회가 지니는 의미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김현 : "서울 홍대 앞에 재개발로 쫓겨날 위기에 처했었던 '두리반'이라는 식당이 있었어요. 2009년 크리스마스이브에 강제 철거당해서 입구가 철판으로 막혔는데, 이틀 뒤에 주인 내외분과 사람들이 그걸 뚫고 들어가 다시 농성을 시작했죠. 6.9작가선언에서 만난 박시하 시인, 조해진 소설가 등과 함께 '1월 11일' 동인을 결성한 때였는데, 진은영 시인이 저희 동인에게 그곳에서 낭독회를 열어보자고 제안해 주셨어요. 전혀 문학적이지 않은 공간을 문학적인 공간으로 바꾸는 것 자체를 투쟁으로 삼아보자는 거였죠. '불킨 낭독회'의 시작이었죠.

이후 수차례 걸쳐 낭독회가 진행됐고 불킨 낭독회는 이름을 조금씩 달리하며 여러 현장에 결합했어요. 돌이켜 보면 지금의 304낭독회는 그때의 경험을 자양분으로 삼아(삼은 작가들로부터) 시작된 거 같아요. 많은 작가가 문학(낭독) 그 자체가 투쟁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구호가 아닌 문학으로 현장에 연대할 수 있음을 경험한 거죠.

세월호참사 희생자 추모를 위해 시작한 304낭독회가 사회적 참사와 안전에 관한 이야기의 장이 되면서도 동시에 비정규직 문제나 기후위기, 전쟁 반대, 미투 운동 등과 관련한 발언의 장이 되고 있다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그 연결감이, 고립되지 않음이 이즈음 무척 중요해졌다고 보거든요.

이태원참사가 벌어진 10월 29일 오후에 공교롭게도 304낭독회가 있었어요. 낭독회가 끝난 후에 참사가 벌어진 거죠. 낭독회 일꾼들이 밤새 참담함을 토로했어요. 우리가 지금까지 뭘 한 건지 자괴감이 깊이 들었죠. 마음을 추스르고 계속해보자, 해보자 했는데, 다음 달 낭독회에 다른 때의 두 배 정도 되는 분들이 오셨어요. 아, 우리가 이렇게 연결되어 있었구나. 그때 비로소 안도했고, 또 안전함을 느꼈죠. 304낭독회에 참여하는 분들도 그런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오시는 게 아닌가 싶어요.

최근 낭독회에는 10월 29일 이태원에 계셨던 분이 오셨는데, 그분이 이곳에서 와서야 비로소 그때 얘길 입 밖으로 꺼낼 용기를 얻었다고 하셨어요. 그 마음을 계속 생각하게 돼요. 그때 저희가 함께 읽은 텍스트가 배삼식 작가의 희곡 <먼 데서 오는 여자>였는데,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죠. 참사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인 건 분명하지만, 이미 일어난 비극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또한 누군가를 살게 한다는 사실이 의미 있는 것 같아요."

- 낭독회가 10년을 이어왔기 때문에 그런 장이 열렸다는 생각이 들어요. 두 분 자신에게는 304낭독회와 함께 한 10년이 어떤 의미였나요?
 

김현 : "304낭독회는 저에게 오랜 친구 같아요. 여기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는 자주 만나지 않아도 어제 본 사이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죠. 작가는 혼자 글을 쓰잖아요. 혼자서 감내야 될 게 많은데, 혼자서만 감내할 수 없는 일도 분명히 있어요. 그런 빈자리를 채워주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손 잡고 있지 않아도 손잡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할까요."

양경언 : "10년을 해오면서 인상적인 낭독자들이 많이 있어요. 한번은 한국 탁구 잡지 기자가 낭독회에 온 적이 있어요. 단원고에 탁구부가 있었는데, 부원들이 경기 일정 때문에 수학여행에 가지 않았다고 해요. 경기에서는 좋은 성적을 받았지만, 참사 이후에 해체됐다고. 일본 탁구 잡지 기자에게 그 소식을 들은 거죠. 우리는 전혀 몰랐던 이야기잖아요. 또 언젠가는 단원고에서 일하는 교사가 낭독회에 오기도 했어요. 단원고 재학생들과 304낭독회 글을 같이 읽었다면서, 학생들이 직접 쓴 글을 소개해 주기도 했죠.

10년간 낭독회에 함께하면서 한국 사회에 있는 우리가 세월호참사를 동시대성으로 경험하고 있고, 누구에게나 풀려야 할 맺힌 말이 다 있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낭독회에서 읽힌 글들을 쭉 돌아보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폭력이 어떤 식으로 발생하는지, 지금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고 어떠한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와 같은 질문들과 연동되는 글이더라고요. 그러니까 세월호에 대한 질문이 인간에 대한 질문, 사회에 대한 질문과 다 연결되어 있어요.

이러한 질문을 제기하고 답하는 일은 문학이 계속해왔던 작업이기도 하고 문학이 궁극적으로 가닿는 작업이기도 하거든요. 문학이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떤 글을 쓸 것인가. 304낭독회는 저에게 이러한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건드려주는 것 같아요. 그 질문의 끈을 놓치지 않게 해주는 활동인 거죠."

- 304회의 낭독회를 다 치르려면 25년이 넘게 걸려요. 그 긴 시간을 과연 채워나갈 수 있을지 걱정되진 않으셨나요?

김현 : "네, 전혀 걱정되지 않습니다(웃음). 최근에는 오히려 그래서 304번을 채우면 안 할 건가? 하고 얘기하기도 해요. 305번째 304낭독회, 멋지지 않나요?(웃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건 무엇보다 여전히 이 낭독회에 오는 시민들이, 작가들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에요. 누군가, 어떤 사람들만이 아니라 여럿이 십시일반 힘을 보태고 있거든요.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달라고 해요. 그게 아주 자연스러워요. 오늘 저희 둘이 인터뷰를 하게 된 것도 그냥 시간이 돼서예요. 아까 일상에 스며드는 낭독회 얘길 했는데 이제 일꾼들한테 304낭독회는 일이 아니에요. 그냥 하는 거예요. 글을 쓰듯이요. 숨을 쉬듯이요."

양경언 : "100번이 넘는 낭독회를 열면서 특정한 틀에 갇히지 않고 매번 조금씩 다르게 만들어왔어요. 그러다보니 겁 없이 가는 힘이 생긴 게 아닐까 싶어요. 저는 처음에 낭독회에 사람들이 많이 와야 한다는 조바심이 있었어요. 세월호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걸 혐오세력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작가들이 참여해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도 했고요.

그런데 저 역시 낭독회를 거듭할수록 한두 사람이라도 진심을 가지고 이 자리를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부담을 내려놓게 된 면도 있어요. 세월호로 인해서 희생된 사람들이 빼앗긴 삶을 생각해본다면, 세월호참사가 앗아간 시간이 어마어마해요. 그에 비해서 25년은 긴 시간이 아닌 거예요."

- 304낭독회에서 낭독된 1천여 편의 글 중 80편 정도를 추려 책으로 엮으신다고요. 이 책을 펴내시는 마음이 세월호 10주기를 맞이하시는 마음과 맞닿아 있을 것 같아요.

김현 : "출판 제안을 몇 차례 받았는데, 혹시나 유가족들에게 폐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러워 모두 거절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세월호참사 10년을 정리하는 큰 기획의 일환에 책의 자리가 생긴 거고, 그렇다면 해봐도 되겠다고 마음을 모은 거죠. 글 쓰는 사람들도 여전히 곁에 있다는 걸 알려주는 일이라면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여전히 노란 리본을 달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가 있어요. 왜일까, 어째서일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궁금하면서도 동시에 그냥 좋더라고요. 그게. 이 책이 그런 거였으면 좋겠어요. 문학이라는 노란 리본이 아직도 달려 있다라는 걸 보게 보면서 누군가 구체적인 한 사람이 힘을 얻게 되길 바라요. 누군가 구체적인 한 사람이 진실의 일원이 되면 좋을 것 같아요."

양경언 : "낭독회에서 읽었던 글이 담긴 자료집을 일정 기간 인터넷에 공개하기 때문에 누구나 볼 수 있어요. 작가들이 직접 쓴 글들을 중심으로 해서 책으로 읽었을 때도 낭독회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고, 고민의 깊이를 더할 수 있는 글들을 가려내 책에 담았어요.

그에 더해 10년 동안 함께한 일꾼 서른 명의 후기와 황정은, 김현, 양경언 세 작가의 대담을 통해 304낭독회에 함께 한 마음과 책을 엮으면서 든 고민을 이야기하려고 해요. 세월호참사가 소위 당사자로 얘기되는 사람들만의 일이 아니고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형태로 계속해서 함께 고민하고 목소리 내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이 있어요." 



양경언 문학평론가

오마이뉴스 2024년 3월 22일

https://www.ohmynews.com/NWS_Web/Articleview/article_print.aspx?cntn_cd=A0003013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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