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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국제 홀로코스트 추모일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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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8-01-17 09:59 조회35,2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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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은 2005년 총회결의안 60/7호를 채택하여 1월27일을 국제 홀로코스트 추모일로 지정했다. 결의안은 홀로코스트 부인 행위를 단호히 거부하라고 촉구하고, 민족과 종교 집단에 가해지는 불관용, 증오 선동, 괴롭힘, 폭력을 규탄했다.


홀로코스트의 역사성을 기억하면서 현재적 의미를 함께 상기하는 것도 중요하다. 홀로코스트를 예비하던 단계에서 나타났던 온갖 차별과 증오를 오늘 우리 사회의 혐오 현상과 연결시켜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 특히 소수자에게 가해지는 혐오 표현의 심각성을 직시해야 한다.

 

 철조망 뒤에서 소총보병 322사단을 기다린 것은 7천명의 산송장 같은 수인들, 불태워진 수백명의 유해, 37만명분의 남자 옷과 84만명분의 여자 옷, 그리고 7.7톤의 머리칼이었다. 1945년 1월27일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도착한 소련군이 맞닥뜨렸던 광경이다. 우려했던 나치 독일군의 저항은 없었다. 소련군의 진격이 가까워지자 화장장을 파괴한 뒤 걸을 수 있는 6만명의 포로를 끌고 ‘죽음의 행진’에 나섰기 때문이다.

유엔은 2005년 총회결의안 60/7호를 채택하여 1월27일을 국제 홀로코스트 추모일로 지정했다. 결의안은 홀로코스트 부인 행위를 단호히 거부하라고 촉구하고, 민족과 종교 집단에 가해지는 불관용, 증오 선동, 괴롭힘, 폭력을 규탄했다. 또한 결의안은 홀로코스트가 “증오, 선입견, 인종주의, 편견의 대상이 될 위험에 처한 모든 사람들을 위한 영원한 경고”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유엔 회원국들이 미래 세대에게 홀로코스트의 교훈에 관해 교육을 실시하라고 권고했다.

홀로코스트가 현대 인권을 형성하는 데에 중요한 단초를 마련한 사실은 세계인권선언의 전문에 잘 나와 있다. “인권을 무시하고 짓밟은 탓에 인류의 양심을 분노하게 한 야만적인 일들이 발생하였다. 따라서 보통사람들이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사람이 말할 자유, 신앙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의 등장이라고 우리 모두가 한목소리로 외치게 되었다.”

국제 인권학계에서는 해가 갈수록 더 다양하고 풍부한 홀로코스트 연구 성과가 나오고 있다. 우리의 인권학이나 인권담론에서 민간인 학살이나 과거사 청산 문제가 주류에서 약간 비켜난 이슈로 다뤄지는 현실과 대조를 이룬다. 최근엔 기존의 홀로코스트 서사에서 정설로 취급되던 관점에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가 많이 등장했다. 작년에 출간된 댄 플레시의 <히틀러 이후의 인권>이 대표적인 성과다.
홀로코스트 연구에서 통용되어온 표준적 서사는 다음과 같다. 전쟁 중 연합국 쪽은 유대인의 박해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실상을 인지하지 못했다. 설령 정확한 사실을 알았다 한들 급박한 상황에서 홀로코스트를 중단시키기 위해 별도의 노력을 기울이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종전 후 독일의 뉘른베르크와 일본의 도쿄에서 전범재판이 열려 역사청산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유엔에서는 1945년 이후 인권을 인류 공통의 의제로 채택하여 발전시켰다.

플레시에 따르면 이런 유의 설명은 홀로코스트에 관한 정보가 완전히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난 오해에 가깝다고 한다. 최근에 기밀해제된 유엔의 문서고에서 그가 복원해낸 실상은 기존의 홀로코스트 서사와 많이 다르고, 기존의 인권 현대사 서술과도 상당히 결을 달리한다.

미국, 소련, 영국, 중국을 포함한 연합국 쪽 26개국은 1942년 1월1일 ‘유엔선언’을 발표한다. 유엔(국제연합)이라는 용어가 최초로 등장한 시점이다. 선언은 “세계를 지배하려는 사악한 세력에 맞서 인권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함께 투쟁할 것이다”라고 결의를 다진다. 또한 “전체주의적 군국주의의 한통속인 독일, 이탈리아, 일본에 대해 완전한 승리를 목표로 한다”고 적시한다. 1945년 초까지 21개국이 선언에 추가로 참여했고 그 후 몇 나라를 더해 총 51개국이 유엔헌장을 제정하기 위한 샌프란시스코 회의에 참가했던 것이다.

유엔선언이 나오고 다음해인 1943년에 유엔전쟁범죄위원회(UNWCC)가 비밀리에 결성되었다. 적국의 전쟁범죄 행위를 조사하는 일 자체가 극도로 민감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전시였으므로 위원회는 개별 참여국들의 독자적인 활동, 그리고 그들이 보내오는 정보를 런던과 워싱턴에서 취합하는 정보교류의 기능을 담당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전쟁의 최전선에 있었던 강대국보다 중소국, 비서구권, 그리고 망명정부들이 더 큰 활약을 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홀로코스트가 일어나고 있던 바로 그 시점에서 자국의 지하 저항조직이 수집한 방대하고 상세한 일차 정보들을 모아 전범을 기소할 수 있는 구체적인 법적 증거로 재구성하였다. 정보의 정확도가 대단히 높았다. 트레블린카 절멸수용소의 가스실 바닥이 도기 벽돌로 깔려 있어 표면이 젖으면 매우 미끄럽다는 사항까지 보고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외부 세계에서 홀로코스트에 대해 잘 몰랐다는 건 사실과 다르다. 연합국 지도부의 정치적 판단으로 전쟁 수행의 우선순위에서 밀렸을 뿐이다.

위원회는 전쟁 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심각한 인권유린으로 파악하는 일에도 열심이었다. 흔히 이 문제는 1990년대의 보스니아 사태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이슈를 통해 국제적인 쟁점으로 등장했다고 보는 게 지금까지의 통설이었다. 그러나 전범위원회는 2차대전 도중에 이미 ‘강간과 강제 성매매’를 전쟁범죄로 규정하고 그리스, 필리핀, 폴란드 등지의 사례들을 채증하고 법적 소송을 준비했던 것이다.

전범위원회는 나치의 폭격이 이루어지는 와중에도 이렇게 철두철미한 조사를 진행하여 전범 약 3만6천명에 대해 사전 기소를 완료하였고, 종전 후 실제로 세계 각지에서 약 2천건의 크고 작은 전범재판을 통해 이들이 처벌받도록 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흔히 2차대전 인적 청산의 대명사로 불리는 뉘른베르크 재판은 전쟁 후 진행된 세계적 전범처리의 그물망에서 상징적으로 유명세를 탔던 하나의 그물코에 불과한 것이다.

전범위원회의 또 다른 공헌은 새로운 법적 개념을 도입하여 현대 국제인권기준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침략전쟁’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고, 상부의 명령을 단순히 따랐다는 핑계가 법적으로 인정될 수 없다는 원칙을 세우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또한 국제형사재판소와 같은 중앙집중식 국제법정이 아니라 각국의 기존 사법체계 틀 내에서 국제기준에 따라 전쟁범죄를 처벌할 수 있는 지역분권적 인권법정의 가능성을 제시한 것도 중요한 기여로 꼽을 수 있다.

유엔전범위원회는 세계인권선언이 나온 1948년에 활동이 중단되었고 이듬해에 모든 자료가 기밀로 분류되어 봉인되기에 이른다. 복역 중이던 나치전범들이 비슷한 시기에 일제히 풀려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냉전 반공주의를 내세우던 트루먼 미국 대통령 입장에선 전범 청산보다 서독과 일본을 돈독한 우방으로 만드는 게 절실했다. 미 국무부 내에서도 나치 척결파와 나치 활용파가 대립했다. 나치 부역자들을 반공투사라고 치켜세운 매카시 상원의원도 한몫을 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고 다시 세상에 나온 유엔전범위원회의 기록은 오늘날 인권운동에 현실적인 교훈을 주고 있다. 기록 보존의 중요성이 첫째다. 당장 해결이 안 되더라도 기록이 있으면 언젠가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이다. 인권 문제를 정치 논리로 재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도 얻을 수 있다. 전범위원회를 종결하면서 내놓았던 논리와 오늘날 과거사 청산을 덮자고 하는 논리가 유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반인권의 논리에는 ‘보편적’인 회로가 있기 때문이다. (후략)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겨레, 2018년 1월 16일)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28035.html#csidxfd07fc7701e7c63b5b3279e98eee1e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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