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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돈균] 화분-도시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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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5-10-21 22:18 조회30,4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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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교의 건축학과 수업을 참관한 적이 있다. 한 학기를 마무리하면서 학생들이 팀을 이뤄 어떤 동네를 공동 탐구한 결과 발표를 하는 종강 수업이었다. 그날 발표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동네 화분에 대한 탐구였다.

그 발표는 그 동네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화분의 종류와 화분이 놓인 자리, 개수와 배치 방식 등을 일일이 살펴보고 있었다. 발표 사진에는 마당이 있는 집, 옥상이 있는 집, 빌라 베란다, 문 앞, 동네 어귀, 상점, 길가마다 다양한 재질과 모양의 화분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놓여 있었다. 화분마다 피어 있는 꽃들도 다양했고, 작은 열매 식물도 있었으며, 배추 같은 채소를 심은 화분도 있었고, 무성한 잎사귀를 자랑하는 식물도 있었으며, 난처럼 단아한 품새를 뽐내고 있는 정갈한 화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새삼 놀란 것은 화분에 담긴 식물들의 다양함 그 자체라기보다는 큰집에 살거나 작은집에 살거나, 마당 있는 집이거나 옥탑방이거나, 집의 실내거나 실외거나 화분이 없는 집이 거의 없다는 사실, 바로 그것이었다. 의식주와 직접 관련된 생존 필수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모든 집에 빠지지 않고 존재하는 사물이 있다면 무엇일까. `화분`이 바로 그런 사물 중 하나가 아닐까. 그렇다면 조금 과장한다면, `화분 놓을 자리`는 집 내부 공간 배치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건축적 요소의 하나라고까지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여기에는 단서가 붙는다. 농촌 집은 예외라는 사실. 도시에 비해 농촌에서는 화분을 들여놓는 집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새삼스러운 관찰은 현대적 삶의 풍경에 대해 하나의 극적인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것은 아닌가. 화분이 담고 있는 것은 꽃과 식물이지만, 그 대상을 담고 있는 화분은 실은 지극히 도시적인 사물이라는 사실 말이다. 도시인들은 `자연`을 집 안으로 들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그것은 이미 도시적 삶의 보충재로서 또 하나의 변형된 인공물이지 실은 `자연`이 아니다.  (후략)


함돈균 문학평론가

(매일경제, 2015년 10월 16일)


기사 전문 http://news.mk.co.kr/column/view.php?year=2015&no=989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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