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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수] 조용한 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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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0-02-21 14:41 조회5,9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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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소설은 ‘평면적인 인물’보다 다면적이고 변화하는 ‘입체적인 인물’을 선호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소설에는 입체적인 인물 못지않게 평면적인 인물도 필요하며, 중요한 것은 사회적 차원을 포함하는 두 인물 유형 사이의 긴장된 조화일 테다. 실제로 어떤 인간도 늘 평면적이거나 늘 입체적일 수는 없다. 역동적이고 변화하는 삶은 하나의 기대치로 존재하는 가운데 대개 우리는 ‘평면적’으로 답답하게 살아간다. 현대 소설은 그 ‘평면적 삶’의 반복과 구속 안에서 자유의 환상이 제거된 세계의 실상을 보기도 한다.

 

코로나19 발생이 인구 1100만이 넘는 거대 도시의 봉쇄로까지 이어지는 상황을 보면서 누구나 쉽게 떠올릴 법한 소설이 카뮈의 <페스트>(1947)다. 1940년대 알제리의 해안도시 오랑이 소설의 무대인데, 페스트가 발생하면서 도시의 폐쇄가 결정된다. 중세 유럽에서 크게 유행했던 감염병을 20세기 현대의 도시로 옮겨온 작가의 상상력은 카뮈 당대의 세계 역시 페스트 못지않은 재난의 가능성과 도덕적 윤리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판단에서 말미암은 것 같다. 작가는 리외라는 의사를 서술자 겸 주인공으로 내세워 10개월간 이어진 재난의 연대기를 들려준다. 그 연대기는 서술자가 말하는 대로 “두드러지게 악하지도 않고 또 흥행물처럼 저속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선량한 감정으로 이루어진 보고서”(유호식 옮김, 문학동네)다. 참혹한 죽음의 행렬과 앞을 알 수 없는 끔찍한 공포, 폐쇄와 격리가 주는 느닷없는 고립과 이별의 아픔이 그려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보고의 초점은 그런 가운데서도 페스트와 싸워나가는 인간의 의지에 모아진다. 재난의 상황에서 도드라질 수 있는 관료적 무능, 인간성의 바닥이나 혼란도 그다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서술자인 의사 리외가 그렇게 보고자 하기 때문인데, 그는 스스로가 말하듯 의사라는 자기 직분 안에서 페스트와 싸워나가는 사람일 뿐이다. 그의 보고서는 자원 보건대를 만들어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예방 사업에 힘쓰거나 환자들의 이송을 돕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들 중에는 도시 탈출을 포기하고 봉사대에 합류하는 외지에서 온 기자 랑베르도 있다. 그는 파리에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 랑베르는 말한다. “혼자서만 행복한 것은 수치스러울 수 있어요.” 리외는 행복을 위한 랑베르의 선택을 수긍했고, 보건대를 주도적으로 이끄는 타루 역시 그의 탈출 계획을 돕기도 한 터였다. 리외의 보고서가 굳이 내세우는 ‘영웅’은 시청 비정규직 직원인 그랑이란 인물로, 그는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면서도 보건대에 참여하여 의사 리외의 일을 돕는다. 그랑에게는 비록 첫 문장을 계속 고쳐 쓰는 난관의 연속이지만 매일 저녁 소설을 쓰는 중요한 개인적 과업도 있다. 그런 그랑의 작은 노력, 성실성은 연일 방송과 신문에서 쏟아지는 근사한 상투어들(여기에 진심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의 밖에 있으리라고 리외는 생각한다. 그는 보건대 일에 퇴근 후 두 시간을 내어놓으며 미안해하는 그랑을 보면서 ‘조용한 미덕’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리외는 사랑이 많은 경우 침묵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페스트와 싸우는 사람들 속에서 깊이 확인한다.

 

서술자를 겸하고 있긴 해도 의사 리외는 인간에 대한 믿음을 시종 큰 흔들림 없이 유지한다는 점에서 조금은 밋밋하고 재미없는 ‘평면적 인물’로 분류될지도 모른다. 그의 휴머니즘은 일견 현대의 세련된 ‘인간 회의(懷疑)’에 덜 물든 만큼 낡고 고지식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먼 기억 속에 묻혀 있던 소설에서 다시 만난 몇몇 인물의 ‘조용한 미덕’은 이즈음의 어떤 얼굴들을 겹쳐 떠올리게 만든다. 신종 바이러스의 가능성을 처음 경고한 뒤 고초를 치르고, 환자 치료 과정에서 자신도 감염되어 세상을 떠난 우한의 젊은 의사 리원량. 연일 푸석하고 초췌한 얼굴로 상황과 대책을 설명하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방호복으로 중무장한 채 격리병동에서 일하는 의사와 간호사들. 우한 교민 이송버스를 세 차례 운전한 경찰관과 그런 남편을 지지해준 아내. 리외는 “인간에게는 경멸해야 할 것보다 찬양해야 할 것이 더 많다는 것만이라도 말하기 위해” 자신이 겪은 페스트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기로 결심한다. 우리는 스스로의 나약함을 알기에 이런 이야기에 고개 숙인다. 여기에는 도덕적으로 우월한 자리가 없다. ‘혐오’라는 말을 남용하며 인간 사이의 연결을 과장되게 황폐화하거나, 오늘의 사태를 실제 이상으로 나쁘게 보려는 이들은 무엇보다 먼저 스스로를 경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홍수 문학평론가

 

한겨레신문 2020년 2월18일

원문보기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2873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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