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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환] 고등교육 관련 법률의 난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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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8-06-11 11:41 조회34,1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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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대와 마찬가지로 국공립대에도 대학평의원회(이하 평의원회) 설치를 의무화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작년 11월 국회를 통과한 후 지난 5월29일부터 시행되었다. 평의원회는 11명 이상으로 구성하며, 교원, 직원, 조교 및 학생 대표, 동문 및 학교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자를 포함한다. 단, 특정 구성단위의 평의원 수가 전체 평의원 정수(定數)의 2분의 1을 초과하지 못하니, 교수 평의원 숫자 역시 전체 평의원의 절반 이하로 제한된다. 대학 구성원의 의사를 골고루 반영할 기구의 설치라서 촛불혁명과 함께 가는 바람직한 변화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우선 사립대가 국공립대보다 먼저 평의원회를 만든 경위부터 영 개운치 않다. 사립대의 평의원회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 개정은 2007년 7월이었다. 2005년 노무현 정부의 집권당이 사학 민주화를 위해 개방이사를 도입하는 등 사립학교법을 개정했지만, 야당인 한나라당이 집요한 장기 원외투쟁 끝에 여당을 굴복시키고 사립학교법 재개정에 성공한 바로 그때였다. 이 과정에서 시행령에 있던 평의원회 규정을 상위 법률로 올리는 대신 학교법인 이사의 4분의 1 이상에 대한 2배수 후보 추천권과 학교법인 감사 1인의 추천권이 평의원회에서 개방이사추천위원회로 넘어가는 등 개악도 뒤따랐다. 결국 사립대 평의원회는 내실을 빼앗긴 꼴이다. 이런 기구를 뒤늦게 국공립대에도 설치한다는 명분으로 상위법인 고등교육법을 바꾸는 것이 민주화의 뜻있는 진전이라고 보기 힘들다.


지난 4월11일 ‘촛불정부와 사학개혁 과제’라는 국회 토론회에서 임희성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평의원회의 문제와 개선 방향을 조목조목 짚었다. 그중에서 2015년 7월 대법원이 ‘학교법인 상지학원 이사선임처분취소청구사건’에 대해 “대학의 구성원인 교원, 직원, 학생 등도 원칙적으로 대학 자치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교수회와 총학생회가 이사선임처분을 다툴 법률상의 이익을 가진다”고 판결했음을 지적한 대목은 무척 중요하다. 법원이 교원, 직원, 학생을 대학 자치의 주체로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국공립대든, 사립대든 현재의 평의원회가 다양한 대학 구성원이 대학 자치의 주체로 활약하게 할 수 있을까? 평의원회의 심의사항으로 대학 발전계획, 학칙의 제·개정 등이 그럴듯하게 법조항에 담겨 있지만, 정작 중요한 예·결산 심의권은 어디에도 없다. 그나마 교육과정 운영과 대학 헌장의 제·개정은 자문사항으로 낮춰 규정하고 있다. 학생도 참여하는 평의원회가 학생의 최고 관심사인 교육과정을 자문밖에 못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고, 대학 헌장 규정은 짐작건대 종교재단의 편협함을 보호할 목적인 듯하다. 참 꼼꼼하고 용의주도하다.


국회의 법률 개정 과정도 허술하다. 2017년 9월26일 제354회 교육문화체육관광소위 제1차 회의록(12~13면)을 보면, 정재룡 수석전문위원이 국립대학법인인 서울대학교와 인천대학교는 각각의 법에 따라 평의원회가 규정되어 구성상 학생이 제외되는 등의 문제 때문에 관련 법률 정비가 필요하다고 보고한다. 그러나 소위에 나온 교육부 박춘란 차관은 개정안의 기술적 자구 수정만을 제안할 뿐 법률 정비 필요성에 침묵하며, 국회의원들의 토론은 무성의하고 무책임하다. 당사자인 대학 구성원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한, 교육부와 국회는 대학의 민주적 운영에 대해 무관심한 것이다.


교수의 자치조직인 교수회는 고등교육법 시행령이 ‘교수회가 있는 경우에는 그에 관한 사항’을 학칙에 기재하게 규정할 따름이다. 학생회나 노동조합 역시 대학 자치의 주체로 역할을 할 법적 보장이 없으니, 교수, 직원, 학생의 대표가 평의원회를 내실있게 운영하기 어렵다. 대학 관련 법률의 전면적 정비가 절실하고 불가피하다.

 

나는 작년 6월22일자 정동칼럼에서 “교수가 대학평의원회를 주도하지 못하도록 막는 굴욕적인 법률은 정년보장의 혜택을 누리는 정규직 교수들이 교원의 법적 지위조차 없는 비정규직 교수들을 외면해온 탓”이라고 썼다. 또한 연구와 교육을 책임지는 교수가 대학의 주역이라는 소신 때문에 “평의원회의 과반수, 심지어 3분의 2 이상”을 교수로 채워야 옳다고 했지만, 교수의 ‘갑질’ 근성으로 오해될 이 발언은 철회해야겠다. 교수사회의 각성과 혁신은 교수회와 비정규직 교수의 법적 위상을 확보하는 고등교육 법체계의 전면적 제·개정으로 이어져야 한다. (후략)


김명환 서울대 교수·영문학
(경향신문, 2018년 6월 7일)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6072059015&code=990308#csidxebf12fb6c663965a90b90da682a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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