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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준필] 계찰의 오나라, 오나라의 계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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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10-23 16:14 조회17,1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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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뒤적이다 보면 가끔씩 묘한 마음이 든다. 왕들의 계보가 계속되는 중에 그 엄청난 권력을 자발적으로 거부한 존재가 있기를 바라곤 한다. 왕이 될 자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모든 자질을 갖추었음에도 스스로 그 자리를 거절한 사람. 권력욕에 지배되지 않는 권력자가 있다면 그런 사람이 ‘우리’의 지도자이기를 바래서일까. 오나라의 계찰이 잘 잊히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둘째 형 여제(餘祭)의 재위 4년에 계찰은 중원을 순방하는 사신길에 오른다. 계찰의 행로와 관련해서 역사서에는 세 가지 에피소드가 기록되어 있다. 그 첫째는 노(魯)나라에서 음악을 듣고 품평하는 장면이다. 흔히 ‘계찰관악(季札觀樂)’이라 불린다. 『시경(詩經)』에 실린 다양한 지역의 노래들을 듣고는 경이롭게도 그 노래에 담긴 의미를 다 알아 차린다. 저 변방 오나라 출신이 중원문화의 오랜 내력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다음으로 여러 제후국을 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장면이 이어진다. 제(齊)나라에서는 안영(晏嬰)을 만나 안영에게 닥칠 미래의 재앙을 일러주어 미리 대비케 한다. 정(鄭)나라에서는 자산(子産)에게, 위(衛)나라로 가서는 손문자(孫文子)에게 미래에 대처하는 방법을 일깨운다. 그들 모두 계찰의 말을 믿고 따랐고, 화를 피하거나 큰 성취를 거두었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계찰의 품성을 보여준다. 처음 사신길에 오르면서 서(徐)나라 군주를 만나게 되는데, 그 임금이 계찰이 지닌 보검을 갖고 싶어 했다. 사신으로서 꼭 지녀야 하는 것이라 계찰은 줄 수 없었다. 사신 일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다시 서나라에 들렀더니 그 임금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계찰은 무덤을 찾아 나무에다 그 검을 걸어두고 떠난다.


노래를 들으며 품평하는 장면에서는 ‘지금-현재’를 있게 한 역사를 평가하는 계찰의 감식이 있고, 여러 나라 인재들에게 충고하는 장면에서는 ‘내일-미래’를 내다보는 계찰의 지혜가 있다. 또 죽은 이에게 보검을 건네는 장면에서는 계찰의 신의가 드러난다. 이런 계찰이었으니, 사행 이후 중원의 여러 나라가 계찰을 잊지 못하였을 것이다.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오나라의 사신 자격으로 중원을 다니는 계찰에게는, 오나라의 국익과 천하의 안녕(安寧) 중 무엇이 우선이었을까. 나와 가까운 이들의 행복은 다른 모든 이들이 함께 행복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한가 아니면 가까운 이들의 행복을 먼저 추구해야 하는가. 그 답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사행길의 계찰은 고국 오나라가 하나의 길만을 선택하길 바라지는 않았다. 이것이 ‘계찰의 오나라’가 지금까지 기억되는 이유일 것이다.

류준필(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HK교수)
(건설경제신문, 2013.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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