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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서울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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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2-09-28 17:23 조회2,6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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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과 9일 서울에 폭우가 쏟아졌다. 하마터면 내 낡은 자동차도 동네 사거리에서 오도 가도 못하다가 그대로 폐차될 뻔했지만, 간발의 차이로 그 순간을 면했다. 문제는 10일 돌아본 동네의 모습이었다. 여기저기서 양수기를 이용해 지하 상점의 물을 퍼내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강남 일대가 막심하게 침수됐고 대통령의 무책임한 행동이 계속 도마에 올랐다. 서울시장의 ‘한강 프로젝트’는 세간의 비웃음을 흙탕물처럼 뒤집어썼고, 집권 여당 국회의원들의 한심한 행태들로 며칠 시끌시끌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사태가 수습되면 이 모든 일들은 또 잠잠해질 것이라는 냉소는 여전했다.



자연재해는 지구에 사는 목숨들의 숙명이지만, 그러나 각자의 처지에 따라 그 무게가 다르지만, 최근의 상황은 자연재해 자체마저 인재인 게 사실이다. 이야기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기후위기’라는 말이 점점 추상화된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우리의 현재 생활이 가능하게 된 역사적 과정을 돌아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의미 있는 세상의 변화가 있으려면 우리의 실감을 회복하는 일이 급선무인데 시급한 복구와 피해 보상은 재난에 대한 실감을 국가 책임으로 떠넘기는 아이러니를 낳는다. 그래서 대통령과 집권 여당에 대한 정치적 비난에서 멈추고는 한다. 그런데 민주당이 집권을 이어갔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이 질문은 현 집권 세력의 비루한 행태를 변호해주기 위함이 아님은 물론이다.


개발 만능주의가 기후위기 재촉


서울에서는 빗물이 도시 정책이 파놓은 길을 따라 흘러가게 되어 있고, 그것의 종착지는 한강이다. ‘홈 파인’ 길을 따라 움직이는 존재들은 그러나 문명 차원의 난관에 봉착하기 마련이다. 자동차도 도로라는 정해진 길을 따라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자동차가 많아지면 정체가 불가피하듯 빗물도 마찬가지이다. 현대 도시의 길은 거의 대부분 계획적으로 만들어진다. 그 계획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참조되지만, 서울의 경우 노골적으로 상품 판매를 위해 꾸려지기 시작한 때는 ‘국제화’가 강조되던 1990년대 들어서다. 이때 민자 역사(驛舍)가 만들어졌고, 이것은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다. 현대 도시는 이제 자연의 카오스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한 질서의 세계라기보다는 온갖 욕망과 이해관계 등이 뒤섞인 무절제하고 비정한 공간이다. 자연의 카오스는 가끔씩 도시를 휩쓸기도 하는데 감염병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도시가 첨단화되면 자연의 가공할 힘으로부터 안전할 것이라는 맹신이 우리에게는 있다. 사실 인간이 만든 첨단체계는 자연의 작은 힘을 방어해줄 수 있지만, 그 힘이 커지는 것에 비례해서 도시의 첨단은 위태롭다 못해 도리어 역습의 첨병이 된다. 미국이 핵무기를 가지자 다른 나라들도 핵무기를 만든 것처럼, 이쪽의 날이 매서우면 저쪽의 창끝도 비례해서 벼려지기 마련이고 내 미움은 상대방의 미움을 생기게 한다.


서울시는 이번 침수로 사람의 목숨까지 앗아간 반지하방을 불허한다고 한다. 그리고 거대한 빗물 저류 시설을 강남역, 도림천, 광화문 일대에 만든다고 한다. 각각의 관련 예산이 수천억원이다. 결국 폭우가 흐르는 길을 더 크게 내겠다는 것인데, 자동차 정체 현상이 심해지면 도로를 더 뚫으면 된다는 발상과 일치한다. 막히고 뒤틀리면 길을 ‘더’ 내면 그만이라는 구태가 살아 있는 한 감당 불가의 자연재해는 더욱 잦아질 것이다. 이런 개발이 기후 위기를 재촉하기 때문이다. 단기적인 방책도 당연히 있어야겠지만 문제에 대한 근원적 접근 없이 개발로 ‘때우겠다’는 정신적 불구는 이 나라 정치, 경제, 사회 엘리트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다시 말하면, 상상력과 영혼이 경제적 부에 사로잡혀 있는 한 우리는 그치지 않고 자연재해를 만들어낼 것이다.


서울 축소 안할 땐 자연재해 증강


무엇보다도 서울(정확히는 수도권 전체)을 축소하지 않으면 자연재해는 계속 증강할 것이고 그 피해 규모와 심도는 더욱 가중될 것이다. 서울의 자연화는 결국 더 이상의 개발을 그만두는 일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이 개발의 문제는 서울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지역에 퍼지고 있는 서울의 복사본들은 우리의 무의식을 ‘서울’로 채우면서 이웃의 삶과 생태계에 대한 염치와 절제를 모르는 ‘제국적 생활양식’의 광범위한 유포를 낳는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서울의 축소를 정치적·사회적 의제로 만들어내야 한다. 서울의 축소는 우리 사회에 유의미한 변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어 지역 간 그리고 지역 내 ‘함께 삶’이 가능할 것이다. 사실 자연재해를 감당하는 일도 바로 ‘함께 삶’의 역량과 관계있지 않은가. 그래서 하는 말인데, 서울 축소를 정치적·사회적 의제로 만들기 위해 서울시장을 전 국민이 뽑는 것은 어떨까? 서울은 ‘특별시’니까 이만한 특별함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서울도 그만 사람 사는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황규관 시인

경향신문 2022년 8월 22일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0822030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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