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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준필] 신공무신(申公巫臣), 수몽(壽夢)에게 군대를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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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10-23 16:11 조회17,0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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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太伯)의 아름다운 전설이 전승되는 나라였지만, 중원에서 보자면 오(吳)나라는 여전히 오랑캐의 풍속을 좇는 변방의 소국이었다. 19대 왕 수몽(壽夢)이 오(吳)의 왕위에 오른 지 2년, 북쪽 중원의 진(晉)나라로부터 사신(使臣) 일행이 찾아온다. 사신의 이름은 신공 무신(申公巫臣). 전차(戰車) 30대와 군사들이 동행했다.

무신은 전차를 모는 기술과 진법 등 각종 군사 기술을 오나라에 전수한다. 오나라를 떠나며 무신은 전차 15대와 군사를 남겨둔다. 거기다 오나라의 외교 활동을 대신하는 역할을 부여하며, 무신은 자기 아들 호용(狐庸)도 오나라에 머물도록 한다. 전쟁을 수행하는 데에 꼭 필요한 군사력과 외교력을 갖추어 놓은 것이다.

무신은 원래 초(楚)나라의 대부였다가 진(晉)나라로 망명해서 지내던 인물이다. 초나라의 자반(子反)과 자중(子重)이라는 두 인물에게 깊은 원한을 품고 있었다. 무신의 친척들을 죽이고 그 땅과 재산을 뺏은 장본인들이었다. 그들에게 보복할 수 있는 길을 고민하다가 무신은 오나라를 떠올렸다. 물론 아직까지 오나라가 군대를 끌고 중원에 나온 적은 없다. 그렇지만 만약 오나라의 군사력이 강해지면 초나라가 가장 큰 고통을 겪게 되리라 판단했다.


무신이 오나라 왕 수몽에게 원한 것은 단 하나였다. 오나라가 끊임없이 초(楚)나라를 괴롭혀달라는 것이었다. 수몽은 무신의 뜻에 흔쾌히 동의했다. 변방의 오나라가 드디어 중원에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새롭게 양성된 군대의 위력은 대단했다. 첫 출병 이후 오나라는 초나라를 거듭 공격했고 수몽에게는 승전보가 이어졌다.


오나라의 등장으로 가장 바빠진 이들이 초나라의 자반과 자중이었다. 오래 전에 자반과 자중은 자신들에게 꼭 복수하겠노라는 무신의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거기엔 보복의 방법까지 적혀 있었다. ‘내 반드시 그대들이 분명(奔命)에 지쳐 죽게 하리라!’(余必使爾罷於奔命以死)

‘분명’이란 임금의 명을 받아 급히 돌아다니면서 변경의 전란을 처리한다는 말이다. 오나라의 등장으로 자반과 자중은 1년에 7번이나 ‘분명’하였다. 그들은 전쟁터로 달려가거나 혹은 이웃나라에 군사를 청하러 다녀야 했다. 그러니, 자반과 자중에게는 편히 앉아 빼앗아 모아놓은 재산을 쓸 만한 여유가 없었다. 결국 자반은 진나라, 자중은 오나라와의 전쟁터에서 죽고 만다.



류준필(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HK교수)
(건설경제신문, 2013.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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