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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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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2-08-01 17:53 조회62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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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조선소 이야기를 들은 것은 고등학교 다닐 때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였다. 마침 친구의 형이 집에 있었는데, 친구가 소개하기를 대우조선소에서 용접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리(지금의 익산)에 있는 국립 공업고등학교 기계과를 졸업하고 대우조선소에서 용접을 하고 있다고 약간 자랑 삼아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처음 배 만드는 데 용접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친구는 서울에 있는 공업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나 또한 고향에서 먼 경상도에 있는 공업고등학교를 다녀서 그런지 정서적 동질감을 느꼈던 것 같다.

황규관 시인

황규관 시인

조선소에서 배 만드는 일이, 아무리 대기업에서 일을 한다고 해도, 그렇게 자랑 삼을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안 것은 훗날 시를 읽기 시작하면서였다. 백무산 시인의 ‘지옥선’ 연작에 묘사된 조선소 노동은, 그야말로 목숨을 담보로 하는 노동이었다. 시인이 기록한 조선소 노동은 1970년대의 모습이지만, 이후에 접한 이야기들도 그렇게 다르지 않았다. 총 9편의 ‘지옥선’ 연작은, 거기가 얼마나 비극적인 노동 현장인지 생생하게 들려주었는데, 특히 다음과 같은 구절은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내 심연을 뒤흔들어 놓았다. “우리가 쌓은 것이 되레 우리를 짓이기고/ 가야 할 곳마다 철책을 둘러치고/ 비켜 비키란 말야!/ 죽는 꼴들 첨 봐! 일들 하러 가지 못해!”(‘지옥선·2―조선소’)

대우조선 사태가 던진 깊은 질문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부지회장 유최안씨가 자신이 만든 가로세로 1m 철제 ‘감옥’에 스스로를 감금하는 농성을 시작했다는 뉴스를 듣고 나는 마음을 딴 데로 돌리려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몇 년 전 조선업에 불황이 닥쳤을 때 많은 노동자들이 내쫓겼던 사실을 나도 모르게 떠올리고 있었다. 다시 얼마 후 조선업이 다시 활기를 찾았다는 소식을 접하고서는 그때 떠난 노동자들의 안부가 궁금하기도 했다.

노동력 자체가 자본의 구성 요소이고 노동자가 없으면 자본주의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역사적 진리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분배 투쟁은 자본의 이윤을 침해해 자본의 구성 비율을 흔들어 놓는다. 노동자들의 생활이 아무리 빈궁해도 자본이 적절한 분배를 외면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개별 자본가의 인격 문제와는 다른 구조의 문제이다. 즉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총자본이 그것을 외면하게 하는 것이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요구는, 몇 년 전 불황일 때 깎인 임금을 이제 경기가 좋아졌으니 복구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소박한 요구였다. 그것도 소급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지금 임금으로는 도저히 살 수도 없고 5년 동안 그것을 감내해 왔으니 원상복구해 달라는 요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총자본을 대변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정부에 대뜸 공권력 투입을 요구했고, 며칠 지나자 대통령이 나서서 답변을 했다. 불법 운운하며 연일 노동자들을 압박한 것이다. 그러자 판사 출신 행정안전부 장관과 경찰청장 후보자가 현지에 내려갔고, 안전진단을 벌인다며 법석을 떨었고, 경찰이 배치됐다. 심지어 대통령은 자신의 휴가와 사태 해결을 결부시켜 발언하기도 했다. 이런 태도는 대통령이 아니라 영락없는 사법 관료의 모습이었다.

지난 23일 협상이 마무리되고 노조는 파업을 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복기의 중요성도 나름 있지만, 이 사태가 우리에게 새삼 깊은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 정부와 여당, 그리고 대부분의 언론들이 보여준 저급한 모습들은 예상했던 대로지만, 불쾌하고 암담한 기분은 어쩔 수 없다. 파업은 마무리되었다지만 손해배상 소송 문제는 협상 테이블에서 빠진 것으로 알려졌고, 협상 타결 후 정부는 합동담화문을 통해 파업 참여 노동자들에게 형사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금속노조가 담화를 거부한다고 답했지만, 다소 공허한 목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후가 더 걱정이다. 세월호 참사도 사람을 경제적 이윤을 위한 요소로 봤기 때문에 일어난 것인데, 그동안 거기에서 나아간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통탄스럽기만 하다. 여기에는 전 정권인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도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반인간적 사태의 활로 묻고 싶다 

나는, 그게 어느 쪽이든 정치권에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제안하는 일에 흥미가 없는 사람이다. 어차피 그들은 안 듣거나 대충 들을 것이 빤하기 때문이다. 도리어 우리의 삶을 뒤덮고 있는 반인간적이고 반생명적인 사태들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지, 우리 스스로에게 묻고 싶다. 옛 로마공화국 초기에 평민들은 원로원이 부채 탕감과 토지 재분배 등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몬스 사케르’(거룩한 산)에 올라가 총파업을 벌였다. 민주주의는 이렇게 나아간다.


황규관 시인

경향신문 2022년 7월 25일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0725030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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