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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경] 재난에 어떻게 대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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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9-04-25 12:59 조회26,0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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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덕스러운 것이 봄날씨라고 하지만 올봄 역시 유난스럽게 지나가는 중이다. 지난겨울 상대적으로 큰 추위나 폭설은 적었지만 대신 포근한 날에는 미세먼지가 유독 심해지곤 했다. 봄이 되면서 서울에서도 한꺼번에 피어난 꽃들이 파란 하늘 아래 그야말로 꽃사태를 이룬 날이 있는가 하면, 뿌연 공기가 시계를 흐린 날도 있었다. 그러면서 공기가 건조하고 가물어서 큰 걱정이라더니, 이제 강원 고성에서 시작한 산불이 전에 없던 규모로 동해안 일대를 덮쳤다.

모든 사람이 매일 관심을 두고 점검하는 미세먼지 농도나 여름 불볕더위, 가뭄·태풍·큰불과 같은 재난도 사실상 각각 하나씩 따져보면 현재의 문제가 과거보다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소위 전문가 중에는 요즘 사람들이 예전과 비교해 더 민감해진 것일 뿐 공기의 질은 더 나아졌고 기후는 원래 늘 변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거꾸로 시도 때도 없이 가뭄이다, 미세먼지가 심하다며 휴대전화를 울려대는 재난문자를 탓하기도 한다.

사실 전 지구적인 차원의 기후변화라고 하면 개인적인 수준에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난감하기도 하고, 또 무엇이 원인인지 얘기하다 보면 자료 없이는 당장 답하기 어려운 끝없는 논쟁에 빠져들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여러 재난이 동시에 일어나는 현실을 직시한다면 지금 이대로의 삶을 살아서는 곤란하다는 메시지는 너무도 분명하다.

재난은 대형 사건으로 터지기도 하지만, 외국까지 갔다 돌아온 생활쓰레기, 반복되는 가축 살처분, 미세 플라스틱이 섞여 나오는 국내산 천일염 등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재난은 일상을 위협하는 문제로 이미 우리 삶 속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

큰 재난 앞에서는 평소와 달리 이타심과 상호부조의 마음이 깨어나게 되며, 고통 속에서 서로 돕고 환대하는 문화가 생겨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경험적으로 볼 때 사회도 사회 나름이고 재난도 재난 나름이라 모든 재난이 공동체정신으로 이어진다고 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지금 우리 사회가 겪는 것과 같이 한번의 큰 재난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재난이 연속되는 상황에서는 갑자기 각성이 일어나 서로 환대하기보다는 ‘내 한몸만 잘 건사하기’로 이어지기가 더 쉽다.

이렇게 재난이 일상화될수록 이를 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과 고스란히 겪어내야 하는 사람 사이의 격차는 커진다. 당장 이번 산불에서도 대피방송을 들을 수 없는 장애인이나 홀로 대피가 어려운 노인들이 문제가 됐지만, 매일 먹고사는 문제가 재난이 된 상황에서는 격차가 점점 더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결국 그렇게 문제가 심해지다보면 격차 자체가 재앙이 되고, 우리가 사는 세계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새로운 기술이나 정부 대책으로 어떻게든 해결되지 않겠느냐는 태도다. 하물며 생존이 달린 문제가 아닌가.

 

백영경.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농민신문 2019년 4월 17일

원문보기 : https://www.nongmin.com/opinion/OPP/SWE/FRE/310646/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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