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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근]우리 시대의 마지막 가부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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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1-10-01 17:33 조회1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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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집안 들어와서 제사 모신 지 사십육년 됐다. 내년에 너거 아부지 첫 제사 모시면 사십칠년이다. 그까지만 하고 고마 없애자. 내는 할 만치 했다.” 모두 숨을 죽였다. 어머니가 말을 이었다. “너거 아부지, 육이오 때 북에 부모님 못 모시고 왔다 아이가. 제사 지낸다는 생각도 몬 하고 살더라. 내가 인자 제사 모십시더, 해가꼬 시작한 제사다. 내가 끝낼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의 설 명절이었으니 11년쯤 전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단호했다. 나는 어머니 말씀이 옳다며 맞장구를 쳤다.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었다. 동생도, 세 며느리도, 사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형은 묵묵부답이었다. 나는 알았다. 형은 어머니 뜻을 따를 것이다. 결코 수긍하지 않은 채.

그 몇 해 전에도 어머니는 제사 폐지를 주장하셨다. 믿는 집안에서 제사는 떳떳하지 않다며 설득했다. 아버지의 동의를 얻으려 만든 논리였다. 그러자는 아버지 표정이 먹먹했다. 형은 달랐다. 맞서지 않되 제사는 모셔야 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결국 못 없앴다. 당신 떠나기 전까지만 모시자는 아버지 바람에 어머니가 졌다. 아버지가 떠나시자 어머니의 폐지 선언은 당연했다. 형은 끝내 말이 없었다.

대개 그렇듯 우리 집도 명절은 불화의 씨앗이었다. 어머니는 손이 컸다. 생선, 전, 탕국, 나물, 과일, 떡, 한과 등등 상차림이 끝이 없었다. 친가, 외가 모두 우리가 큰집이라 수십명이 먹고 집집마다 가득 싸갈 만큼 음식을 했다. 어머니가 앞장서고 며느리들이 따랐다. 평소에도 바쁜 처는 연휴 내내 일하면 몸과 마음이 아팠다. 나도 우울증이 걸릴 것 같았다.

반면 형은 어려서부터 장남다웠다. 배 타느라 부재한 아버지를 대신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컸던 것 같다. 동생들에게 집안일을 시키고, 숙제검사도 했다. 아버지와는 달리 벌도 주고 매도 때렸다. 대들다 더 맞기도 했다. 내 사춘기 무렵 고통의 원천은 가부장적 형이었다. 물론 어릴 적 이야기다. 장성한 형은 늘 동생들을 존중하고 무엇이든 의논해서 결정했다. 그래도 가부장이었다. 졸업 후 취직하자 비싼 제기세트부터 사왔다.

“천천히 오라”고는 해도 어머니 속마음은 명절 때 빨리 와 일하는 며느리를 바랐다. 그만큼은 시어머니였다. “조씨 집안 제사에 조씨들은 누워 있고, 여자들이 일하고 있다”며 나무랄 만큼은 주체적인 여성이었다. 그 양극을 오가다 파파 할머니가 되어 매듭을 지었다. 몇 년 전부터는 아예 명절 귀성도 없애셨다. 대신 좋은 때를 잡아 1박2일, 가족여행을 한다. 집에서 모이면 결국 일하게 된다는 이유다. 그마저도 코로나19로 작년부터 끊겼다.

제사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다. 코로나19가 분기점이 될까? 한국갤럽 조사 결과를 보면 추석에 1박 이상 귀성 계획이 있는 이의 비율이 늘 30%를 넘다가 작년, 올해는 10%대에 그쳤다. 여러 조사에서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응답은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제사는 부계 친족집단의 결속이 사회의 기초이던 옛 시대가 낳은 의례다. 남성 가부장들의 권위를 기리는 의례에 남의 집안에서 온 여성들을 동원했다. 친족연결망이 약화된 현대에도 제사는 흩어진 부계의 핵가족 구성원을 재결속하는 가족주의 의례로 살아남았다. 그래서 제사는 단지 의례가 아니라 강고한 가족주의 규범의 무기다. 이혼과 비혼이 난만하고 다른 형태의 가족이 부상하는 이 시대와 부딪히는 이유다. 결국 문제는 제사가 아니라 저 버거운 가족주의다. 이 변화가 노여운 가부장과 시어머니도 적지 않을 것이다. 어찌해야 할까?

추석 전주에 아들 셋만 어머니 댁에 모였다. 어머니가 문득 형이 아버지 제사를 지낸다는 말을 꺼냈다. 금시초문이었다. 형이 장을 봐서 음식을 만들고 혼자서 제사를 지낸단다. “왜 알리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형이 웃었다. “괜찮다, 나 혼자 지내면 된다.” 제사상 앞에서 홀로 아버지에게 절을 올렸을 형이 떠올랐다. 형은 끝내 가부장으로 남았다. 대신 홀로 책임지고 요구하지 않는 길을 선택했다. 존경받는 진보지식인이었던 내 스승 한 분은 뼈대 있는 가문에서 자라 가부장의 모든 의무를 감당했다. 당신대로 끝낼 테니 자식들은 따르지 말라 당부하고 떠나셨다 전한다. 우리 시대 마지막 가부장들의 어떤 모습이다. 짐 벗지 못했으되 짐 지우지 않았다. 그 책임윤리가 서늘하다. 때로 사멸하는 것이 가슴 시린 이유다.

조형근 사회학자 
한겨레 2021년 9월 26일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12747.html#csidx1d40be0a76dfaf9b7a48b76e695056e onebyone.gif?action_id=1d40be0a76dfaf9b7a48b76e695056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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