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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언] 안과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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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0-03-12 15:47 조회1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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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은 ‘소년 주머니’
무구함과 소보로/문학과지성사(2019)

 

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해 외부 일정을 자제하는 중에 드러나는 사실들이 있다. 가령, 일상생활의 영역은 거주 공간과 그 바깥을 조화롭게 오가며 구성되어야 한다는 점이나(‘스스로를 집순이 혹은 집돌이로 여겨 와서 비상 상황에 불편이 없을 줄 알았으나, 막상 몸을 단속하며 집 안에 있자니 답답하다’는 유의 토로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주 들린다), 한 사람의 자기다움은 자신과 직접적으로 대면하고 연루되어 있는 관계들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점(공중보건을 위해 서로의 이해 정도를 살피고 부주의를 조심하는 생활 속에서 우리는 마틴 루서 킹이 언급했던 ‘벗어날 수 없는 상호성의 그물’에 얽힌 채 살아가고 있음을 실감한다)을 들 수 있겠다. ‘안’과 ‘밖’의 구분이란 본질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라 상호의존적으로 형성되는 것임을 새기다보면 지금 시기에 이르러서야 가시화되는 폐쇄병동의 고립 문제나,(‘우리’와 ‘우리 아닌 자’의 구분을 뚜렷이 함으로써) 특정한 이들을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찍는 문제 등 해당 주제와 연결된, 풀어가야 할 이슈가 많음을 상기하게 된다.

 

임지은의 어떤 시는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경계를 새삼 인식할 때 일어나는 상황의 당혹스러운 신선함 혹은 낯선 흥미를 전한다. 이런 시는 그간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던 ‘안’과 ‘밖’이란 구분, ‘나’와 ‘나 아닌 자’의 구분을 다시 살피게끔 만든다.

 

“한낮에 큰 울음소리가 들린다/ 아래층에서 나는 소리다/ 9층에서 6층으로 내려간다/ 복도에 자전거가 넘어져 있지만/ 이 울음과는 무관하다// 아이가 울고 있다/ 무슨 일이니?/ 엄마가 문을 열어주지 않아요/ 초인종을 눌러도 소용없어요/ 집에 아무도 없기 때문에// 그럼 우리 집에 가서 전화를 걸자/ 네 이름이 뭐니?/ 시훈이요/ 시훈이 어머님이시죠?/ 우리 시훈이는 학교에 있을 시간인데요// 너는 시훈이가 아니다/ 그럼 너는 누구니?/ 재훈이요/ 재훈이는 도장에서 태권도를 하고 있어야 하는데// 너는 왜 우리 집에 와 있는 거니?/ 아줌마가 날 이리로 데려왔잖아요/ 그래, 그랬지/ 우리 엄마가 데리러 올 때까지/ 이 집에서 나가지 말래요/ 밖은 너무 위험하니까// 문을 경계로/ 안은 집이 된다// 그런데 엄마는 언제 오신다니?/ 저녁이 되어도 초인종은 울리지 않고/ 아이는 신주머니를 안고 잠이 든다// 신주머니 안에는 신발이 잠들어 있겠지만/ 아이를 흔들어 깨운다/ 아줌마가 왜 여기 계세요?/ 여긴 우리 집이잖아요// 문을 경계로/ 어떤 꿈은 현실이 된다// 엄마를 부르기 전에 어서 나가주세요/ 집이 위험해지기 전에 밖으로 나간다//(중략)// 지나가던 여자가 내게 인사를 한다/ 재훈이 어머님 아니세요?/ 주위를 둘러보면 아무도 없고/ 2인용 자전거가 넘어져 있다//(중략)/ 안과 밖이 통로처럼 뒤엉켜 있다”(임지은, ‘소년 주머니’ 부분)

 

‘안’과 ‘밖’의 경계를 인식할 때에야 비로소 ‘나’는 어디에 있는지를 질문할 수 있다고 일러주는 시인 한편, 위치가 바뀔 때마다 역할이 달라지듯 주어진 경계의 구획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 고정된 역할은 없음을 일러주는 시다. “안과 밖이 통로처럼 뒤엉”킨 곳에서 우리 자신을 돌보는 동시에 우리 주위를 살피는 역량이 요구되는 요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거듭 생각해본다.

 

양경언 문학평론가

 

한겨레신문 2020년 3월6일

원문보기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93139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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