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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주][한반도포커스] 협상이 작동하지 않는 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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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2-02-14 17:12 조회3,9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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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0일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보내지 않겠다며 “미국과 러시아가 서로 총을 쏘기 시작하면 그것은 세계대전”이라고 경고했다. 역사였던 ‘세계대전’이 갑자기 현실 문제로 등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가 세계대전에 가장 가까이 갔던 상황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다. 미군 정찰기가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는 장소를 촬영한 이후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그해 10월 쿠바 해상 봉쇄를 선포했다. 소련과 쿠바는 반발했고, 이 사태가 미·소 간 핵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다. 전쟁의 후과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미·소의 비공개 협상을 거쳐 소련은 쿠바 미사일 기지를 해체하고, 미국은 쿠바를 침공하지 않는다는 데 합의하며 위기가 해소됐다. 이를 계기로 케네디는 과감하고 신중한 위기 관리를 통해 소련의 도전을 물리치고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과시했다.

80년대 말부터 당사자들의 회고와 자료들이 공개되면서 다른 사정이 있었음이 밝혀졌다. 미·소 간 협상에는 미국이 터키와 이탈리아에 설치한 중거리미사일 기지 철수가 포함돼 있었다. 이는 피그만 사건으로 알려진 미국의 쿠바 카스트로 정권 전복 시도와 함께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 배치를 추진한 주요 원인이었다. 케네디도 이를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련 요구를 수용했고, 63년 비밀리에 이 기지를 폐쇄했다. 주목할 부분은 양자의 이익이 교환되는 방식으로 위기가 해결됐다는 점이다.

현재 국제사회에서 출현하고 있는 위기가 이런 협상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 가능성은 낮아졌다. 무엇보다 미국이 협상에서 완승을 거두려는 경향을 강하게 보이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타결됐던 이란 핵 협상은 파기됐고, 북한의 핵 능력 강화를 억제하는 데 있어 중요한 진전이 될 수 있었던 ‘영변 핵 폐기’ 안도 거부됐다. 그 결과 이란과 북한의 핵 능력은 향상됐고, 이는 다시 협상을 어렵게 만들고 위기를 고조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쿠바 미사일 위기와 유사성이 높은 우크라이나 사태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당분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가능성은 없다고 하면서도 이를 공식 약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신뢰가 있다면 이 딜레마를 해결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수 있겠지만, 나토의 동진으로 미·러 간 신뢰가 약화된 상황에서는 매우 어렵다. 러시아가 서면 약속을 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쿠바 미사일 위기의 해결 과정에서 미·소는 터키와 이탈리아의 중거리미사일 기지 폐쇄 관련 합의를 공개하지 않았다. 케네디가 국내 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해 강력히 요구했기 때문이다. 미국에 굴복했다는 인상을 남겨 정치적 입지가 약화됐지만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이에 대한 우려보다는 실질적 이익을 더 중시했기 때문에 합의했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은 물론이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포함한 대부분 정치적 지도자가 자신의 권위와 지도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협상에 응할 가능성이 낮다. 정치적 타협의 여지가 훨씬 축소된 셈이다.

그렇다면 현재 위기는 충돌로 인한 결과를 모두가 각오해야 하는 상황까지 진전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으로선 어떤 길을 찾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런 때 국내에서 국제 사안을 선악이나 승패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증가하는 것은 우려스럽다. 갈등과 대립을 격화시키는 방식의 선택은 우리 미래에 대한 위협을 증가시킬 것이다. 핵 위기가 고조되거나 우크라이나 같은 사태가 동아시아에서 반복되지 않도록, 그리고 혹시 갈등이 생기더라도 평화적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이남주(성공회대 교수·중국학과)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231388&code=11171395&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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