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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경]철도파업, 끝이 끝이면 안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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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3-10-06 15:50 조회60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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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노조가 18일 오전 나흘간의 파업을 종료했다. 이번 철도노조의 파업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에 마지막으로 한 이후 4년여 만에 공공철도 확대, 4조 2교대 전면 시행, 임금 인상 등을 내걸고 벌인 일이다. 일단 코레일 쪽의 관심은 추석 전에 2차 파업이 재개되는 사태를 막아 내는 데 있어 보인다. 

국토교통부는 정부 정책은 협상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여러 현실 여건상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면서 파업을 지속할 경우 산업계나 시민들이 입게 될 피해를 강조하고 있다. 철도노조의 입장은 요구 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추석 전에 할지 아니면 이후에 할지 정도만 내부 협의를 거쳐 곧바로 2차 파업에 돌입하겠다는 것이다. 이 선언이 사실이라면, 코레일이나 국토부의 태도로 미뤄봤을 때 개시 시점만 유동적일 뿐 2차 파업은 불가피한 일로 보인다. 

회사나 정부가 공공 서비스부문의 파업 의미를 축소하고, 언론도 시민의 불편만을 강조할 뿐 파업의 쟁점을 제대로 다뤄주지 않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 철도노조 파업의 의미가 잘 전달되고 있지 않은 건 유독 아쉽다. 파업을 앞두고 철도노조 쪽의 홍보전은 특별한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의 시대에 철도가 해야 할 사회적 역할이나 철도의 공공성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큰 공을 들였다. 그 가운데서도 철도노조가 ‘9·23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와 함께 ‘공공철도가 기후정의’라는 제목으로 언론에 기고하고, 여러 매체가 무궁화호 노선 폐지에 반대하는 기사를 실은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고속철은 대도시에서 대도시로 이동하는 사람들에게만 편리하다. 특히 이용객 입장에선 예전 같으면 서울을 떠나 하룻밤 묵는 여정으로는 엄두도 내지 못했을 목포나 순천, 강릉과 같은 도시에 쉽게 다녀올 수 있게 됐으니 고속철이란, 세상 참 좋아졌음을 보여주는 교통수단이다. 고속철 역에 내리면 어디서나 택시·렌터카 등을 이용할 수 있고, 막히는 도로와 장거리 운전의 고단함을 피하면서도 차량 여행의 편리함을 누릴 수 있다. 비용이 많이 들고, 탑승권 구하기가 어려운 게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지역에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문제가 다르다. 전남 지역과 서울 용산역을 이어주던 무궁화호 노선을 폐지할 때의 명분은 여전히 무궁화호가 광주 송정역까지는 다닐 예정이니 환승하면 되고, 서울까지 가는 시간도 단축돼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지역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면서 무궁화호를 많이 이용하는 노인층은 고속철로의 환승을 어려워하거나 비싼 요금을 부담스러워 한다는 사실을 도외시하는 것이다. 

적자를 이유로 무궁화호 노선을 축소 또는 폐지하고, 낡은 무궁화호를 폐차한 뒤 새로 도입하지 않은 탓에 무궁화호 이용객은 갈수록 줄고 있다. 이용객이 줄어든 무궁화호는 적자가 늘어나니 폐지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더 큰 명분을 제공하게 된다. 인구가 감소하면서 시외버스 노선마저 줄어드는 지역도 늘어나고 있어 사람들은 자동차를 구매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에게 자동차 보유가 해결책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경제적 이유만 아니라 나이부터 건강까지 운전하기 어려운 사람은 많다. 교통 불편은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이주를 결심하는 큰 원인이다. 

여러 이유로 인구와는 비교할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차량은 증가하는 추세다. 아무리 전기차를 도입하고 대도시에서 대중 교통체계를 개편한다고 해도, 농촌을 포함한 지역 주민들의 교통권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전체 차량 숫자는 증가하면서도 지역은 점점 공동화하는 상황을 피하기 어렵다. 

이번 파업을 앞두고 철도노조와 기후정의운동이 손을 잡은 이유가 단지 파업과 대행진의 시기가 겹쳐서는 아닐 것이다. 느리더라도, 값싸고 안정적으로 전국 구석구석 이동할 수 있는 대중교통 수단은 기후정의의 문제이기도 하고, 적자를 이유로 인력 부족과 위험한 운행을 강요당하지 않아야 할 노동자의 권리이기도 하다. 

지난해 폭우로 주거취약 계층이 겪은 참사가 곧 기후정의의 문제라는 인식을 가져왔듯이 사회적 약자들의 이동권이 곧 기후정의라는 인식의 확대도 필요하다. 이렇게 일상의 문제들을 함께 해결하고 연대해가는 기후정의운동을 두고, 먹고살기 힘든 세상에 인간의 멸종을 걱정하는 한가한 운동이라고 보는 일부의 편견도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철도노조 파업과 기후정의행진의 연대가 더욱 힘차고 깊어지길 바란다.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세교연구소 소장

경향신문 2023년 9월 18일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09182035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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