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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경] 분단선 너머 해방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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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8-08-24 10:35 조회32,97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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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 접경지역 여행의 백미는 중국과 북한 사이의 국경을 ‘살짝’ 넘어보는 것이다. 월경금지(越境禁止)라는 표지가 있는 곳에 한 발을 내밀어 북한 땅에 다다르는 경험은 그 어떤 월경과는 다른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곳은 단순히 타국이 아닌 금기의 땅이자 우리 모두가 끊임없이 욕망하는 곳이면서 위험이 가득하여 피해야 하는 공간이다. 양가적 감정이 투영된 북한 땅에 잠깐이나마 발을 내딛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이 ‘금지’의 선이 체제가 만들어낸 두려움과 공포에 불과하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나마 조중 접경지역에서는 ‘장난 삼아’(혹은 관광상품의 일부로) 월경을 시도해볼 수 있지만 남북 사이의 분단선은 일반인의 접근조차 불가능하다. 지난 4월 분단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을 오가는 두 정상의 모습에 우리 모두가 느낀 뭉클한 감정은 지난 70여년의 분단이 그 보잘것없는 기다란 선에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지금껏 절대로 넘어서도, 넘어설 수도 없었던 분단선을 넘는 것이 이리도 쉽다는 것을 이제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던 것이다.

우리의 삶과 의식을 갈라놓은 분단선은 영화에서나마 다른 상상으로 진화된 바 있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판문점의 남북 병사가 서로 총을 겨누며 대치하다가 우연히 만나 우정을 쌓는 모습을 보여준다. 분단이 작동하는 곳이 공식적 영역이며 시간적으로는 현재라면, 남북 병사들의 친밀한 관계는 초소 아래 지하 벙커라는 은밀한 곳을 중심으로 모두가 잠든 밤에 더욱 깊어가며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은유한다. 몇몇 영화평론가들이 분석한 것처럼 남북 병사들의 우정의 공간은 현실화된 유토피아인 헤테로토피아를 상징하는데, 이들의 특별한 관계는 분단선을 무력화하는 원형의 카메라 움직임으로 상징화된다.

대치하고 있는 기다란 직선과 남북의 병사가 어깨를 마주하며 눈을 맞추는 둥근 곡선이 마치 경쟁하듯이 낮과 밤, 공식과 비공식, 현재와 미래(상상)로 그려진다. 영화는 결국 분단의 금기를 어긴 남북 병사 모두의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잠시나마 함께했던 시간은 허망하게 사라지고, 현실의 잔혹함 앞에서 이들의 한낱 순진한 꿈은 깨어지고 마는 것이다.

영화처럼 현실의 분단선은 여전한 위세를 과시한다. 하지만 영화가 그려낸 헤테로토피아의 전복성도 가느다랗게 존재한다.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 늙은 몸을 겨우 가눠 경계를 넘은 이산가족에게 분단선은 여전히 가혹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넘어서는 실천을 계속한다. 카메라 플래시 앞에서 어색하게 마주한 이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서로 눈짓과 몸짓으로 교감하고, 그나마 처음으로 허락된 그들만의 시간 동안 짧지만 강한 헤테로토피아를 만든다. 어쩌면 스쳐가는 복도 한켠, 화장실 귀퉁이에서 서로 손을 맞잡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좀 더 발칙한 상상을 해보자면 분단의 눈이 모두 잠든 아주 늦은 밤 아무도 모르게 만났기를 바란다. 솔직히 그들이 그 짧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분단 너머 그들만의 따듯한 기억과 희망찬 관계를 만들었기를 소망한다. 옹기종기 모여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이토록 잔인했던 분단선은 무력화될 것이며, 지난 세월의 고통 또한 조금이나마 치료될 것이기 때문이다. (후략)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한겨레신문, 2018년 8월 22일)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58782.html#csidxa0a4e502ad941aba7be8b738ad58a2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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