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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인간 안보를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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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0-05-21 16:29 조회2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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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주년을 맞아 중요한 발언을 했다. ‘인간 안보’로써 한반도를 둘러싼 내외의 도전을 풀어보자는 제안이었다. “오늘날 안보는 전통적인 군사 안보에서 인간 안보로 확장돼 모든 국가가 연대와 협력으로 힘을 모아야 대처할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 “남과 북도 인간 안보에 협력해 하나의 생명 공동체가 되고 평화 공동체로 나아가길 희망한다”고 했다. 인간 안보에 의한 남북 협력 사례로 코로나19, 말라리아, 아프리카돼지열병 등 공동 방역을 꼽았다고 한다.

 

인간 안보는 새로운 사상이 아니지만 한반도의 맥락에서, 그것도 바이러스 사태의 와중에 제안되었다는 점에서 우리의 주목을 끈다. 지난달 판문점선언 두 돌을 맞았을 때도 문 대통령은 “남북은 생명 공동체”이며 코로나19 위기가 남북 협력의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때도 코로나에 대한 공동 대처 협력에서 시작하여 “가축 전염병과 접경지역 재해 재난, 기후환경 변화에 공동 대응하는 등 생명의 한반도를 위한 남북 교류와 협력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환경, 보건, 재난 극복을 통해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의 안전이 보장되는 공동체를 지향하자는 메시지의 일관된 흐름이 분명히 느껴진다. 환경연구자 황준서는 비슷한 맥락에서 ‘환경-평화-안보 삼중 연계’로써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꾀할 수 있다고 제안한 적도 있다.

 

‘인간 안보’는 유엔개발계획(UNDP)의 <인간개발보고서 1994>에서 처음 선보인 개념이다. 보고서는 그때까지 통용되어 온 안보 개념을 뒤집어 전세계에 큰 지적 충격을 주었다. 무력으로써 국토를 지킨다는 전통적 안보 개념을 넘어서, 발전으로써 인간을 지킨다는 새로운 안보 개념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인간 안보는 기아·질병·탄압과 같은 만성적 위협으로부터 보호의 측면, 그리고 가정·직장·사회에서 발생하는 급작스러운 위협으로부터 안전의 측면을 두루 지닌다. 구체적으로 인간 안보는 일곱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경제 안보, 식량 안보, 건강 안보, 환경 안보, 개인 안전(고문·전쟁·탄압·범죄·젠더폭력·아동학대 등), 공동체 차원의 안전, 정치 안보.

 

<인간개발보고서>의 저자들은 인간 안보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고 설명한다. 첫째, 세계 모든 곳의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인간 안보에 관심을 둔다. 둘째, 인간 안보의 모든 요소들은 서로 의존한다. 셋째, 인간 안보는 사후 대책보다 사전 예방으로 잘 보장될 수 있다. 넷째, 인간 안보는 “사회 속에서 숨 쉬고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을 중심에 놓고 생각한다.

 

보고서는 인간 안보를 실행하기 위해 새로운 제안을 많이 내놓았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유엔 경제안전보장이사회를 신설하자고 했다. 세계사회발전 정상회의를 개최하자고도 했다. 요즘 피케티가 주장하는 전 지구적 과세와 비슷한 아이디어도 제안되었다. 세계사회헌장의 초안도 나왔다. 유명한 문구가 들어 있었다. “사람들이 가정에서, 직장에서, 지역사회에서, 환경 내에서 안전하지 않으면 유엔헌장의 어떤 조항도 안보를 보장할 수 없다.”

 

사람 친화적, 일자리 친화적, 자연 친화적인 지속가능 인간발전이라는 사상은 당시 버전으로 일종의 글로벌 뉴딜이었다. 전세계 모든 나라에서 1년에 3%씩 군사비를 줄여 인류가 ‘평화 배당금’의 혜택을 누리게 하자는 아이디어도 이때 나왔다.

 

<한겨레> 김정수 선임기자가 지적한 대로 대통령이 인간 안보의 사례에 환경을 포함시킨 점을 기후변화와 연결하여 정책으로 구체화하는 일도 중요하다. 코로나 대응으로 국제적 신망이 높아진 한국이 기후 대응에서도 모범을 보이고 그것을 한반도에서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가면, 국제 협력의 선도국 역할은 떼 놓은 당상이라 할 수 있다. 한 세대 동안 쌓아도 이루기 힘든 외교적 성과를 일거에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담대한 상상력과 정치적 의지가 지금처럼 필요한 적도 없다.

 

기후위기 상황은 인간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기후위기가 심해질수록 인간 안보는 악화될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아이피시시)도 이 점을 ‘확실한 증거, 그리고 높은 합의 수준’에서 인정하고 있다. 기후위기는 인간의 생계를 위협하고, 지역공동체의 문화와 정체성을 잠식시키며, 사람들에게 원치 않은 이주에 나서도록 강제하고, 국가가 인간 안보를 보장할 수 있는 역량을 약화시킨다.

 

아이피시시는 기존의 인간 안보론을 계승하면서도 기후위기와 관련하여 인간 안보를 “인간 삶에 반드시 필요한 핵심 요소가 보호될 때, 그리고 사람들이 존엄을 갖추고 살 수 있는 자유와 역량을 가질 때 형성되는 조건”이라고 재정의한다. 인간 삶에 반드시 필요한 핵심 요소란 “사람들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행위하는 데 필요한, 보편적이면서도 문화적으로 특정한, 물질적-비물질적 요소들”을 말한다.

 

기후위기 시대의 인간 안보는 특히 빈곤이나 여러 종류의 차별, 극단적 자연재해와 장기적 환경 악화로 위협받는다. 기후위기가 국제 분쟁과 갈등을 부추긴다는 사실은 이제 누구나 아는 상식이 되었다. 이런 입장을 뒤집어 기후변화를 자연재난으로만 인식하지 말고 더욱 폭넓은 이슈로 프레임 삼을 때 사람들 사이의 평화적 공존과 화해를 증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 안보는 인권과 어떤 관계를 이루는가? 인권을 달성하는 방법론에 따라 인간 안보와 인권은 벌어지기도 하고 수렴될 수도 있다. 크게 보아 인권을 달성하는 방식은 기준 이행 접근방식과 조건 형성 접근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우선, 기준 이행 접근방식은 전통적인 주류 인권 담론이다. 일정한 개별 권리들을 확정해 놓고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최저 기준으로서 보편적으로, 법적으로 인정해주는 방식이다. 그러나 여러 이유에서 인권 책무를 완벽하게 준수하지 않거나, 못하는 나라가 많다. 인간이 아닌 존재에 대한 침해 문제는 전통적 인권 담론에서 아직까지 잘 다루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기준 이행 접근방식에 의한 인권은 인간 안보 개념과 꼭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반면, 조건 형성 접근방식은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중시한다. 사회과학적으로 인권을 파악하는 관점이다. 조건 형성 접근방식은 개별 권리침해의 법적 해결을 넘어, 인권이 실현될 확률적 개연성을 높이는 요소를 찾으려 한다. 이것은 인간의 기본 이익을 수호할 수 있는 정치적, 사회문화적, 경제적 요소를 강조하는 인간 안보 개념에 가깝다. 기후위기 시대에 전통적 기준 이행 접근만으로는 부족하고 조건 형성 접근까지도 통합한, ‘인간 안보 친화적 인권 담론’이 요구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

 

한겨레신문 2020년 5월19일

원문보기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4560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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