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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경] 직업·일·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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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9-11-11 12:01 조회1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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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로공사 노동자들이 농성 중인 가운데 청와대 관계자의 “톨게이트 수납원은 없어질 직업인 게 뻔히 보이지 않느냐”는 발언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노동자들의 요구는 이미 대법원에서 확정된 판결을 이행하라는 것인데, 청와대 관계자가 나서서 사법부 결정의 정당성을 훼손하고 사측의 입장을 두둔하는 발언을 한 것은 부적절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발언의 위치와 적절성을 떠나 ‘사라질 수밖에 없는 직종에서 일하는 사람을 공기업의 정규직으로 고용하라는 요구는 무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고용불안에 떨어가며 고속도로 위의 열악한 환경에서 수십년간 일해온 여성노동자들의 분노는 대법원에서까지 정당성을 인정한 바이지만, 다른 쪽에서는 하이패스로 곧 대체될 ‘그런 일을 하는 아줌마들’까지 정규직으로 만들 수는 없다는 인식도 우리 사회에 만만치 않은 것이다. 그러니 저런 발언도 나오는 것이고, 관계자 역시 딱히 큰 뒤탈 없이 넘어갈 수 있는 것일 테다.

과거를 길게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지하철 매표소에서, 아파트 경비실에서, 패스트푸드를 판매하는 체인점에서 기계가 사람의 일자리를 빠르게 대체해오는 현상은 익숙하다. 세계로봇연맹(IFR)의 발표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한국의 제조업 노동자 1만명당 로봇 도입수가 조사대상국 가운데 압도적 1위라고 하니, 점차 자동화돼가는 산업현장에서는 직업도, 일도, 사람도 사라져가는 중이다.

그나마 그동안 안정된 지위를 누려온 의사나 변호사, 대학 교수 같은 전문직도 인공지능(AI)에 밀려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판이니 요즘 세상에 확실한 일자리라는 게 있나 싶기도 하다. 어쩌면 결국 불확실하기로는 대동소이함에도 그중 몇개 일자리를 특정해 사라진다고 하는 게 우스워 보일 지경이다.

이렇게 결국 다 사라질 운명이니 마냥 사라지게 둬야 하고, 대체 가능한 노동력이니 시한부 일자리에서 열악한 처우를 감수하라는 게 당연할까? 기술의 발전은 저절로 이뤄지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아니다. 기계로 대체하는 것이 마냥 경제적인 것만도 아니다. 한국의 자동화율이 높아지게 된 것은 자동화 설비투자를 장려하고 값비싼 기계를 도입해 사람의 일자리를 없애는 기업에 세제혜택을 주는 정책에 의해 가능했던 것이다. 또한 정규직의 권리는 지켜도 사람의 일과 노동의 가치는 하찮게 여기는 사회가 있어 가능했다.

하지만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사람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사라지지도 않는다. 기계가 중심이 된 세상에서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정말로 불필요한 인력이라면 지난달, 지난주, 어제 그리고 오늘도 일터에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죽어가는데 왜 계속 일을 시키는가. 사실은 이들이 없으면 세상이 돌아가지 않을 게 분명하고, 그래서 일을 계속 시키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사라질 일자리에서 일한다면서 헐값에 함부로 사람을 쓰는 일은 당장 멈춰야 한다. 사람들이 살 만한 세상과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일이야말로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백영경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농민신문 2019년 10월30일

원문보기 : https://www.nongmin.com/opinion/OPP/SWE/FRE/316592/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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