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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정] 전쟁의 끝, 평화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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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9-02-28 12:16 조회29,7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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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탄 사용을 항상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습니다.” 1950년 11월30일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핵폭탄’ 발언을 했다. 한국전쟁에서 파죽지세로 북진하던 미군이 장진호 인근에서 중국인민지원대에 포위되어 심각한 타격을 입은 직후였다. 흥남철수 계획을 추진하며 공개적으로는 핵무기 사용을 위협했다. 상황이 그만큼 다급했던 때문이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강계를 임시수도로 정하고 항전하던 북 지도부는 ‘공황상태’에 빠졌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 전폭기들의 맹폭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이제는 어느 순간 원자탄이 머리 위로 떨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더구나 미군은 전폭기로 모의 원자탄을 투하하는 훈련을 실시하여 북 전역을 공포에 떨게 했다.

 

김일성 주석은 이런 경험을 겪으며 비행기 공포증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강계에서 미군의 폭격에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를 겪었던 것도 일조했다. 이후 베트남뿐만 아니라 러시아를 방문하면서도 가능하면 비행기를 타지 않고 기차를 이용했다. 이 공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도 이어졌다. 미국과 전쟁 상태인데 비행기를 탔다가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안전상 우려가 추가되기도 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하노이 정상회담을 위해 할아버지가 갔던 길을 가며 70년 가까이 머리에 이고 살았던 ‘핵위협’을 되새기지 않았을까?

 

1990년대 들어서는 북의 핵무기 개발이 한국과 미국에 위협이 되기 시작했다. 북이 핵실험을 되풀이하자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는 없다”고까지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트럼프 당선자에게 북의 핵무기가 “미국이 직면한 제일의 위험”이라고도 했다. 한국전쟁에서 시작한 핵위협이 한국과 미국을 포함해서 모두에게 확산이 된 것이다.

 

이 ‘핵위협’을 거두기 위해서는 그 뿌리인 전쟁 상태를 끝내고 적대관계를 전환해야 한다. 남북이 먼저 이 길에 들어섰다. 남북 정상이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판문점에서 선언했고 평양에서는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을 다짐하며 실질적인 평화선언, 실질적인 불가침선언에 서명했다. 이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하노이에서 실질적인 평화선언에 서명하고 평화체제 구축의 길에 들어선다. ‘핵무기와 핵위협’은 그 노상에서 소멸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이번 정상회담을 준비하기에 앞서 비건 미국 대북특별대표가 스탠퍼드대학에서 역사적인 연설을 했다. “양국의 시스템은 매우 다르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입니다.” 양국은 역사도, 지역도, 세계관도, 인권관도 ‘다르다’고 인정했다.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하거나, 심지어 제거해야 할 ‘악’이라고 하던 과거의 적대를 뛰어넘은 것이다. 북도 ‘철천지원쑤’와 불미스러운 과거를 매듭짓고 새로운 관계를 희망하고 있다.

 

한반도에 철길이 깔리고 만주를 통해 대륙과 연결이 되었던 것은 전쟁을 위해서였다. 식민지에서 물자와 인력을 짜내고, 군수물자와 군대를 신속하게 이동시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제 그 철도의 역사가 전복되기 시작했다. 북-미 적대관계가 종식되면 북의 지도자는 다시는 기차로 장거리 이동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대신 철도는 민간 교류의 혈맥이 될 것이고 평화를 실어나르는 강력한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번에 평화의 단초는 지도자들이 만들었지만 완성은 시민이 이루게 될 것이다. “언젠가는 전쟁도 없어질 것이고 군대도 없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지도자들에 의해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톨스토이의 오래된 말이 지구 반대편에서 시대의 명령이 되고 있다.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한겨레신문. 2019년 2월 27일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83855.html#csidxafbfef63fb12e6da6d3c2c9a12a6a44 onebyone.gif?action_id=afbfef63fb12e6da6d3c2c9a12a6a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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