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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환] 민관 협치를 통한 저작권법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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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0-04-06 14:51 조회10,7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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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4일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한국저작권위원회, 한국저작권보호원과 함께 2030년까지 저작권 분야의 성과 목표와 추진 과제를 담은 ‘저작권 비전 2030-문화가 경제가 되는 저작권 강국’을 발표했다. 동시에 문체부는 저작권법 전면 개정 추진도 천명했다. 이는 현 정부의 국정과제인 ‘자유와 창의가 넘치는 문화국가’ 실현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문화를 경제 아래 종속시키는 고질적 근시안이 부제에서 감지되듯이, 청사진을 읽고 나면 우려가 앞선다. 문화예술계, 학계, 출판계 등 민간의 이해 당사자와 함께하는 민관 협치가 있어야 저작권법 전면 개정과 내실 있는 저작권 보호 사업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빠져 있다.

 

문체부가 정말 먼 미래를 내다보는 비전을 가다듬었다면 코로나19가 초래한 세계적 위기 속에 불거지는 저작권 문제에 대해 더 민첩하고 세심한 대응책이 마땅히 나와야 했다. 그러나 각 대학을 통해 개별 교수들에게 전달된 지침은 눈앞의 위기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대학가 신학기 출판물 불법복제 예방 협조 요청’(3월18일)이라는 문체부 공문은 실효성도 떨어지는 불법복제 예방활동을 예년처럼 강조하는 선에서 멈추고 말았다.

 

현재 우리의 고등교육기관이 모두 감염병 차단을 위해 비대면수업을 실시하고 있다. 동영상 강의를 녹화하거나 화상회의 앱을 이용해 온라인 강의를 진행한다. 이를 위한 교재 스캔 파일이나 파워포인트 자료 탓에 저자와 출판사의 피해가 심각하다. 평소에도 사이버대학이나 원격교육원 강의에서 저작권 침해가 비일비재했는데, 비상시국을 명분으로 교재의 본문 편집파일에 대한 무상 제공 요청까지 출판사에 들어온다고 한다. 대학과 교수부터 저작권 인식이 희박하며, 급변하는 기술적 환경에 맞춘 제도 개선은 더욱 미흡하다.

 

전면 개정의 필요성을 문체부도 인정한 저작권법뿐 아니라 현장의 지침 또한 저작권 보호에 무력하다. 저작권법상의 수업목적 보상금제도 운영의 심각한 부실은 차치하더라도, 2015년에 만든 수업목적 저작물 지침은 학술서적이나 대학교재를 활용하여 만들어지는 파워포인트 교안에 대해 “일부분의 이용”과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 같은 모호한 표현으로 일관한다. 이는 저작권 선진국의 학교 수업용 복제 지침이 허용 가능한 복제 범위와 분량을 상세하게 정한 것과 대비된다. 그러니 국내 불법 복제물 시장이 수천억원 규모라지만 실질적인 해결은 요원하다. 위기 극복을 돕기 위해 유명한 해외 출판사가 일부 교재를 잠시 온라인에서 무료 제공하는 일도 있지만, 이런 결정도 철저한 저작권 보호 위에서만 가능한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문체부의 계획이 이해 당사자와 함께하는 민관 협치의 비전을 결여한 탓에 빚어지는 심각한 한계 중에서 두 가지만 지적하자.

 

첫째, ‘저작권 비전 2030’에는 문학과 예술을 중심에 둔 장기적 정책이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핵심 저작권산업’ ‘저작권 수출’ ‘저작권 무역수지 흑자’ 등의 표현 앞에서 특허권, 상표권 등의 지적재산권을 관할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나 산업통상자원부와 다른 문체부만의 비전이 궁금하다. 최근 ‘한류’의 선봉에 선 몇몇 대중문화 장르가 성취한 저작권 무역수지 흑자에 고무된 기색은 역력하지만, 모든 창조적 문화 활동의 밑거름임에도 종종 돈과는 거리가 먼 문학과 예술 분야의 창작자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비전은 부재하다. 교육부가 관여된 학술 분야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둘째, 이처럼 기초적인 인식과 비전이 탄탄하지 못한 탓에 정책 방향이 자꾸 이해관계를 왜곡한다. 가령 최근 일부 문학 출판사의 불투명한 경영으로 인한 부당한 저작권 침해로 사회적 논란이 벌어지자 문체부는 저자와 출판사의 대립구도를 전제한 피상적인 대응에 머물렀다. 불법 복제 등 저작권 침해가 벌어지면 당연히 저작자와 출판사에 똑같이 피해가 간다. 저자와 출판사의 대립만 부각시키면 문제의 본질이 흐려지게 되고, 공공대출권 도입, 수업목적보상금 제도 개선 등 저자와 출판계가 함께 요구하는 현안은 쉽게 외면당한다.

 

합당한 저작권 보호를 통해 저작자에게 정당한 보상을 지불하지 않으면 창조적인 정신 활동은 위축되게 마련이며, 사회 전반의 지적 빈곤, 학문과 문화의 쇠퇴로 이어진다. 또 저작권은 작가의 경제적 독립성을 보장하는 수단이며, 저작권이 짓밟히면 결국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어 민주주의마저 쉽게 훼손된다. 민관 협치를 통한 저작권법 전면 개정과 관련 제도의 정비만이 저작자, 출판계, 대학, 공공도서관, 독서운동 등 학계와 문화예술계 전반이 상생하는 건강한 생태계로 가는 길이다.

 

김명환. 서울대 교수

 

경향신문 2020년 3월26일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3262127005&code=990308#csidx80dc35bb7c6d6828aee69c7a8553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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