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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돈균] 트랜치코트 - 가을을 부르는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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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10-16 14:10 조회16,4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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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어느새 가로수 잎사귀는 노란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시의 가을은 자연의 움직임으로만 찾아오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가을남자`가 거리를 걷고 있어야 한다.


`트렌치코트`는 단 하나의 아이템으로 `가을남자` `가을여자`로 변화시키는 마술을 불러일으키는 사물이다. 트렌치코트에도 종의 다양성은 있다. 대체로 색깔이 다양성을 만드는데, `버버리코트`의 대명사가 된 베이지톤부터 블랙과 네이비 등이 기본이며, 여자는 빨강이나 노랑 같은 컬러감 있는 것들도 있다. 버튼 크기나 개수나 길이감 등으로 차이를 만들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트렌치코트는 다른 종류의 옷에 비해 상대적으로 `폼(form)`의 통일성이 강조되는 옷이다. 어떻게 변주를 하든지, 우리는 거리에서 이 옷의 주인공이 지나가면 `가을 옷`을 입었음을 `인식`한다.


`트렌치(trench)`가 전쟁터의 `참호`를 뜻하는 단어라는 것은, 이 사물의 기본 형태가 방수ㆍ방한용 군복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 사물을 걸친 사람에게서 언뜻 영화 속 영국군이나 독일군 장교를 떠올리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목할 점은 다양한 트렌치코트들이 불러일으키는 일관된 `가을` 환기력이다. 하지만 이 사물의 `우수(憂愁)`에는 처량함이나 자유분방한 낭만성과는 구별되는 프로페셔널 이미지와 도시적 절제력이 전제되어 있다.


이것은 트렌치코트가 도시적 클래식(classic)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클래식`은 `원형` 또는 `완성형 폼`이라는 뜻이다. 세상 모든 삼각형 모양 사물이 `내각의 합은 180도`라는 삼각형 공리에 기초해 있듯이, 클래식 아이템은 변주에도 불구하고 본래 폼에서 흐트러지지 않는다.


차이와 변주는 무질서가 아니라, 질서의 또 다른 자식들이다.


잘 알려진 고대 서양의 한 현자는 경험 세계 속 삼각형이 아니라 삼각형을 삼각형답게 만드는 근거로서 `원형(idea)`을 발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원형은 육체의 눈이 아니라 지성의 눈으로만 찾을 수 있다.

함돈균 문학평론가
(매일경제, 2013.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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