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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경]규탄만으로 전쟁이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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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3-11-03 15:22 조회5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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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충돌이 전쟁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 지역을 기습 공격해 이스라엘 측에 민간인을 포함해 1200명에 달하는 사망자를 내고 150명 이상의 민간인들을 납치했다. 이후 이스라엘의 보복 공습이 감행된 직후 140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사망했다. 

23일 현재 가자지구에서 양측을 합한 사망자는 5000명, 부상자는 1만5000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여론의 대세는 공격과 보복이 이어지면서 민간인들의 희생이 커지는 사태를 중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폭력 사태의 원인을 두고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한쪽에서는 오래된 이스라엘의 점령과 폭력의 역사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음을 비판하고, 다른 쪽에서는 하마스의 민간인 공격과 납치가 정당화될 수 없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망자 숫자로 전쟁의 피해를 모두 측정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유엔 발표로 우크라이나에서 전쟁 발발 500일 동안 약 9000명의 사망자가 나왔다고 하니, 이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의 참혹함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번 사태에 전쟁이라는 말을 덥석 쓰기가 조심스러운 이유는 팔레스타인의 특수한 지위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알다시피 흔히 팔레스타인이라고 부르는 지역의 공식적인 명칭은 팔레스타인 점령지역(OPT)이며, 이스라엘의 점령은 국제법상으로는 불법이다. 이스라엘이 만든 장벽과 이집트와의 국경으로 둘러싸여 봉쇄 상황인 가자지구 외에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담당하는 서안지역이 존재하지만, 후자 역시 불법적인 이스라엘의 정착촌이 지속적으로 들어서면서 위협을 받는 상황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들 지역 모두를 자신의 주권이 미치는 이스라엘 영토임을 주장하면서 주민들에 대해서도 통치권을 행사하고 있다. 체포와 살해의 위협을 받으며 활동해 온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가들에게도, 살던 지역을 떠나 난민으로 전락한 팔레스타인인들에게도, 언론의 자유를 빼앗기고 독재에 시달려온 이스라엘 시민들에게도 삶은 이미 전쟁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차별이 봉쇄와 대치라는 극단적인 폭력 상황에서만, 혹은 정치적인 쟁점들을 둘러싸고만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가장 일상적인 차원에서도 팔레스타인계 이스라엘인들은 가자지구 밖에서도 국민이지만 국민이 아닌 취급을 받았다. 그 사례 가운데 하나가 코로나19 예방 백신 접종 문제였다. 2021년 8월 이스라엘은 자국이 1인당 백신 접종률이 가장 높은 국가이자 당시로는 3차 접종을 시행하는 세계 유일의 국가라고 선전했다. 하지만 이는 점령지역의 팔레스타인인을 제외했을 때만 통하는 얘기였다. 2022년 8월까지 이스라엘 국민의 75%가 1회 이상, 50%는 3회 이상 백신을 접종했을 때 점령지역의 팔레스타인에서 1회라도 접종 경험이 있는 사람은 40%밖에 되지 않았다. 

불평등에 대한 비판이 일자 이스라엘 보건당국은 “선의로 이웃에게 백신을 나눠줄 사람은 없다”는 취지로 응대했다. 국경을 넘어 백신을 접종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실제로 서안지구에 사는 이스라엘인들을 대상으로 접종소를 운영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독립 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필요에 따라서는 이들을 별도의 국가이자 타국의 국민인 듯 취급해왔다는 사실은 전쟁 상황에서도 변함이 없다. 이스라엘의 국민도 아니고 다른 어느 국가의 국민도 아닌 상태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은 죽어가고 있다.


백영경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세교연구소 소장

경향신문 2023년 10월 23일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10232045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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