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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엽] '짝'과 국정원의 평행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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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4-03-12 14:41 조회16,7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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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비에스>(SBS) <짝> 출연자가 촬영 중 자살했다. 자살한 이가 남긴 문자메시지, 지인과 부모의 증언이 엇갈려 진상이 제대로 밝혀질지 의문이다. 에스비에스 쪽이나 방송 관계자들은 자살자의 개인적 특성을 더 부각시키려 할 텐데, 그런 근거가 박약한 논란에 빠지기보다 프로그램의 특성을 통해 우리 사회의 분위기와 상황을 살펴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리얼버라이어티쇼’들이다. <무한도전> <아빠! 어디가?> <1박2일> <정글의 법칙> <진짜 사나이> 등 다 열거하기도 어려울 만큼 여러 개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런 장르가 성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보기에 그 이유는 ‘리얼버라이어티쇼’라는 이름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리얼하고 버라이어티해서이다.

먼저 ‘리얼’. 영화와 드라마는 물론이고 우리의 삶 전반에서 연출과 상연이 지배성을 띠고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리얼’에 대한 갈망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런 갈망의 한 원인인 텔레비전이 도리어 리얼을 보여주겠다고 나선다. 이런 경향은 이미 꽤 일반적이다. 리얼버라이어티쇼뿐 아니라, 토크쇼(<힐링 캠프>)나 오디션 프로그램(<슈스케>)에도 나타난다. 모두 설정된 상황 속에서 삐져나오는 출연자의 ‘생얼’과 ‘인간성’을 드러내려 하고 시청자도 그것을 읽어내려 한다.

다음으로 ‘버라이어티’. 막상 직면하면 부담스럽지만 다음 순간 지루해지는 것이 리얼이다. 타자의 눈물을 견디긴 어렵지만 우리는 간사하게도 다음 순간 절규마저 원하게 된다. 그래서 제작자 편에서는 리얼 자체가 아니라 스토리 속에 용해되며 자체 이력을 가지고 버라이어티하게 전개되는 리얼이 요구된다.

이렇게 되면 추가적 이점도 있다. 이런 프로그램은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싸다. 또한 후속 아이템 선정이 자유롭고 유연하다. 주요 출연자가 여럿이라서 한두 명의 부상, 질병, 혹은 스케줄이 같은 것이 큰 장애가 아니게 된다. 포맷이 정착되고 일정한 시청률을 얻어내면 장기 제작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리얼버라이어티쇼’가 제작되면, 출연자들은 극히 어려운 연기를 해야 하는데, 그것이 어려운 이유는 대본이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연기가 연기 아닌 것으로 보여야 하고 실제로 연기가 아닌 면이 있는 연기를 해야 하며, 그 연기 아닌 부분이 신중하게 삽입되어야 할 뿐 아니라 매력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설령 매력적이지 못할 때도 최소한 혐오스럽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어려운 연기이기 때문에 직업적 연예인이나 감당할 수 있지만, 직업적 연예인이면 그 때문에 ‘리얼’의 신빙성이 약해진다. 이런 문제 때문에 신빙성을 높이려 연예인이 아들과 함께 출연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이보다 신빙성을 높이는 더 쉬운 길은 역할을 일반인에게 맡기는 것인데, 그런 선상에 <짝> 같은 프로그램이 있다. 확실히 <짝>은 이런 프로그램들 진화의 끝단에 있으며 일반인에게 과부하가 걸린 연기를 요구하기 때문에 자살마저 유발할 수 있는 위험한 지대를 어슬렁거리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폭주가 현실에서도 대칭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이야말로 ‘진짜 사나이’ 혹은 ‘병만족’이 벌인 ‘무한도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마침내 국정원의 리얼버라이어티쇼는 <짝>처럼 ‘리얼’의 신빙성을 높이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을 벌이고 일반인(조선족 김씨)을 끼워넣는 데까지 나아갔다. 그리고 <짝>과 마찬가지로 자살 사건에 이른 것이다. 다른 점은 <짝>은 폐지되었지만 국정원은 폐지되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 2014.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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