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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병직]시대의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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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3-09-08 12:05 조회72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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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인권조례 법률서비스플랫폼

산업혁명 시대의 영국 일화에 겹쳐 재생

시공간 넓혀 살피면 진실을 알 수 있어

 

어느 상황에서 단면적으로 보면 수긍할 만할 뿐만 아니라 장점이 엿보이는 것도, 시공간을 넓혀 역사 속에서 살피면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경우가 많다. 멀리 내다보지 못했다는 사후 평가를 받는다. 기존 질서에 익숙할수록 새로운 것은 불합리해 보인다. 당면한 문제의 해결에 집착할 때, 먼 훗날까지 고려하여 눈앞의 혼란한 듯한 상황을 참고 기다리기는 어렵다.


존 러스킨은 산업혁명을 찬탄의 눈이 아니라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조악하고 천편일률적인 물건을 기계로 마구 찍어내는 짓은 집어치워야 한다.” 기계를 사용한 대량 생산은 사기 행각이나 다름없다고 비난했다. 빠른 속도로 많이 만들어 내는 공정은 그 자체로 작업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정직한 방식이 아니라는 논리였다. 대안으로 수공업으로의 복귀를 내세웠다. 인간 본래의 모습을 간직한 수공업이야말로 정성이 담긴 진실한 작업이라는 의미였다.


러스킨에 이어 윌리엄 모리스도 공예재건 운동에 나섰다. 그러나 손에서 나오는 진정한 솜씨가 빚은 제품을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하여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자 했던 원대한 목표에는 이르지 못했다. 오히려 기계적 대량 생산에 반대한 그들의 운동은 엉뚱한 결과를 초래했다. 소량으로 제작된 수공예품은 대부분 가진 자들의 손아귀에 들어가 부를 과시하는 장식품 역할을 했다. 심혈을 기울인 디자인의 책 표지나 벽지 같은 일상의 용품도 마찬가지였다.


러스킨과 모리스의 단순화한 사례에서, 변화에 대한 거부가 물리칠 수 없는 역사의 필연적 물결에 맞선 소박한 어리석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기계라는 괴물이 처음 등장했을 때 거부하는 몸짓에는 이유가 따랐다. 더디나 섬세한 손길은 믿을 수 있지만, 정신이 수반하지 않는 차갑고 거대한 기계는 획일적이어서 정교하지 못하다는 주장이었다. 자동으로 움직이는 기계는 손으로 조작하는 도구를 능가할 수 없다는, 시대적 확신이 심어주는 근거였다. 기계 문명에 반대하는 작은 움직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쇳덩어리가 찍어낸 제품 중에서 나온 불량품을 증거로 제시했다. 물증을 손에 든 순간에는 승리의 가능성이 없지 않은 것으로 믿었을 터이다. 그러나 당시의 조악한 제품들은 거의 전부가 기계 탓이 아니라 기계를 잘못 다룬 결과였다.


한여름을 꽉 채우는 듯한 더위가 금년의 인상적인 분기점이 되기 직전까지 우리 주변을 맴돌던 이야기들이 산업혁명 시대 영국의 일화에 겹쳐 재생된다. 어린 학생들의 일탈행동이 교권 침해 문제로 대두되자, 그 원인을 학생인권조례에서 찾는 사태가 벌어졌다. 학생의 폭력을 허용하는 인권조례는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학생에 대한 폭력을 막음으로써 학생들로 하여금 폭행을 다스릴 수 있도록 의도한 것이 학생인권조례다. 바람직하지 않는 사건의 발생은 조례 때문이 아니라 생활을 지도하고 조례를 운영하는 학교 안팎의 어른들 탓이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인권법으로 나아가야 시대의 흐름에 맞는 방향이다.


젊은 법률가가 창의성을 발휘해 만든 법률서비스 플랫폼에 제일 먼저 제동을 건 것은 변호사단체였고, 법무부 징계 절차에까지 넘겼다. 낡아 가는 모습이 완연한 단체는 무엇이 자신들의 이익인지조차 잘 판단하지 못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아마도 이 시대 특정 단체의 실수라기보다, 인간의 역사적 습관일지도 모른다. 사이버 법률가는 사피엔스 법률가보다 더 뛰어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 현재 모든 프로기사들이 모시는 스승은 기타니 미노루도 오청원도 조훈현도 아니다.저 문밖에 이글거리는 더위를 한순간에 잠재울 기계는 없는가, 겨우 실내만 시원하게 만드는 에어컨이라는 기계 소리 쟁쟁한 방안에서, 가을의 생각에 잠긴다. 




차병직 변호사 (법무법인 한결·법률신문 공동 편집인)

법률신문 2023년 8월 16일

 https://www.lawtimes.co.kr/opinion/190285?serial=190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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