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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기회는 판문점선언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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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8-08-24 10:45 조회32,8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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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반전이다. 남북·북미 정상회담으로 상승세를 타던 문재인 정부의 기세가 꺾였다. 경제·사회정책의 혼선이 하락세를 자초했다. 그간의 높은 지지율과 세계경제 호조에 누적된 구조적 문제가 가려져 있었다. 돌이켜 보면 7월11일의 6월 고용동향 발표, 7월14일의 2019년 최저임금 의결이 전환점이었다. 집권 측으로서는 6·13 지방선거 직후 국면전환의 시기를 놓친 것이 아쉬울 법하다. 개혁정책 네트워크는 크게 흔들렸고 남북관계 정책네트워크는 아직 취약하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부터 일자리정부와 소득주도성장을 주창했다. 경제정책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행위자는 청와대, 정부, 정당, 언론, 기업, 정규직·비정규직·하위층 노동자, 자영업자, 실업자, 청년 등이다. 최저임금 의제는 이들 행위자의 행위에 공통적으로 연결되는 이슈가 되었다.


브루노 라투르 등이 발전시킨 행위자-네트워크(actor-network) 이론은, 비인간 사물의 적극적인 행위성을 강조한다. 인간은 물론 기술적 도구, 기관, 조직, 담론 등 다양하고 이질적인 행위자가 네트워크를 형성함으로써 권력을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의제는 계속 갈등했고 여러 행위자를 조정·통제하는 네트워크로까지 발전하지 못했다. 그중 최저임금제는 청와대, 정부, 여당을 연결하는 정책네트워크의 핵심 행위자 역할을 수행했다.


그런데 정부는 7월 중순 고용통계를 둘러싼 논란 속에서 2019년 최저임금을 다시 10.9% 인상하는 것으로 결정했다(2018년 16.4% 인상). 그리고 8월17일 7월 취업자 수가 전년 대비 5000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는 ‘고용 쇼크’ 상황이 공표되었다. 최저임금 정책과 일자리 상황판이 정책의 희생자를 상징하는 토템이 되고 있다. 고용통계는 반정부 행위자-네트워크를 지배하고 확장하는 물질 행위자로 전화하고 있다.


청와대·여당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수량·가격 수치상 성과를 정부정책 네트워크로 끌어오기는 어렵게 되었다. 정부가 고용 및 부동산 관련 수치를 조정·통제하는 데 실패했다는 행위자들의 의심이 커지고 있다. 수치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질수록 정부 반대편의 네트워크를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내년에는 세계경제 사이클이 정체국면에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일국단위 성장모델만으로는 미·중 무역전쟁, 국제금융시장 변동의 충격에 대응하기 어렵다.


그런데 한국과 같은 중형 분단국가의 정책네트워크는 세계체제 변동의 규정을 강하게 받는다. 세계체제 변동에 대응하면서 분단체제를 혁신하는 성장전략이 필요하다. 혹자는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을 체제·구조 분석과 대립하는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필자는 이들이 서로 보완될 수 있다고 본다. 세계체제·분단체제를 일종의 네트워크구조로 볼 수 있다. 체제혁신은 현재의 네트워크구조 속에서 위치를 조정하거나 새로운 링크를 형성하는 행위이다. 판문점선언은 네트워크구조의 변경을 시작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판문점선언은 1990년대 이래 여러 차례 합의된 남북 간 네트워크형 거버넌스를 재확인한 것이다. 이것을 다수의 행위자, 즉 다수의 국가·기업·시민사회와 사회-기술적 장치들이 연결되는 네트워크구조로 진전시키는 것이 체제혁신의 핵심적 과정이다.

 

남북 네트워크의 심화·확장을 위해서는 북·미관계의 진전이 필수적이다. 현 시점에서는 판문점선언에서 합의된 동해지구 프로젝트를 남·북·미 협력으로 확대하고 비핵화 진전과 연결시키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후략) 

 

이일영 한신대 사회혁신경영대학원장
(경향신문, 2018년 8월 22일)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8222035035&code=990100#csidxe57106bffe7b023ac20d2c4037774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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