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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주] 선(先)비핵화론 넘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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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9-04-12 09:35 조회26,35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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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회담 이후 한 달이 넘었지만 한반도 정세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오는 11일에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이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다. 하노이 회담을 거치며 쉽게 해소하기 어려운 견해 차이가 드러났음에도 북·미는 대화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이는 작금의 비핵화 프로세스가 과거보다 더 강한 지속성을 갖고 있음을 뜻한다. 그럼에도 한반도 상황이 궤도에서 이탈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과거 비핵화 프로세스의 진전을 어렵게 만들고 결국 한반도 상황을 매우 위험하게 했던 접근법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先)비핵화 프레임이 그것이다. 선비핵화론은 북이 국제규범을 무시하고 핵무기를 개발한 것이 잘못이니 이를 시정한 이후에야 북이 바라는 것을 들어줄 수 있다는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 이 논리는 국제정치의 현실에 비추어 보면 허점이 있다. 인도, 파키스탄이 1990년대 후반 국제규범에 반해 핵무기 개발을 완성하고 실전배치를 했음에도 국제사회에 참여하는 데 제약을 받지 않았다.

북핵의 위협을 직접적으로 받는 우리가 국제정치적 현실이라고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우리는 마땅히 북의 비핵화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핵심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과거의 선비핵화론이 북의 핵개발을 오히려 가속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역설적 현실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 북은 핵개발은 미국이 자국의 안전에 가하는 위협에 대한 대응이며 이러한 위협이 사라져야 비핵화를 할 수 있다며 선비핵화론에 반발해왔다. 과거 선비핵론이 전면에 등장하면, 협상은 진전되지 못하고 북의 핵능력은 진전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그로 인해 북의 비핵화는 더 어려워졌다. 점차 한반도 상황에서는 북의 비핵화와 북의 안전에 대한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조치, 즉 북·미 관계 정상화, 한반도 평화협정 등이 병행돼야 한다는 방향에 공감대가 형성돼 왔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은 이를 확인하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추진됐다. 그렇지만 최종목표에 어떻게 도달할 것인가는 본래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다.

북은 비핵화와 관련해 자신들이 취한 조치는 되돌릴 수 없는 성격이 강하지만 미국이나 남의 상응조치들(종전선언, 연락사무소 설치 등)은 비교적 쉽게 취소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으며 미국과 남이 더 적극적인 상응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해왔다. 일부 보도처럼 영변 핵시설 폐기의 대가로 제재의 사실상 해제를 요구했다면 이러한 사고가 작용한 탓이다. 문제는 이러한 상응 조치가 북의 비핵화를 촉진하지는 못하고 시간 끌기에 이용될 것이라는 우려가 남과 미국에 적지 않다는 데 있다. 이러한 우려는 최종적 비핵화 실현 여부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이 선비핵화론으로 귀결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협상의 진전을 위해서는 역지사지의 정신과 인내심이 발휘돼야 한다. 선비핵화론이 다시 전면에 등장하면 북의 협상 의지를 약화시키고 소위 ‘새로운 길’을 모색할 유인을 증가시킬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한반도 상황은 여러 사람이 큰 바위를 어렵게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자칫 방심하면 바위는 다시 아래로 굴러 내려갈 수 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비핵화의 최종적 목표에 대한 재확인과 함께 이를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접근법이 다시 채택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기초로 남은 북이 비핵화와 관련해 더 적극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 하노이 회담에서 진전을 이루지 못한 데는 북·미 간 불신만이 아니라 미국 내 정치상황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최근 미국 내 정치 상황의 불확실성이 낮아지고 선비핵화론의 비현실성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는 만큼 다시 한번 새로운 진전을 기대해 본다.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중국학과
 
국민일보. 2019년 4월 8일 
원문보기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07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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