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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돈균] 스펀지-중심을 지닌 수용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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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11-08 16:32 조회17,64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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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세차장에서 세차를 했다. 물기를 먹은 차가 오래간만에 윤이 났다. 그런데 낭패다. 물기를 닦으려고 보니 세차용 물걸레를 가져오지 않았던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세차장 주인에게 물걸레를 사겠다고 했더니, 걸레 대용 세차용 스펀지를 써보지 않겠느냐고 한다.

과연 스펀지 효율성은 높았다. 표면에 묻은 물기를 몇 번이나 닦고 걸레를 짜내야 하는 번거로움 없이 단번에 흥건한 물기를 깨끗이 닦아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스펀지는 물기를 닦아낸 게 아니라 자신의 작은 사각형 몸체 내부로 거의 완벽하게 물기를 ’흡수’한 것이다.

스펀지의 특징은 어떤 액체든 빨아들이는 강력한 흡수력과 아주 쉽게 다시 액체를 쏟아내는 배출력에 있다. 액체를 흡수한 상태인 스펀지는 고체의 외형을 띠고 있지만 실은 ’액체 덩어리’에 가깝다.

스펀지는 단지 ’물걸레’ 대용만은 아니다. 일상에서 스펀지는 침대나 소파ㆍ방석 같은 쿠션을 이용한 물건의 재료로 널리 이용된다. 운동화 밑창에 들어가는 소재 역시 일종의 스펀지다. 스펀지는 액체만 잘 빨아들이고 배출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가해지는 압력도 잘 흡수했다가 배출한다.

이 사물의 가장 놀라운 점은 외부 물질과 힘을 최대한 온전히 수용하면서도 제 형체를 상하게 하지 않으며 결국은 본래 자기 형태로 되돌아온다(유지한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스펀지의 수용력은 ’중심’을 지닌 수용력이다.

 

중국 춘추시대 공자는 군자(君子)라는 인간형을 소인(小人)과 다음과 같은 관점으로 비교한 적이 있다. 군자는 주위를 살펴 환경과 창조적 협력 관계를 만들면서도 자기 중심을 보존하고 소신을 유지한다(和而不同). 반면 소인은 주위와 제대로 된 창조적 협력도 못하면서 오히려 주위에 동화한다. 결국 소인은 주위에 흡수되어 소신도 자기 중심도 잃어버린다(同而不和). 그런 점에서 이 현대적인 인공 사물에서 인간에 대한 오랜 지혜를 읽는 일이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함돈균 문학평론가]
(매일경제, 2013.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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