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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수연] “당신, 마술을 믿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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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2-06-02 13:19 조회3,0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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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행복에 대한 것이 아닐까 싶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라고 질문한다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시 숨을 고른 후에는 제법 답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행복한가요”라고 묻는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여기에 큰 고민 없이 긍정적으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우리에게 행복은 언제나 과거형으로 기억된다. 단지 인간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망각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행복이 우리 곁에 있음을 결코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의 새 드라마 ‘안나라 수마나라’는 바로 이 행복에 대한 질문을 새롭게 던진다. 바로 마술을 통해서 말이다. “당신, 마술을 믿으십니까”


빚에 쫓겨 도망가 버린 부모를 대신해서 어린 동생을 돌보는 윤아이(최성은 분)에게 삶은 온통 잿빛이다. 하루하루의 생계를 꾸리는 일에도 허덕이는 소녀에게는 꿈은 그저 사치일 뿐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답 없는 세상에서 절망에 빠져 있는 소녀가, 정해진 답을 찾아가는 수학에 매료된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다.


하지만 윤아이와는 정반대 지점에 놓여 있는 나일등(황인엽 분)의 삶도 그리 찬란하진 않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이 전교 1등은 부모가 정해준 삶의 궤적을 그대로 따라가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조금만 잘못 내딛어도 추락한다는 두려움에 소년은 자기 신체를 학대한다.


그리고 여기 버려진 유원지에 사는 한 마술사가 있다. 가장 절박한 순간에 소녀와 소년의 앞에 나타난 마술사 리을(지창욱 분)은 환상 같은 마술을 선사한다.


그의 마술은 그저 트릭일지 모르지만, 그가 선물하는 그 찰나의 행복은 그 자체로 진짜 마법이 된다. 그것은 자꾸만 과거형으로만 돌려지는 행복의 순간이, 사실은 우리의 현재에 그리고 그 찰나에 있음을 기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술사 리을이 선사한 그 찰나의 행복은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현재를 오롯이 들여다보게 힘을 준다. 소녀는 자신이 감내해야 할 가장 큰 짐이라고 생각했던 동생이 사실 자신의 가장 큰 행복이었음을 깨닫고, 자신의 삶을 일궈낼 수 있는 힘 역시 자기 자신 안에 이미 있음을 깨닫는다.


일등이라는 목표만을 향해 나가던 소년 역시 그 자리에서 잠시 속도를 멈춘다. 끝도 없이 질주해야 하는 성공의 지름길 바깥에 존재하는 험난한, 그러나 오직 자신의 힘으로만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길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세계관은 벨기에의 극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동화 ‘파랑새’와 맞닿아 있다. 이 동화 속에서 아이들은 희망의 파랑새를 찾기 위해 집을 떠나 험난한 여정을 겪는다.


아무런 소득 없이 돌아온 아이들을 맞이한 것은 집에 있던 파란 멧비둘기. 아이들은 희망도 행복도 결국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넷플릭스의 ‘안나라 수마나라‘가 달콤한 위안과 함께 속 깊은 격려가 될 수 있는 이유도 이와 꼭 닮아 있다.


마술과 마법의 차이는 어쩌면 종이 한 장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마술사의 손길은 동일하지만 누군가에게 그것은 찬란한 환상으로 채워진 마법의 순간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그저 조악한 트릭을 통한 눈속임에 불과하다.


어떤 것을 믿고 있느냐에 따라 우리의 오늘은 다가올 희망에 대한 기대가 되기도 하고, 더없이 보잘 것 없는 미래에 대한 예고가 되기도 한다.


드라마 ‘안나라 수마나라’가 보여주는 세상은 그리 거창하지 않다. 찰나의 마술이 끝나면 우리 모두는 현실로 돌아온다. 소녀와 소년은 자기 삶을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지만, 그것은 그들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변화시켜 주진 않는다.


그렇지만 다시 마주한 세상은 분명 달라져 있다. 소녀는 생계의 쫓기는 하루 속에서도 웃음을 되찾고, 소년은 자신만의 꿈을 찾기 위해 부모에 의해 강요된 기존의 경로를 벗어났다.


그들은 자신만을 위한 오늘을 선택했고, 그것은 찰나의 희망에 힘을 얻어 또 다른 희망으로 나아간다. 마술의 순간을 마법으로 만드는 힘은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에게 있다. 그러니 다시 주문을 외워보자. 안나라 수마나라. 당신은 믿을 준비가 돼 있습니까.


류수연 인하대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인천투데이 2022년 5월 20일 

http://www.incheon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218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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