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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인권 대통령 감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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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4-07 16:54 조회32,4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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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주요 후보들 중 인권과 관련해서 눈에 띄는 발언이나 공약을 내놓은 이가 거의 없다. 성소수자에 대한 입장이 언론에 약간 소개되었을 정도다. 인권특보를 임명한 후보가 있고 북한 인권을 공격 소재로 쓰는 쪽도 있지만 여전히 인권이 이번 대선에서 주된 쟁점이 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인권을 향상하기 위해선 인권문제 해결에 힘을 쏟으면서 그와 동시에 인권 증진을 위한 여건을 형성해야 한다. 후보들은 인권운동의 구체적인 문제제기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고, 선거 국면에서 인권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하기가 정 부담된다면 여건 형성을 위한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할 줄 알아야 한다.


대통령 선거의 대진표가 나왔다. 조기 대선의 원인을 제공한 대통령 탄핵 사유는 국정농단이었다. 헌법재판소는 이것을 위헌·위법행위에 의한 “대의민주제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의 훼손”으로 정리했다. 세계인권선언에서 중요한 인권으로 규정되어 있는 항목들이다.


최고 지도자가 기본인권을 심대하게 위반한 탓에 탄핵을 받고 구속까지 된 역사적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런 난리를 겪은 후에 치르는 대선이라면 당연히 인권이 중요한 쟁점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쉽게도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지금까지 주요 후보들 중 인권과 관련해서 눈에 띄는 발언이나 공약을 내놓은 이가 거의 없다. 성소수자에 대한 입장이 언론에 약간 소개되었을 정도다. 인권특보를 임명한 후보가 있고 북한 인권을 공격 소재로 쓰는 쪽도 있지만 여전히 인권이 이번 대선에서 주된 쟁점이 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 이런 일은 이번 대선만의 특징이 아니고 한국만의 현상도 아니다.


미국의 경우를 보자. 대선에서 인권을 주요 공약으로 다뤘던 후보는 지미 카터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른바 인권외교를 표방했던 카터는 정확히 40년 전 대통령 취임사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가 자유롭다고 해서 타국 국민들의 자유에 대해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는 나라를 명백히 선호하는 것이 미국민의 도덕관념에 부합된다.” 역사상 미국 대통령 취임사에 인권이 등장한 최초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대외정책에서 그렇게 하겠다는 말이었다. 이라크전쟁 직후 재선에 성공했던 부시도 2005년의 취임사에서 인권을 언급하긴 했다. 그러나 국내의 인권 수호가 아니라 사담 후세인 같은 외국 독재자를 제거한 일을 자화자찬하는 맥락에서였다. 트럼프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오바마조차 공약이나 취임사에서 인권을 거론하지 않았다.


인권이 중요하다는 데엔 모두가 동의하는데 왜 선거에선 주요 이슈가 되지 않는 것일까. 권위주의하에서 선거를 하면 열악한 인권상황을 개선하는 과제가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대의로 수렴되곤 한다. 예를 들어, 1987년 민주항쟁 때 “고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구호가 등장했지만 사실 이 말은 독재를 끝내고 민주주의를 하자는 요구와 같은 뜻이었다.


반면 민주체제에서 선거를 하면 개별 인권 문제가 일반적인 정책의 흐름에 종속되는 경향이 발생한다. 현대 민주국가의 정책은 큰 틀에서 보아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적 목표를 지향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인권에선 단 한 사람의 기본권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그러니 표를 의식하는 후보들은 수적으로 소수에 속한 사람의 권리, 특히 그것이 민감한 쟁점이라면 회피하거나 타협하기 쉽다. 돌이켜보면 1997년 대선에서 국가인권위원회 설립이 공약으로 등장한 건 아주 예외적인 일이었다.


선거에서 인권이 주변적 이슈로 취급된다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더 친인권적인 대통령을 뽑는 일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런 대통령을 어떻게 고를 수 있을까. 세 가지 차원의 총점을 합산해 보면 정답이 나온다.


첫째, 후보 개인이 적어도 평균 수준의 인권 감수성과 인권 의식이 있다는 전제하에서, 시민사회에서 주창하는 요구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최근 한국인권학회 준비위원회에서 대선 정국을 맞아 인권 이슈를 점검하는 모임을 열었다. 사회권, 지방정부, 기업, 이주민, 형사사법,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인권기본법과 청와대 인권보좌관제에 대한 제안이 나왔다.


청소년 인권단체인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가 주요 대선 후보들을 상대로 실시한 청소년 인권에 대한 ‘인권수능’ 시험성적이 지난 주말에 공개되었다. 7명이 답안지를 제출했고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후보들은 결시했다. 채점 결과를 보면 후보 간 차이가 있지만 체벌·언어폭력 근절, 청소년 참정권 확대, 학교폭력법 개정, 학생인권 전국적 보장 등에선 대체로 점수가 높았다. 학생인권법 제정에는 대다수가 찬성했다. 청소년 노동인권 등 세부정책에서는 후보 간 차이가 나타났는데 지지율이 높을수록 몸을 사리는 경향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인권을 향상하기 위해선 인권문제 해결에 힘을 쏟으면서 그와 동시에 인권 증진을 위한 여건을 형성해야 한다. 둘 다 잘하면 좋지만 적어도 하나는 잘해야 한다. 후보들은 인권운동의 구체적인 문제제기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고, 선거 국면에서 인권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하기가 정 부담된다면 여건 형성을 위한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할 줄 알아야 한다.


둘째, 선거 지지율의 분포를 고려해야 한다. 이른바 선택권 집단 이론에서는, 법적으로 선거권을 가지거나 실제로 그 선거권을 행사하는 모든 사람을 선택권 집단이라 한다. 이것과 구별되는 권력획득 동맹이란 게 있다. 이들은 특정 기반에 근거한 열성 지지층으로서 권력획득에 꼭 필요한 핵심 지지세력을 이룬다.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선택권 집단의 크기와 상관없이 아주 작은 권력획득 동맹만으로도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 이때 독재자는 핵심 지지층에게만 각종 사회경제적 혜택을 베풀면 된다.


그러나 민주체제에서는 선택권 집단에 비교해 권력획득 동맹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커야만 정권을 잡을 수 있다. 따라서 출마자에게는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가는 폭넓은 이점을 약속해야 할 인센티브가 발생한다. 달리 말하면 당선에 필요한 절대 수치도 중요하지만, 지지층의 구성이 지역, 연령, 성별, 계층상 고루 분포되어 있는 후보가 만인공통의 재화를 제공할 개연성이 높아진다. 인권은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제공되어야 하는 공공재에 속하기 때문에 그것을 ‘비배제적 재화’ 또는 ‘비경합적 소비재’라고 부르는 것이다. 따라서 가능한 한 다양한 집단으로부터 골고루 지지를 받는 후보일수록 인권을 포괄적으로 보장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셋째, 인권에 관한 국제적 경륜의 차원이 있다. 인권을 시민권과 구분하는 기준은 전자가 국제적인 개념이라는 점이다. 대통령 선거는 한 나라의 최고 대표를 뽑는 자리여서 인권의 초국가적 성격과 완전히 부합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을 대표하면서도 인권의 국제적 지향을 비교적 잘 이해하고 그것을 보편언어로 표현할 줄 알았던 정치인이 김대중 대통령이 아니었던가 싶다.


국제관계에서 인권문제가 어떻게 제기되고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형성·이행되는가 하는 점을 잘 이해하는 차원도 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좋은 예다. 아마 반 전 총장 같았으면 국제정치 무대에서의 인권 동향이나 인권 의제가 지니는 의미를 외교적으로 능란하게 소화하는 데에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 능력이 대외정책에서 소중한 자산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정치행보의 전말을 보면 국제기구의 고위 기술관료 이상의 인권지도자적 비전을 제시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후략)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겨레, 2017년 4월 4일)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89302.html#csidx6e52bfe4f7f94709c57fed26f0329c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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