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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정] 오만과 편견, 한반도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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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0-11-23 14:24 조회3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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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은 결함일까요, 미덕일까요?”

 

소설 <오만과 편견>에서 여주인공 리지는 다시에게 돌직구를 날린다. 작가 제인 오스틴의 ‘언어의 연금술’이 빛나는 문장으로. 영어로 프라이드는 자부심이라는 의미도, 오만이라는 뜻도 갖고 있다. 그 틈새를 정확히 노린 질문이다. 남주인공 피츠윌리엄 다시는 오만에 전 부유한 신사, 리지 베넷은 편견 때문에 사랑을 알아보지 못하는 여주인공이라고 통상 얘기된다. 하지만 작가는 모든 등장인물에 오만과 편견이 내재하고 있을뿐더러 오만과 자부심은, 편견과 사랑은 종이 한 장보다 미묘한 차이일 수 있음을 에둘러 말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마자 한국에서는 ‘3기’ 논란이 뜨겁다. 바이든 정부가 오바마 3기가 될 것이라는 의견이 대두하더니, 클린턴 3기가 될 것이라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오바마 3기로 시작해서 클린턴 3기로 회귀할 것이라는 복합론도 등장했다. 바이든 후보의 대북정책 공약이 짧고도 추상적인데다가 차기 정부의 인사는 시작도 하지 못한 상황이니 ‘3기’설은 사실에 근거한 분석이라기보다는 희망에 근거한 추론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 논설에 오만과 편견은 배어 있지 않을까? 있다면 그것은 결함일까, 미덕일까?

 

‘3기’설은 모두 미국 행정부만을 바라본다. 편견이다. 그 상대인 이북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북은 이미 클린턴 때를 훌쩍 넘었을 뿐 아니라 오바마 시기와도 질적으로 다르게 변화했다. 국제사회의 인정 여부와는 무관하게 실질적인 핵무기 보유국가가 되었다. 2017년 6차 핵시험이 핵분열이었는지 핵융합이었는지를 둔 약간의 불확실성만이 남았을 뿐이다. 역시 2017년 실시한 미사일 발사시험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 능력도 부인할 수 없게 됐다. 올해 10월 군사퍼레이드에서 보여준 미사일이 다탄두체인지를 둔 약간의 불확실성만이 남았을 뿐이다. 북은 스스로 미국의 핵군사력을 억제할 수 있는 군사력을 확보했다고 주장하며, 이제는 미국의 경제제재를 돌파할 경제역량 제고에 매진하고 있다. 과거의 합의와 정책은 이미 유효기간이 지났다. 차기 미국 정부는 오바마 3기도 아니고 클린턴 3기도 아닌 새로운 정책을 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편견은 결코 미덕이 아니다.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을 통상 전략적 인내라고 하지만 정확한 명칭은 아니다. 북을 있는 그대로 참고 견디기는커녕 북의 붕괴를 위해 적극적으로 현상변경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오만이 그대로 반영된 정책이었다. 김정일 정권이 조만간 붕괴하여 통일이 도둑처럼 찾아올 것이라는 오만한 희망이었다. ‘역사상 최강’이라는 경제제재를 강도를 높이며 되풀이했고, ‘급변사태’를 운위하며 군사적 압박의 강도를 높였다. 내부에서 정권을 붕괴시키려는 공작도 추진했다. 그러한 오만의 결과는 북의 강한 반발이었다. 북은 이 시기에만 핵시험을 네번 했고 미사일 능력을 급격히 신장시켰다. 오바마의 오만, 이명박·박근혜의 오만이 낳은 참담한 결과다.

 

트럼프 정부가 정상회담으로도 북을 비핵화시키는 데 실패했다는 것은 또 다른 편견이다. 정상회담을 했는데도 북의 핵무장이 계속됐지만, 정상회담이 없을 때도 북의 핵무장은 계속됐다. 정상회담이 없었는데도 북이 핵활동을 동결하고 불능화한 때도 있었다. 정상회담의 유무는 북의 핵활동을 결정하는 독립변수가 아닌 것이다. 하향식이냐 상향식이냐는 정책결정 방식도 중요한 변수가 아니다. 형식에 대한 집착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편견일 뿐이다.

 

한반도에서 오만과 편견은 비극으로 끝난다. 2019년은 오만으로 시작해서 2020년 보복으로 막을 내리는 비극이 펼쳐졌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정부는 ‘최대의 압박’으로 북의 굴복을 받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오만을 부렸고, 북이 경제제재 해제를 요구하는 것은 그만큼 북이 다급하다는 반증이라는 편견을 드러냈다. 그 오만과 편견은 올 10월 ‘괴물 아이시비엠(ICBM)’으로 돌아왔다. 북은 영변과 동창리 폐쇄 제안을 거부당한 데 보복을 하듯이 그해 12월 동창리에서 ‘중대한 시험’을 두차례 실시하고 영변에서는 핵물질 생산을 계속했다. 그리고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그 결과물을 보여주었다. 전형적인 복수극이다.

 

현실과 달리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희망적이다. 리지와 다시는 우여곡절 끝에 오만과 편견을 극복하고 결혼에 성공한다. 북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오만과 편견을 넘어서서 적대관계를 끝내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만들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한겨레신문 2020년 11월15일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70008.html#csidx45eb0ae49ba006d9d4b60ecce8c5b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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