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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가치와 이익의 균형을 추구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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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3-07-10 18:13 조회9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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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한국전쟁과 6·10민주항쟁을 함께 기억하게 한다. 최근에는 중국과의 외교 마찰이 심해지면서 외교·안보 불안이 부각되고 있다. 여기에 성장이나 무역 지표까지 감안하면 ‘비상시국’을 걱정할 때다. 이 와중에 벌어지고 있는 ‘가치’ 외교 논쟁은 상황을 극도로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하루하루 ‘현실’에 부대끼는 많은 국민들 입장에서는 한·미·일 협력을 사대외교로만 규정하는 것도, 한국이 자유의 전사로 중국·러시아와 맞서야 한다는 것도, 공허한 말잔치일 뿐이다.

이일영 한신대 교수

이일영 한신대 교수

가치 외교를 주장하는 이들은 중국과 러시아가 자유롭고 개방된 국제질서를 뒤흔들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한국이 미국·일본·유럽과 힘을 합쳐 중·러에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학자들은 행위 주체가 도덕적 가치보다는 현실의 자기 이익에 기초한 행동을 한다고 보는 편이다. 냉전 시기에는 양 진영 간 분리 속에서 분업이 추진되었으며,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에는 미·중 간 교환체제 속에서 달러본위제를 운영했다. 현재는 중국의 산업구조 고도화로 분업구조의 변경이 이루어지고 있는 시기다. 미국으로서는 중국의 추월을 용인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자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중국을 견제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그간 중국과의 분업체제에서 많은 이익을 거두었으나, 이제 산업 간 경쟁구도가 강화되고 있다. 이제 중국 이외의 지역과의 분업체제를 좀 더 강화할 시기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과 군사동맹을 맺은 것과 한국의 경제적 이익은 별개의 문제다. 미국이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챙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은 국제적으로 당당하게 스스로의 이익을 추구하고, 국내적으로는 자유시민 모두의 권리를 공화적으로 증진하도록 노력하면 된다.

현재 미·중 갈등에는 구조적 요인이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미·중 갈등이 달러 체제 안에서 ‘협조적 적대’의 형태로 이루어질 것으로 본다. 첨단기술 분야를 제외하면 미·중 협조와 분업은 더 심화될 수도 있다. 한국은 전환의 방향과 속도를 신중히 관찰하면서 자신의 위상에 걸맞은 새로운 가치를 정립하고 현실의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

정부는 좀 더 신중하게 메시지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 외교관들은 ‘말 폭탄’을 주고받는 상황을 자제하고, 최후까지 협상을 관리하는 책무를 지켜야 한다. 역사 해석이 외교 및 경제 문제로 번지면, 수습하는 데 많은 힘이 들어간다. 한·일, 한·중 관계 모두에서 정부가 역사 해석에 나서는 것은 경계할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월 미국 의회에서 ‘장진호 전투’를 언급한 바 있다. 이는 한국전쟁에서 주요 전투인 것은 맞지만, 미국과 중국 모두에 ‘빛나는 승리’는 아니다. 미군은 38도선을 돌파하면서 중국의 참전을 예상하지 못한 채 매복과 기습에 걸렸다. 미 7사단 31연대전투단은 장진호 인근에서 거의 전멸하고 말았다. 중국 입장에서도 당시 동부 전선에 투입된 최정예 부대 15만 병력 중 4만명을 잃었다. 잊고 싶은 고통스러운 기억일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중국 내수시장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데 장진호 전투에 대한 언급은 한국기업들과 국가 이미지에 타격을 입히는 요인이 되었다. 중국에서는 마침 2021년 <장진호>라는 블록버스터 영화가 엄청난 흥행을 거둔 바 있다. 이 시기에 중국 대중들이 다시 장진호를 떠올리면, 한국기업들의 입지는 더욱 어려워진다.

정부 안에서는 통상교섭본부가 비교적 균형 잡힌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 같다. 안덕근 본부장은 윤 대통령의 미국 방문 성과를 “첨단산업 공급망 협력 강화와 첨단기술동맹 구축, 첨단기업들의 투자 확대”로 설명한 바 있다. 한·미 정상이 반도체와 전기차 분야에서 한국기업의 부담과 불확실성을 최소화한다는 명확한 합의를 했다고 밝혔다. 신흥국과의 경제동반자협정, 무역투자촉진 협의체 추진 등도 중요한 과제로 언급했다. 향후 성과를 지켜볼 일이다. 안 본부장은 중국도 가장 중요한 교역상대국이자 협력 파트너이며, 실무차원에서 접촉을 이어가고 있다고 언급했다. 현실적인 태도이다.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중국 견제를 위해 모인 주요 7개국(G7) 정상들도 디커플링 대신 디리스킹을 말했다. 우리도 경제 안정을 위해 중국과의 공급망 협력체계를 촘촘하게 점검해야 한다. 격변의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울 때 정부가 섣불리 앞장 서는 것은 위험하다. 실수와 충격이 겹치면 회복이 어려울 수 있다. 신중하게 가치와 이익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 정부의 현명한 대처를 기대해본다.


이일영 한신대 교수

경향신문 2023년 6월 14일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0614030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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