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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경] 한반도 평화와 시민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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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9-03-12 17:29 조회27,11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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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북-미 정상회담은 결렬되었다. 전문가와 언론은 원인을 분석하느라 분주하고, 한국 정부는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대화의 동력을 되살리고자 바삐 움직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신한반도체제’를 천명하면서 다시는 긴장과 대결의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분명히 했다.

 

평창올림픽 이후 여러번의 고비를 넘겨 겨우 움켜쥔 이 기회를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외교적 노력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 시민들의 평화를 향한 열망을 모아내는 일 또한 요청된다. 사실 회담 결렬로 장기화될 것이 분명한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에서 평화를 향한 한국 사회의 굳건한 의지를 유지하는 것은 더욱 중요해졌다.

 

하지만 한국 사회 곳곳에서 한반도 평화라는 시대적 과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현 정부의 정책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비단 미국이 우리를 구원해줄 것이라 맹신하는 일부 극우세력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네 소시민까지도 한반도 평화라는 대전환의 기회를 멀게만 느낀다. 평화가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닌데라는 냉소적 표현이 심심치 않게 들리는 것이 한 예다. 거기에 보수 언론과 극우세력이 경제 프레임을 집요하게 들이대며 현 정부의 평화 노력을 폄하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좀 더 근원적으로 분석해보면 애초에 신자유주의에 반기를 들기보다는 이 체제 내 절차적 공정함을 추구해온 촛불 시민 대다수에게 한반도 평화정착은 당장 일상의 문제보다 우선시되기 어려운 것이다. 예컨대 최근 일자리, 주거 등에서 곤경을 겪고 있는 20대 남성 집단에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한 것은 시민들이 지금 당장 요구하는 정부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그만큼 팍팍한 현실을 살아내야만 하는 시민들이 언제 올지도 불명확한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적극적으로 뜻을 모아내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한국 사회를 송두리째 삼켜버린 신자유주의 체계 내에서 경제적 이해관계가 아닌 평화와 같은 윤리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도 어렵다. 물론 정부는 평화경제론을 앞세워 평화의 경제적 효과를 강조하며 시민들을 설득하려 하지만 이 또한 신자유주의적 사고체계 내에서 평화의 자리를 만들어내려는 소극적 시도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 논리에서 평화는 궁극적 지향이 아닌 경제적 이득에 다다르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할 위험성마저 있다.

 

더 근원적으로는 식민과 분단을 거쳐 단 한번도 평화로운 상태가 어떤 것인지 경험해보지 못한 시민들은 한반도의 평화가 도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우리네 일상을 바꾸어내는지 가늠하지 못한다. 상상할 수 없는 미래는 기대와 열망의 대상이 되기 어렵고, 그만큼 현재 삶의 동력으로 전환될 수 없다. 시민들이 평화라는 미래를 위해 현재 삶의 희생을 쉽사리 감내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 앞에 놓인 현실이 녹록지 않은 근본적인 이유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구체적 해결방안을 이 글에서 밝힐 필요는 없으리라. 다만 분명히 할 것은 한반도 평화는 신자유주의에 포섭된 한국 사회의 근본적 변화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런 연유에서 한반도 평화 만들기는 전혀 다른 사회, 새로운 우리를 만들어내는 창조적 과정이며, 동시에 우리 안의 낡은 것을 파괴해야만 하는 고통의 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힘겨운 과정을 버텨낼지는 우리 모두의 의지에 달려 있을 것이다.


 

김성경(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한겨레신문. 2019년 3월 6일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84833.html#csidxb5aa848946d8b6386d40902d1ffdcd1 onebyone.gif?action_id=b5aa848946d8b6386d40902d1ffdc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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