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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병직]정교한 예측, 어긋나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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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3-05-30 16:47 조회1,1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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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없으면 살 수 없다. 그렇다면 다른 별들도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는 일은 당연하다.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점성술이다. 점성술이 첨단의 과학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당대의 과학자 프톨레마이오스는 인간의 성격은 물론 외모까지 별자리의 영향을 받는다고 믿었다. 천체물리학의 체계화에 결정적 기여를 한 브라헤와 케플러 역시 점성술을 외면하지 않았으며, 뉴턴까지 관련 서적을 탐독했다.
갑골문으로 점괘를 읽던 고대 중국의 점복관이나 점성술사는 정치 공동체에서 최고 결정권자의 핵심 자문역이었다. 가장 영검한 점복관은 국가 대사의 결단뿐만 아니라 체제 유지에도 필요했다. 최고의 점복관이 군주의 실각을 예언하면, 무력을 사용한 쿠데타는 정당화될 수밖에 없었다.
지난날 군주의 곁을 점성술사가 지켰다면, 현대 국가에서 그 자리는 누가 대신하고 있을까? 경제학자가 정답에 근접한다. 웬만한 실정도 경제 문제만 해결하면 덮이고, 아무리 잘해도 경제 정책에서 실패하면 소용이 없다. 국가의 권력자는 경제 관료에 의존한다. 유능한 경제학 폴리페서들은 어떠한 능력을 가졌는가? 그들은 경기나 경제 현실의 예측 능력이 보통사람들보다 월등히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가? 그런 면에서 과거의 복사(卜士)에 비교되는가?
마약사범 증가에 대한 책임을 경제학자들에게 돌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시장만능주의를 신조로 삼는 시카고학파의 총수 밀턴 프리드먼이 1991년 텔레비전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마약 규제는 수요를 통제하지 못하므로 사회적 비용만 낭비한다.” 거래를 자유롭게 허용하되 세금을 부과하면 가격 원리에 따라 수요 공급이 조절되면서 자연스럽게 마약은 억제될 것이라는 논리와 전망이었다. 하버드의 제프리 마이런은 죄악세라는 구체적 세제안을 제시하며 마약 통제와 세수 증대를 동시에 이룰 수 있다고 기염을 토했고, 수백 명의 경제학자들이 지지했다.
결론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예측이 틀렸다는 것이다. 마약 합법화는 오히려 마약 남용으로 인한 사망자 수를 증가시켰으며, 더 싸고 효과는 강한 신종 마약까지 등장하게 만들었다.
특수한 품목이어서 예측이 빗나간 것일까? 경기든 환율이든 일반의 경제 현상에 관한 예측의 적중률은 아마도 더 낮을 것이다. 케인스학파와 시카고학파의 대립만 보더라도 사사건건 정반대의 주장만 해 댔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일까? 해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두세 명씩 나오지만, 그 나라의 대통령이나 수상의 지지율이 굳건해지도록 경제 문제를 해결했다는 소문은 들은 바 없다.
학문이 예측 능력을 갖추어야만 하는가? 그런 능력이 없다면 도대체 어디에 쓸모가 있다는 말인가? 역사주의적 편견에서 비롯한 그러한 생각이 지배적일 때가 있었다. 역사는 고유한 내재적 법칙에 따라 발전 또는 진전한다. 그 법칙만 알아내면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 칼 포퍼가 비판의 대상으로 삼기 위하여 규정한 역사주의다.
앞을 내다볼 줄 모르는 전문가의 지식이라면 정책 결정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 과거 점복관보다 나을 것이 없다. 경제학뿐만 아니라 근대와 함께 나타난 정치학이나 사회학도 마찬가지다. 이미 일어난 현상을 정교하게 개발한 도구로 분석한 다음 예측을 통해 능력을 과시하려 시도하지만, 매번 실패한다. 그럼에도 당황하지 않는 이유는, 동일한 전제 상황에서 논리를 전개하여 정반대의 결론에 도달하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경제학파만 9개다. 논리를 펼치는 과정에서 인간다운 합리성과 자유가 발휘된다고 여겨, 온갖 견해를 자격을 갖춘 이론으로 받아들인다. 맞지 않는 일기예보가 점성술보다는 과학적이라는 믿음 같은 것이다.
법학의 세계는 어떠한가? 법률과 재판의 영역에서 예측은 무관해 보이지만, 그 관계의 탐구는 미래의 과제가 될 수 있다.



차병직 변호사 (법무법인 한결·법률신문 공동 편집인)

법률신문 2023년 5월 4일

 https://www.lawtimes.co.kr/Legal-Opinion/Legal-Opinion-View?serial=187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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