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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환] 연평도, 평화의 등대여야 할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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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5-07-31 22:57 조회32,4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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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느 연구팀의 사회조사 일정에 얹혀 연평도를 찾아갔다. 1박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다음날 짙은 해무로 배가 뜨지 못해 하루 더 보고 배울 기회가 있었다. 대연평도와 소연평도는 주민이 2000명도 안되는 작은 섬이다. 2010년의 포격사건 후 새로 지은 학교명은 ‘연평초중고등학교’이며, 학생이 학년별로 10여명에 불과하다. 서해 북쪽 바다에 점점이 뜬 섬 형제들 중 하나가 분명하니 분단의 가혹함이 실감난다.

연평도 뱃길은 안보상의 이유로 ㄴ자형이라 직선 항로보다 30분 이상 더 걸린다. 2시간 반의 뱃길에 편도요금만 5만5300원이다. 온라인 예약을 하면 반값이라는 말을 뒤늦게 듣고 검색해봤지만 여객선터미널에 전화 문의를 해야 겨우 관련 정보를 알 수 있다. 각종 지원에도 불구하고 적자 노선 티가 물씬 나며, 외부인의 방문이나 관광에 불편함이 많다. 아직 힘든 얘기지만, 연평도를 거쳐 백령도를 왕복하는 직선 노선을 열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훨씬 큰 백령도에 정부 지원이 집중된다는 주민의 불만도 많지만, 내가 만난 연평도 분들은 하나같이 생기 있고 밝았다. 연평도에서의 사흘 동안 두 가지를 거듭 확인했다. 첫째는 땀 흘려 일하는 민초들이 우리의 삶을 지켜왔다는 사실이고, 둘째는 비전 있고 투명한 정치가 서해를 평화의 바다로 만들리라는 진실이다.

연평도 하면 누구나 꽃게와 조기를 떠올린다. 1970년대 이후 생태계 변화로 옛이야기가 되고 말았지만, 1960년대 말까지 조기잡이철에는 이 작은 섬에 3000~4000척의 어선이 몰려들었다. 한창 때는 동네 개도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다. 그러나 평범한 어민에게는 그때나 지금이나 고된 노동과 위험한 삶의 연속이다. 한 예로, 식민지 시대에 세워진 ‘조난어업자 위령비’는 1934년의 태풍에 204명의 사상자가 난 비극을 기리고 있다. 이곳 어민들이 분단의 고통을 감당하며 어제는 제사상에 조기를 올리게 해줬고 오늘은 꽃게를 맛볼 수 있게 한다.

연평도 선착장 가까이에 영화 <연평해전>에 나온 고속정 기지가 떠 있다. <연평해전>이 최고의 작품은 아니지만 그저 수구적인 내용만도 아님은 수긍할 수 있다. 감독은 ‘안산’ ‘천안함’ 등 울림이 큰 단어를 곳곳에 심어놓았고, 특권이나 특혜와 무관한 우리 아들들이 바다를 지키다 귀한 목숨을 잃었음을 강조했다. 특히 교전 84일 만에 숨진 의무병 박동혁 병장의 몸에서 총 3㎏이 넘는 100여개의 파편이 나왔다는 (영화 밖의) 사실은 잊기 힘들다. 지상 전투에서 유탄과 파편은 나무나 흙에 박히지만 해상 교전에서는 강철 갑판에 튕겨 사정없이 장병들의 살을 파고드는 것이다.
(후략)


김명환 서울대교수, 영문학
(경향신문, 2015년 7월 31일)

기사 전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731213253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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