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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근]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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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1-12-20 14:27 조회8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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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말부터 엊그제까지 제주에서 지냈다. 파주로 돌아오니 영하 10도 아래 맹추위다. 봄날 같던 제주가 그립다. 일거리를 잔뜩 가져간 터라 구경 다니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중산간 외딴곳의 숙소에서 일하다가 가끔 버스 타고 나가 주변을 걷는 정도였다. 제주살이라기보다는 숙소살이에 가까웠달까.

숙소에는 열네살 먹은 노견 ‘초코’가 있었다. 무척이나 활발했는데 작년부터 건강이 나빠졌단다.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기저귀를 찬 채 가만히 다녔다. 주인 가족에게 초코는 소중한 식구였다. 부인이 아팠을 때도 초코가 큰 힘이 됐단다. 처음 머무는 내게도 다가와 머리를 대곤 했다. 나도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프지 말고 오래 살자.”

지지난주 후반부터 초코 상태가 급속히 나빠졌다. 먹지도, 움직이지도 못했다. 제주시 병원에 데려갔지만 방법이 없다고 했단다. 병원 다녀온 다음날 저녁, 누워 있는 초코를 쓰다듬었다. 초코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날 밤사이 초코는 무지개다리를 건너 자기 별로 돌아갔다. 

양지바른 창가에 초코의 자리가 마련됐다. 향도 피웠다. 주인 부부와 머무는 이들, 이웃들이 아이 앞에서 추억을 나눴다. 저녁에는 더 많은 이들이 모여 함께 식사하고, 추억을 담은 동영상도 보았다. 다음날 아침, 장례를 치렀다. 초코가 좋아했다던 바람 많은 팽나무 아래 무덤을 만들었다. 한 이웃이 곡괭이질로 땅을 파고, 내가 삽질을 했다. 부부는 초코를 안고 뛰놀던 집 안이며 마당이며 이곳저곳을 마지막으로 거닐었다. 초코가 제일 좋아하던 방석에 눕히고 밥과 꽃과 함께 묻었다. 돌을 모아 예쁘게 무덤을 두르고, 초코가 바람을 타고 올라가는 모양의 숙소 로고도 꽂았다. 봄이 되면 잔디를 심는다고 했다. 마지막 집이 예뻐서 참 좋았다.

이쯤에서 누군가가 말할 것 같다. 동물 매장은 불법이라고. 맞다. 현행법상 세가지 방법만 합법이다.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리거나, 동물병원에 위탁해 의료폐기물로 버리거나, 동물화장장에서 화장해야 한다. 당신이라면 식구를 쓰레기로 버리고 싶은가? 화장이 유일한 대안인데, 제주에는 아직 동물화장장이 없다. 전국적으로도 많지 않다. 반발도 심하다. 탈 없는 대안은 쓰레기로 버리는 것뿐이다.

반려동물이 쓰레기가 되는 이유는 법이 동물을 물건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민법 제98조는 “물건이라 함은 유체물 및 전기 기타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을 말한다”고 하여 동물도 물건으로 규정한다. 매매되고 쓰레기가 되는 이유다. 죽임당하고 학대당해도 재물손괴죄로 처리된다. 동물학대죄가 적용돼도 처벌이 매우 약하다. 기본적으로 물건인 탓이다. 국제적 입법 추세는 바뀐 지 오래다. 1988년 오스트리아가 처음 민법상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고 정의한 이래 독일, 스위스, 프랑스 등 여러 나라가 뒤를 이었다. 프랑스 민법에서는 “동물은 감정을 지닌 생명체”라고 정의한다.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려는 모습이다.

우리 법무부도 지난 7월에 입법 예고한 민법 제98조 신설 개정안에서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조항을 두기로 결정했다. 다행이다. 여당 대선 후보는 진료비 표준수가제, 반려동물 의료보험, 반려동물 공제조합 설립 등을 공약했다. 반갑다. 야당 대선 후보도 같은 취지로 구두 약속했다는데, 말로만 그치지 말길 바란다. 법이 모든 학대를 막지는 못하지만, 법이 없으면 아예 못 막는다. 사람도 살기 힘든데 동물까지 신경 쓰느냐는 항변이 있을 법하다. 동물에 대한 애정이 인간 혐오의 이면일 수도 있다. 나치의 동물보호법은 그 사례다. 어려운 문제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이 1500만명에 달하는 시대다. 사람이냐 동물이냐라는 이분법보다는 생명으로서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재작년에 임시보호했던 유기묘 ‘쩜오’는 송곳니가 모두 부러져 있었다. 학대의 흔적이었다. 다행히 따뜻한 가정에 입양됐다. 작년에 임시보호한 유기묘는 중성화 수술 준비 중에 고치기 힘든 큰 병이 발견됐다. 이미 중성화도 되어 있었다. 수의사는 병 때문에 버려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코루’는 우리 식구가 됐다. 장례를 치르다 보니 문득 코루가 더 보고 싶어졌다. 더 머무르려다 돌아온 이유다. 추운 밤에 코루를 껴안고 잠을 청하니 체온이 따뜻하다. 초코도 따뜻했으면 좋겠다.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조형근 사회학자

한겨레 2021년 12월 20일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2394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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