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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어느 작가의 특별한 인권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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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07 17:06 조회31,8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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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인간의 정신력을 시험하는 격랑의 시대를 건너고 있다. 대통령의 범죄적 헌정유린으로 백척간두에 선 한국 민주주의, 세계적 재앙으로 전락한 미국의 선거정치, 기후협정의 붕괴 가능성이 현실화된 지구 혹성. 어디를 둘러봐도 불안정과 불확실이 짙은 농무처럼 앞을 가로막는다.
사람은 사회에 쓸모가 있고, 세상사에 관심을 가진 시민이 되기 위해 충분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사람이 자신의 재능을 계발하여 인류에 봉사할 수 있도록 기회균등의 특별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사람은 일반적 지식의 전 분야에서 용이하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 토론과 결사와 신앙의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인간의 정신력을 시험하는 격랑의 시대를 건너고 있다. 대통령의 범죄적 헌정유린으로 백척간두에 선 한국 민주주의, 세계적 재앙으로 전락한 미국의 선거정치, 기후협정의 붕괴 가능성이 현실화된 지구 혹성. 어디를 둘러봐도 불안정과 불확실이 짙은 농무처럼 앞을 가로막는다. 그러나 칠흑 속에서도 등불을 찾을 수 있고 찾아야 하는 법. 역사에서 비근한 사례를 하나 들어 보자. 파시즘이 파죽지세로 세계 지배의 불구덩이를 넓혀가던 때의 이야기다. 그 풍전등화와 같던 순간에도 새 시대를 위한 비전에 몰두한 사람이 있었다. <타임머신>, <투명인간>, <우주전쟁>을 쓴 소설가이자, 탱크, 대중감시, 세균전, 라디오, 텔레비전, 원폭, 지구 온난화를 예측한 미래 연구가 허버트 조지 웰스였다.


우리에겐 과학소설가로 많이 알려진 까닭에 웰스를 주류 문학에서 다소 비켜나 있는 존재로 보기 쉽다. 그건 오해다. 당대에 조지프 콘래드나 조지 버나드 쇼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문호였고, 보르헤스는 웰스의 작품을 “인류 전체의 우화로 기억될 것”이라고까지 했다. 영국 펜(PEN) 클럽이 매년 웰스 기념강연을 개최할 정도로 영문학에서 비중이 큰 인물이다. 웰스는 문명비평가로도 이름이 높았다. 특히 현대 인권에서 그가 남긴 족적은 세계사적인 의미가 있다.


웰스는 전쟁의 목적이 파시즘과 나치즘을 물리치고 인권을 보장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이런 신념으로 그는 1940년 <인간의 권리>(나중에 <새로운 세계질서>로 재간행)라는 소책자를 냈다. 일흔이 넘은 노대가가 “인간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건”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쓴 정치평론서였다. 그는 주권재민 원칙으로 통제되지 않은 정부는 “조직범죄 비슷하게” 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인권을 지키든지 아니면 꺼지든지” 둘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책 10장에 ‘인간의 권리선언’이 나온다.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웰스가 보내준 저서를 읽고 영감을 얻어 1941년 의회에서 ‘네 가지 자유’라는 유명한 연설을 했다. 웰스가 타계하고 2년 뒤 유엔에서 ‘세계인권선언’이 제정된다.


역사를 통틀어 수많은 권리선언이 나왔지만 문필가가 개인적으로 발표한 인권선언, 게다가 사회권·발전권·교육권으로 시작되는 선언은 거의 전례가 없다. 간결하지만 강렬하고 실험적이며 논쟁적인 문헌이다. 사료로서의 가치를 고려해 번역하여 선보인다. 아마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글이 아닐까 한다. 12월10일 인권의 날을 맞아 직장이나 평생학습 모임에서 각자가 인권선언을 작성해 발표하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1. 모든 사람은, 인종·피부색·신념·의견과 무관하게, 자신의 온전한 심신 발전의 가능성을 실현하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건강 상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섭생·의복·의료·보살핌을 받을 권리가 있다.

2. 사람은 사회에 쓸모가 있고, 세상사에 관심을 가진 시민이 되기 위해 충분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사람이 자신의 재능을 계발하여 인류에 봉사할 수 있도록 기회균등의 특별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사람은 일반적 지식의 전 분야에서 용이하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 토론과 결사와 신앙의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3. 사람은 합법적인 어떤 직업에도 자유롭게 종사할 수 있으며, 자신의 노동과 그 노동이 공동체의 복리에 기여하는 데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만큼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 사람은 유급고용에 대한 권리, 그리고 다양한 고용형태가 존재하는 한, 자유로운 직업 선택권이 있다. 사람은 자신의 고용을 제안할 수 있으며, 그런 제안은 공적으로 고려된 후 수용 또는 기각될 수 있다.

4. 사람은, 공동선에 부합하는 양과 한도 내에서, 합법적으로 거래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차별적 제한 없이 매도하거나 매수할 권리가 있다.

5. 사람은 자기 인신 및 합법적으로 취득한 사유재에 대한 사적 폭력, 갈취, 강제, 위협으로부터 경찰과 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6. 사람은 자기 비용으로 전세계를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의 주택이나 아파트 또는 일정한 규모의 정원은 자신의 성과 같아서 주인의 동의가 있어야만 출입이 가능하다. 그러나 자신의 방문이 특별한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또는 본인에게 위험하지 않는 한, 그리고 다른 시민에게 지나친 불편을 초래하지 않는 한, 모든 나라, 광야, 산, 농장, 크고 작은 수목원, 바다, 호수, 강을 자유롭게 왕래할 권리가 있다.

7. 자신의 정신 상태로 인해 관할기관으로부터 자신과 타인에게 위험하다는 판정-매년 갱신되는-을 받지 않은 한, 누구도 범법 행위로 기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6일 이상 구속될 수 없으며, 기소되었다 해도 공개재판 없이 3개월 이상 구속될 수 없다. 후자의 경우, 구속 만료 시점까지 적법절차에 따른 재판 혹은 선고를 받지 않은 사람은 무조건 석방되어야 한다. 또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군이나 경찰에서 강제로 징집해서는 안 된다.

8. 사람은 타인으로부터 자유롭게 비판받을 수 있지만, 고통과 해악을 초래하는 허위 사실이나 무고로부터 적절하게 보호받아야 한다. 자신에 관한 행정상의 기재사항과 기록을 본인이 직접 비공개로 열람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정부 조직도 개인에 관한 비밀기록을 보유할 수 없다. 정부가 관리하는 개인 기록에 대해 당사자가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 본인의 요청에 따라 확증과 수정이 가능해야 한다. 개인 기록은 단순한 서류에 불과하므로 공개된 법정에서 적절한 확인절차를 거치지 않는 한 법적 증거물로 사용될 수 없다.

9. 누구도 본인의 자유의사에 따른 분명한 동의 없이 어떤 식으로든 상해 또는 단종 시술을 받지 않으며, 자해를 막기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 신체적 제약을 받지 않으며, 고문, 구타 및 여타 체벌을 받지 않는다. 사람은 정신적 고통을 야기할 목적의 과도한 방음, 소음, 점등, 암흑 상태에서 구금을 당하지 않으며, 전염의 우려가 있는 비위생적 상태에서 구금되지 않으며, 질병을 전파할 가능성이 있는 수인들과 함께 혼거 수용되지 않는다. 사람은 강제급식을 당해서는 안 되며,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단식의 중단을 강요받지 않는다. 사람은 강제로 투약을 당하지 않으며, 본인의 인지와 동의 없이 약물치료를 받아서도 안 된다. 극형은 15년 이하의 중벌 구금 또는 자발적 죽음의 선택에 국한된다. (웰스는 이런 죽음이 사형과 구분되며, 자살할 권리를 의미하지도 않는다고 부연 설명한다.)

10. 이 선언의 모든 조항과 원칙은 모든 사람이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는 기본적 인권헌장에 공식적으로 폭넓게 규정되어야 한다. 특정한 목적을 품고 이 선언의 내용을 어떤 식으로든 제한하거나 제거해서는 안 된다. 이 선언은 역사상 출현했던 모든 인권선언의 핵심 사항들을 정리한 것이므로 새로운 시대를 맞아 이러한 인권선언이 세계 인류의 기본법으로 제정되어야 한다.(후략)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겨레, 2016년 11월 15일)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70427.html#csidx886c9597f45e1c484a22876d37c1d9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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