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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환] 기후 위기와 전태일의 '인간적인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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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0-11-23 14:28 조회3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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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 오늘, 1970년 11월13일은 전태일 열사가 자신의 몸을 불태워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며 체제에 항거한 날이다. 그러나 그를 투사로만 기억하면 상투적 인식에 갇히는 일이다. 오래전 TV 인터뷰에서 여동생 전순옥 박사가 살짝 미소 지으며 “우리 오빠는 우스갯소리도 잘하고 밥상머리에서 남 흉내 내기도 정말 잘하던 이”라고 말하던 장면이 기억난다. 전 박사가 엊그제 라디오에 출연해서도 말했듯이, 그는 유쾌하고 붙임성 있는 청년이라서 중앙정보부가 분신 이후 그의 죽음을 호도하려 해도 동네사람들부터 전혀 믿지 않았다. 또 힘든 삶의 와중에서도 혼자든 여럿이든 다양한 포즈와 복장으로 사진도 많이 찍었고, 일기, 메모, 소설 창작을 위한 구상을 많이 남길 만큼 생각이 깊고 감수성이 풍부한 젊은이였다.

 

조영래 변호사의 <전태일평전>에서 마주치는 문장들은 그래서 울림이 크다. 몇 대목만 읽어보자. “과거가 불우했다고 지금 과거를 원망한다면 불우했던 과거는 영원히 너의 영역의 사생아가 되는 것이 아니냐?”(1969년 12월31일 일기) “사람들의 공통된 약점은 희망함이 적다는 것이다. (중략) 진리란 경험에 의한 양심의 소리 그것이다.”(1970년 1월7일의 ‘낙서들’)

 

그러나 특별한 오늘은 다음 대목을 꼭 음미하고 싶다.

 

“어떠한 인간적 문제이든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 가져야 할 인간적인 과제이다. 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을 박탈당하고 박탈하고 있는 이 무시무시한 세대에서 나는 절대로 어떠한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어떠한 불의도 묵과하지 않고 주목하고 시정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첫 문장은 얼핏 비문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인간 사회에 중요한 문제라면 무엇이든 자신의 과제로 삼아 정면으로 부딪히는 자세가 있어야 사람다운 사람이라는 의미가 분명하며, ‘인간’이 세 번 반복되는 리듬감도 여운이 짙다. 정규교육을 거의 못 받은 탓에 그의 글에 가끔 보이는 어색한 요소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러했던 전태일이 살아 있다면 무엇이 그에게 가장 ‘인간적인 과제’일까? 당연히 50년 후에도 억압과 차별에 짓눌린 노동자의 삶에 가장 큰 관심을 쏟으며 필요하면 70대의 나이에도 언제든 거리로 나설 것이다. 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그는 기후 위기에 눈길을 돌릴 것이니 그것은 ‘인류세’라는 우리 시대의 으뜸가는 ‘인간적인 과제’이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러시아의 시베리아, 호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터진 어마어마한 산불과 중국, 일본, 한국이 겪은 심각한 수해, 이미 5000만명 이상의 감염자와 130만명 가까운 희생자를 낸 코로나19 대유행이 모두 인간의 생태계 파괴가 근본 원인임은 숨기기 힘든 과학적 사실이다.

 

더구나 코로나19 대유행이 특고노동자와 비정규노동자, 3밀(밀접·밀집·밀폐)환경에서 어렵게 생계를 잇는 영세자영업자에게 가장 고통스러우며, 노인과 장애인, 어린이 등 취약계층을 큰 위험에 빠뜨리는 현실을 전태일은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얼마 안 되는 차비를 털어 굶주린 어린 ‘시다’들에게 풀빵을 사 주고 도봉산 밑의 집까지 터덜터덜 걸어가다 밤 12시 통행금지에 걸리기 일쑤였던 그가 아니던가.

 

기후 위기에 대한 무감각은 새 세상을 절박하게 바라는 이들과 기성체제가 편하기만 한 기득권층을 가르는 좋은 시금석이다. 2018년 말부터 약 4개월간 활동한 4대강 재자연화 조사평가단의 좌절이 두드러진 사례이다. 이명박 정권이 앞장서서 망가뜨린 4대강의 재자연화는 문재인 정부의 약속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정부의 주요 관련 인사들이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함으로써 4대강 재자연화 사업은 표류하고 있다.

 

현 정부의 이처럼 모순되고 위선적인 자세가 지난 8월 섬진강 유역 수해 현장에서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4대강 사업에서 섬진강이 빠진 것이 잘못이라는 망언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김종인 위원장은 이 사업 추진을 경제적 타당성에 비춰 비판한 적은 있지만, 환경 파괴라는 인식은 거의 없고 재자연화가 경제적으로도 타당하다는 판단은 더욱 없다. 지난여름 기후 변화로 인한 집중호우 탓에 낡은 기준에 맞춰 설계되고 운영되는 섬진강댐 등도 홍수 조절 기능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4대강 보가 홍수 조절을 한다고 우기는 이들은 강물이 폭우로 불어난 날 아무 보나 골라 직접 나가보면 자신이 무슨 헛소리를 하는지 금방 깨달을 것이다. 오늘 전태일의 후예들이 떠안은 과제는 참 무겁다.

김명환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

 

경향신문 2020년 11월 13일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1130300065&code=990100#csidx9aad051ed1b5cd7a69e3a0ba1de3784 onebyone.gif?action_id=9aad051ed1b5cd7a69e3a0ba1de3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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