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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경] 딸들에게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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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9-01-25 13:04 조회32,2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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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1월도 중반에 접어들면서 2019년에 익숙해지는 중이다. 음력과 양력을 섞어 쓰는 혼란의 와중에 무술년은 아직 오지도 않은 기해년에 자리를 내주고 쫓겨났다. 12년 전에도 황금돼지해였던 것 같은데 그때는 붉은 돼지였고 올해가 진짜 황금돼지해라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황금돼지가 아니라 누런 돼지일 텐데 그냥 모르는 척 넘기기로 하자.

지난해에도 누런 개가 아닌 황금개의 해라고 했던 기억이 나는 걸 보니 다른 건 다 몰라도 인간들의 황금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다는 것 하나는 분명해보인다.

한동안 ‘부자되세요’ ‘대박나세요’라는 말이 새해인사로 유행했었다. 덕담이라도 그다지 탐탁하지 않던 인사말이라 요즘 잘 들리지 않게 되니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든다. 금전제일주의인 사회는 그대로인데 부자니 대박이니 하는 말이 덕담으로도 허황되게 들릴 만큼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은 아닐까 싶어서다.

‘정규직 안해도 좋으니 죽지만 않게 해주세요.’ 2018년말 충남 화력발전소에서 김용균씨가 근무 중 사망한 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벌인 시위의 요구다. 정규직 안해도 좋다는 말이 정말로 원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당장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이니 정규직이 안되더라도 죽지만 않고 일하게 해달라는 항변일 테다.

덕담이 무색해지는 현실은 또 있다. 열일곱살에 소치동계올림픽에서 금·은·동메달을 따고 평창동계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수상한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 이야기다.

처음 이 소식을 듣고 ‘금메달이 도대체 뭐길래’라는 탄식을 넘어 분노가 일었다. 하지만 동시에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다. 그간 스포츠계의 비리와 폭행사건 등은 비일비재했다. 그래서 대중들도 이런 뉴스에 크게 놀라지 않게 됐다. 도리어 성폭행이라서 충격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가 그동안 얼마나 금빛 메달의 광채에 현혹돼 뻔히 보이는 현실을 모른 척해오고 있었나 반성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여성의 일을 선택으로 보는 시각이 아직도 끈질기게 남아 있다. 하지만 이제 직장을 다니면서 자기 생계비를 스스로 벌어야 하는 것은 여성에게도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그렇게 일터로 나간 여성들은 전문직부터 비정규직에 이르기까지 성희롱과 성폭력의 위협을 일상으로 느끼고 있다. 그들은 힘들어도 일터에서 도망칠 수 없기 때문에 청와대에 ‘몰카범을 처벌해달라’ 등의 청원을 넣는 등 근무환경을 바꾸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일터에서 산 채로 퇴근하게 해달라는 노동자들의 요구가 비감한 만큼, 거리에서 일터에서 심지어는 집안에서도 맞거나 죽거나 강간당하지 않게 해달라는 요구도 절실하다. 금메달이 뭐라고 저렇게 맞고 당하면서 참았냐는 이 분노가 새해에는 꼭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향한 변화의 흐름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백영경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농민신문. 2019년 1월16일

 

원문보기 : https://www.nongmin.com/opinion/OPP/SWE/FRE/305718/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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