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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무웅] 언어들의 엇갈린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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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9-01-08 12:03 조회31,8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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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말모이>란 영화 시사회에 다녀왔다. ‘말모이’란 ‘낱말들의 모음’이란 뜻으로, 1911년부터 주시경 선생(1876~1914) 등 선각자들이 편찬을 시작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인 국어사전을 가리킨다. 이 사업은 주시경 선생 사후 그의 뜻을 이어받은 조선어학회 학자들의 헌신과 희생에 힘입어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1957년 <큰사전> 6권의 간행으로 일단 완결되었다. 영화는 편찬사업에 얽힌 고난의 행로 가운데 1930년대 말부터 8·15해방까지 일제 탄압이 가장 악랄했던 시기를 허구적 서사에 의탁하여 때로는 감동적으로, 때로는 코믹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런데 영화 속의 조선어학회는 내가 상상하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조선어학회 사건의 전말이 내 머리에 처음 입력된 것은 거의 60여년 전 월간지 ‘사상계’에 연재된 이희승 선생의 회고록을 통해서였다. 이 회고록은 읽은 것이 워낙 오래전이라 언제 무슨 제목으로 연재됐는지, 심지어 ‘사상계’에 연재됐던 게 맞는지도 아리송해, 인터넷을 뒤졌으나 도무지 기록이 찾아지지 않는다. 아무튼 내가 상상하는 조선어학회 이미지는 마치 중국의 임시정부 청사 앞에서 찍은 독립지사들 기념사진처럼 한복 차림의 근엄한 어른들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어쩌랴, 젊은 관객들을 끌어당길 ‘활극’과 ‘반전’의 요소가 없다면 애초에 만들어지기 어려운 물건이 영화인 걸! 

 

중요한 것은 그 지옥 같던 시대에 우리말 사전을 편찬하는 일 자체의 의의를 오늘의 조건 속에서 생각해보는 것일 게다. 웬만큼 알려진 바지만, 언어들의 운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정치적 상황의 변화이다. 즉, 역사 속에서 언어의 흥망성쇠를 결정지은 것은 그 언어 사용자들의 정치적 지배력이었다. 한때 유럽 대부분 지역에서 사용되던 켈트어는 로마제국의 성장과 게르만민족의 발흥에 따라 점차 유럽 서쪽 해안으로 밀려나 어느덧 소수언어로 전락했고, 그리하여 20세기 초에는 마지막 피난지 아일랜드에서조차 켈트어(게일어)가 조만간 소멸될 것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수백 년 영국의 지배가 낳은 결과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보다 더 처절한 것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일어난 일이다. 15세기 말 콜럼버스가 이 대륙에 도착했을 당시 이곳에서는 무려 1000개가 넘는 언어가 사용되고 있어서, “16세기의 유럽 학자가 알래스카에서 남미 파타고니아까지 여행하려면 엄청나게 많은 언어상의 난관을 극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알다시피 불과 300여년 사이에 대부분의 원주민 부족들은 사라지거나 희미한 존재가 되었다.  

 

그런데 눈여겨볼 것은 아일랜드와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원주민 언어들의 서로 다른 운명이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뿐만 아니라 오스트레일리아나 뉴질랜드, 시베리아 등지에서) 그 땅의 원래 주인이었던 종족이 부흥하고 그들의 언어가 주요 언어로 부활할 가능성은 이제 영원히 사라졌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반면에 아일랜드는 온갖 시련에도 불구하고 인민들의 끈덕진 투쟁에 의해 1922년 아일랜드공화국으로 독립하는 데 성공했고, 이 정치적 사변은 켈트어(게일어)에도 새로운 소생의 희망을 부여했다. 실제로 아일랜드 게일어는 예상과 달리 소멸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만약 역사적 조건들이 아일랜드인의 독립적 생존에 계속 호의를 베푼다면 언젠가 아일랜드어는 영어에 빼앗겼던 자기 땅에서의 언어적 주도권을 되찾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시각에서 <말모이>를 다시 살펴본다면 영화미학적 관점에서 다소 불만스러워도 우리말의 어제와 내일을 위한 적지 않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가령 아일랜드, 핀란드, 인도 등에 비하면 우리가 당한 35년 식민역사는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짧은 기간에 왜 우리말은 일본어에 의해 그토록 치명적인 침탈을 당했고, 아직도 그 여독(餘毒)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그 원인의 학문적 규명은 깊이 있게 이루어졌다고 믿어지지 않는다. 한 가지 짚을 점은 단테, 셰익스피어, 볼테르, 괴테 같은 이름과 더불어 떠오르는 유럽 여러 나라의 경우 근대언어의 발전이 근대국가의 형성과 궤를 같이했음에 비해 우리의 경우에는 근대언어의 탄생이 외세에 의한 식민화과정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우리말의 근대적 성숙을 위한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기 전에 식민지침탈의 참사가 일어났던 것이다.  

 

또 하나의 결정적인 문제는 해방과 동시에 남북이 분단됨으로써 식민지구조의 전면적 청산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짐작건대 식민지기간의 두 배를 넘긴 분단기간은 한반도의 언어현실에도 심대한 분열과 깊은 내상을 주었을 것이다. 그동안 남과 북 사이에 존재했던 것은 동서독 사이와 같은 단순한 분단이 아니라 전쟁을 포함한 격렬한 정치적 적대와 철저한 지리적 분리였다. 이 점을 상기하면 남북 간 언어의 이질화는 골수에 든 질병처럼 오랜 치유를 필요로 할지 모른다. 

              

2018년이 획기적이었던 것은 단지 남북 간의 정치적 화해가 시작된 데만 있지 않다. 무엇보다 다행스러웠던 것은 세 차례 정상회담을 비롯한 많은 남북대화에서 언어의 이질성 때문에 오해가 생기거나 곤경을 치렀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남쪽 국민들은 “멀다고 하믄 안 되갔구나!”라는 김정은 위원장의 한마디를 마음껏 즐겼고, 북쪽 시민들도 문재인 대통령의 능라도 7분 연설에 열렬히 환호하지 않았던가. 이것은 한반도의 통일적 미래를 구상함에 있어 지극히 고무적인 소식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한반도의 전 영역에 걸쳐 하나의 공동체를 결성하기 위한 단일한 감정적 언어적 기반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물론 가끔 경험하는 것처럼 같은 남쪽 사회 안에서도 출신지역이 다르면 미묘한 부분을 서로 못 알아듣는 일도 생길 수 있다. 아마 남북의 정치가들은 개념의 차이 때문에 생각지 못한 장벽을 만날 수 있고, 장차 철도나 도로건설 기술자들도 용어의 상이로 인해 공동작업에 차질을 빚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곤란은 이제부터 토론하고 합의해 나가면 해결되는 것이고, 이를 위한 기초 중의 하나가 ‘겨레말큰사전’ 공동편찬사업이다. 합의가 안되면? 통제 불능처럼 보이는 방언들의 활력이야말로 그 자체가 공동체의 생명활동을 보여주는 희망의 증거이다. 

 

염무웅 문학평론가

(경향신문 2018년 12월31일)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12312033005&code=990100#csidx83958826b518334bf06f27e1d49c5fc onebyone.gif?action_id=83958826b518334bf06f27e1d49c5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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