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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갑우] 시민혁명이 약탈당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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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2-07 17:00 조회30,9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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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소적으로 정의한다면, 정치란 사적 이익을 공적 이익으로 포장 또는 승화하는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역으로 공적 이익을 사적 이익으로 만들었다. 적과 동지를 가르는 이분법의 정치에만 몰두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최소한의 포장마저 걷어냈다. 공인 박 대통령이 추구했던 사적 이익이 날것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3차 대국민담화에서 박 대통령은 “이번 일”이란 애매한 말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얼버무렸다. “단 한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다고 말하는 대통령이, 왜 자신의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고 하는지 담화문에서는 그 이유를 알기 어렵다. 대통령직의 최대한 연장 또는 구속을 면하는 안전한 퇴진을 위해, 즉 무엇보다도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해 시간 벌기를 하겠다는 말로 읽힌다. 다시금 사적 이익에 골몰하는 공인 박 대통령이 아닌 사인 박근혜를 보게 된다.


지금 여기서 진행되는 국가권력의 사유화에 저항하는 시민혁명의 와중에 정치에 대한 냉소적 정의를 부르게 된다. 광장에 모인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 정치권력을 장악하지 ‘않으려는’ 또는 ‘못하는’ 우리 시대 혁명의 한 특징 때문이다.


일단, ‘않으려는’에 주목한다. 100만명 이상이 참여하는 비폭력 평화시위는 인류역사에서 상상하기 힘든 사건이다.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정치적 시위가 곧 축제가 되는 전변이 계속되고 있다.


2008년의 촛불집회처럼 전위와 대중, 지식인과 민중, 활동가와 시민의 이분법도 없다. 주최 측이 있다면, 광장의 정치를 준비하는 일꾼들이지 그들이 자유로운 개인들의 대표는 아니다. 그들을 대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표가 있어야 광장이 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광장에 참여하지 못하거나 또는 광장에서 사적 이익의 실현을 고민하는 낡은 보수·진보세력뿐이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네트워크인 ‘반(反)국가적 국가’ ‘시민국가’ 만들기라는 미답의 길을 우리는 걷고 있다.


그러나 ‘못하는’의 한계가 암초처럼 우리의 항해를 방해하고 있다. 시민혁명이 외치는 공인 박 대통령의 퇴진은, 대통령이 스스로 사의를 표명하는 사적 결정이 아니라 제도적 절차를 거쳐야 하고, 따라서 제도정치를 통과해야 한다. 사인 박근혜는 3차 대국민담화에서 볼 수 있듯이 그 지점을 예리하게 인지하고 있다. 선출된 권력인 대통령의 직무를 중단케 하는 결정은 선출된 대표기관인 의회의 탄핵이어야 한다. 명예로운 퇴진은 정치적 수사일 뿐이다. 여야 담합을 통해 대통령의 퇴진을 결정하는 것은 탈법적인 정치적 행위다. 탄핵이 의제로 강제되자 다양한 정치세력들은 사적 이익을 고려하며 정치적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시민혁명이 새 헌정을 창출하려 하지 않고 그 능력도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 계산기만이 작동한다.


박 대통령의 퇴진을 상수로 해서 자신들의 정치권력 장악이란 사적 이익에 유리한 정치일정을 공학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우리는 이 공학의 난무를 목도한다. 각당 내 다기한 세력들의 셈법이 매일매일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물론 나는 이 욕망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으려 한다. 그러나 어떤 세력이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공적 이익으로 잘 포장하고 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시민혁명의 명령을 의회가 거부할 경우, 시민혁명은 의회를 탄핵하는 강을 건널 것임을 그들은 알아야 한다. 박 대통령이 직무정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한·일 군사협력과 같은 사익 추구적 정책을 결정하는, 광장의 시민과 완벽하게 유리되어 작동하는 또 하나의 ‘비선국가’의 작동을 막기 위해서도 대통령 탄핵은 필수적이다.(후략)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정치학

(경향신문, 2016년 12월 4일)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2042101025&code=990308#csidxada37e4c29fe50286a65f60ee1413f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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