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경] 희망, 오래된 매듭을 푸는 시간 > 회원칼럼·언론보도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회원로그인

회원칼럼·언론보도

[백영경] 희망, 오래된 매듭을 푸는 시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7-07-07 11:47 조회35,536회 댓글0건

본문

http://www.nongmin.com/article/ar_detail.htm?ar_id=277024&subMenu=articletotal

[생각의 숲-백영경] 희망, 오래된 매듭을 푸는 시간


나라 돌아가는 모양이든 각자 살림이든 이젠 뭔가 나아질 거라 기대하는 사람들이 요즘 들어 많아졌다. 촛불 민의를 담은 새로운 시도들이 이어지면서 세상이 조금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 역시 곳곳에서 감지된다. 당장 뭐가 나아진 건 아닐지라도 일단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 그 자체만으로도 변화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우리 현실이 쉽게 풀릴 길 없이 복잡하게 헝클어진 실타래라고 할 때, 지금은 오래된 매듭을 느슨하게 만들고 하나하나 풀어보려 애쓰는 시간이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테지만 일단 시작하지 않으면 저절로 풀릴 리는 없으니 일단 시작이 반일 테다.


그런데 오래된 매듭을 풀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일단 너무 조급해하면 안된다. 매듭 하나를 풀겠다면서 너무 급하게 당겨대면 다른 쪽 매듭이 더 단단하게 조여져 결국은 풀 수 없게 되기도 한다. 특히 사회의 중대 과제들을 해결하려고 할 때는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달려들기에 앞서, 과연 문제제기가 정확한지를 점검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애초에 질문 자체가 잘못 설정돼 있다면, 해결하려는 노력에 아무리 진정성이 담겨 있고 의지가 강하다고 하더라도 현실이 개선되긴 어렵기 때문이다. 문제가 더 꼬이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저출산문제가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지난 10년 동안 상당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고도 출산율은 별로 높아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크게 변화할 기미는 없다. 출산율이 높아지려면 노동환경부터 사회문화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가 여성·아이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조금 더 살 만한 곳이 돼야 한다. 그런데 엄연히 출산문제는 개인의 선택이 됐다. 이미 어떤 저출산 대책을 내놓아도 출산의 부담을 직접 져야 하는 젊은 여성들은 국가가 나서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삼는다며 반발한다.


사실 사회 전체가 조금 더 살 만해지면 출산율은 어느 정도 오르게 돼 있고, 현대사회에서는 강제로 출산율을 올릴 만한 마땅한 수단도 없다. 단순히 여성들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권장하기보다는 다른 질문을 해야 한다.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은 사회는 어떤 사회인지, 어떤 정치적 과정을 통해 그러한 사회를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해 더 직접적으로 논의하고 실천해야 한다.


저출산 논의가 우리 사회의 문제해결을 돕기보다는 방해해왔다고 보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저출산에서 비롯되지 않은 문제를 저출산 문제로 얼버무림으로써 문제해결을 어렵게 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농촌 인구감소 문제다. 젊은층이 도시로 쏠리면서 농촌에 주로 노인들만 남게 된 현상은 한국의 출산율이 급격히 감소하기 이전부터 일어난 일이다. 출산율이 높아진다고 한들 농촌의 인구가 저절로 늘어날 가능성은 없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출산보조금을 아무리 많이 줘도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이 머물러 살지 않는다면 결국 농촌의 인구는 줄어들게 돼 있다. 그러니 결을 달리하는 문제들이 하나의 큰 그림 안으로 쓸려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 역시 오래된 매듭을 풀려고 할 때 챙겨야 할 일 가운데 하나다.


또한 문제가 과거에만 있다는 오만에서 벗어나야 한다. 풀어야 할 매듭이 모두 과거 시제라면 세상살이가 얼마나 간단하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문제를 풀려다 새로 생기는 매듭도 있고, 현재의 어리석음과 탐욕으로 만들어지는 매듭 역시 끝이 없다. 4대강 보를 열어 녹조를 비롯한 환경파괴를 되돌릴 실마리가 생기려나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 일이 미처 일어나기도 전에 지난 정부에서조차 불허했던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를 다시 추진한다는 소식이 들리는 게 바로 현실이다. (후략)


백영경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농민신문, 2017년 6월 21일)


원문보기: http://www.nongmin.com/article/ar_detail.htm?ar_id=277024&subMenu=articletotal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Segyo Institute.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TEL. 02-3143-2902 FAX. 02-3143-2903 E-Mail. segyo@segyo.org
04004 서울특별시 마포구 월드컵로12길 7 (서교동 475-34) 창비서교빌딩 2층 (사)세교연구소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