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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유엔 인권 70년의 빛과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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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5-10-21 22:15 조회30,8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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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의 유엔헌장은 인권이라는 용어를 본격적으로 사용한 최초의 국제조약이었다. 이번달 24일이면 유엔 창설 70주년을 맞는다. 현대 인권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어떤 성과와 한계가 있는지를 알고 싶으면 유엔 역사를 돌아보는 게 제일 빠르다.


그러나 성공담은 전체 그림의 절반에 불과하다. 유엔 덕분에 인권 유린의 주범인 전쟁과 내전이 줄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다. 유엔을 통한 인권 달성의 꿈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국제연합 따위는 없다. 유엔본부 열개 층이 없어진들 눈곱만큼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존 볼턴의 말이다. “운명공동체인 인류가 오늘의 난국을 헤쳐가려면 유엔을 통해 단결하는 길밖에 없다.” 코피 아난의 말이다. 어느 쪽이 옳은가. 이번달 24일이면 유엔 창설 70주년을 맞는다. 현대 인권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어떤 성과와 한계가 있는지를 알고 싶으면 유엔 역사를 돌아보는 게 제일 빠르다. 인권에 관해 2차대전 뒤 형성된 거대한 전지구적 지식-실행 체계의 큰 부분이 유엔의 지붕 아래에서 만들어졌다. 유엔의 모든 문헌 중 가장 유명한 세계인권선언으로부터 국제인권법 체계, 인권 기준 설정과 프로그램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1945년의 유엔헌장은 인권이라는 용어를 본격적으로 사용한 최초의 국제조약이었다. 전문 첫 단락에서부터 “기본적 인권, 인간의 존엄 및 가치, 남녀 및 대소 각국의 평등권에 대한 신념”이라고 선언하면서, 헌장 전체를 통틀어 인권을 일곱번이나 반복한다. 헌장을 만든 사람들이 특별히 인권친화적이던 것은 아니다. 샌프란시스코회의에 참석한 미국 대표단의 버지니아 길더슬리브라는 여성 위원이 강하게 주장하여 관철한 것이다. 그런데 인권이 이렇게 중요하게 취급되자 각국 정부가 심하게 반발하면서 ‘인권 대 주권’ 논쟁이 벌어졌다. 헌장 2조 7항에 내정불간섭 원칙을 넣기로 하여 겨우 봉합되었다. “이 헌장의 어떠한 규정도 본질상 어떤 국가의 국내 관할권 내의 사항에 간섭할 권한을 국제연합에 부여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모순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 70년간 이 조항만큼 ‘상징적’으로 무효화돼온 조항도 드물다. 현재 국제인권조약 중 이주노동자협약을 제외하고 여타 주요 조약들에 가입해 비준한 나라들이 거의 90퍼센트에 이른다. 각 조약의 이행감시위원회는 가맹국 정부가 의무적으로 제출한 보고서를 심의한다. 개인청원 제도를 둔 조약일 경우 시민이 자국 정부를 유엔에 제소할 수 있다. 유엔인권이사회는 모든 나라를 대상으로 정례 인권검토를 실시한다. 특별보고관이 현지조사를 벌일 수 있고, 유엔총회가 직접 인권문제를 감독하거나 결의안과 보고서를 채택한다. 심각한 상황에서는 안보리의 개입과 제재도 가능하다. 겉으로만 보면 이제 193개 유엔 회원국이 릴리퍼트 소인국에서 온몸이 묶인 걸리버 같은 신세가 된 듯하다. 여성 권리와 젠더 평등이 이 정도나마 진전한 것은 유엔의 공이 크다. 종전 뒤 신생국들의 자결권 확보 과정에서도 유엔은 큰 기여를 했다. 처음 51개국으로 시작하여 거의 네배 가까이 회원국이 늘어난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그러나 성공담은 전체 그림의 절반에 불과하다. 유엔 덕분에 인권 유린의 주범인 전쟁과 내전이 줄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다. 유엔 창설 이래 전세계에서 크고 작은 전쟁이 250개쯤 발생해 5천만명 이상이 죽었다. 냉전 당시 유엔의 중요 행위자이던 미국과 소련이 후원한 지역적 무력갈등이 얼마나 많았는가. 헌장의 주요 목표인 집단안보 체제는 아직도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콩고, 캄보디아, 옛 유고, 르완다, 리비아, 시리아에서 벌어진 제노사이드와 대량학살에서 유엔은 대체로 무기력했다. 국제형사재판소에 큰 기대를 건 사람들에게 아직까지 무릎을 치게 만드는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오늘날 인권 보호의 백미로 꼽히는 국제인권법 시스템은 어떤가. 과거 국제인권운동은 각국이 국제인권조약에 가입할수록, 그리고 국가들을 국제법 메커니즘 속에 묶어둘수록 인권이 더 잘 개선될 것이라고 가정했다. 인권운동에서 국제인권조약 비준 캠페인은 핵심적인 활동이었다. 그러나 국제인권법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인권을 개선했는지를 놓고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인권조약 가입과 실질적 준수 사이에 상관관계 혹은 인과관계가 성립하는지에 관해 방대한 실증적 연구가 축적되었다.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기대한 바에는 못 미친다’는 잠정적 결론이 내려져 있다. 역설적이긴 하나 국제인권법이 발전할수록 인권 개선의 구체적인 효과보다 인권의 규범적인 영향이 더 커지는 것 같다. 인권문제를 법과 제도로 해결하려는 노력도 계속해야겠지만, 그에 앞서 인권의 바탕을 이루는 정치, 경제, 이념, 사회구조, 대중심리, 국제관계, 민주주의 수준 등의 ‘펀더멘털’이 훨씬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후략)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겨레신문, 2015년 10월 13일)


기사 전문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1263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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