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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 12명을 죽인 청춘남녀, 당신도 그 현장에 있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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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2-25 15:47 조회17,0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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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books] 퍼트리샤 스테인호프의 <적군파>

가두시위대를 넘어선 혁명군의 조직, 산속에서의 군사훈련과 공동생활, 훈련과 생활에서 과격화되어만 가던 이데올로기, 총괄이란 이름으로 내부 조직원의 정신과 태도를 개조하려는 시도, 뒤이은 '동료에 의한 동료에 대한' 숙청과 살인, 철저한 공산주의화를 성취하지 못한 탓에서 비롯된 '패배사(敗北死)'라는 동료 살인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정당화. 1972년 3월 공개된 이 일들에 일본이 발칵 뒤집어졌다.

이렇게 귀착된 이른바 '연합적군파' 사건은 과연 병리 현상이었을까? 아마도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무리 발랄하고 말랑말랑한 사고를 하는 사람이더라도 이 사태의 연쇄를 자신의 규범과 논리 안에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 사태를 병리적이라고 판단하는 순간과 그 이후에 이 사태를 '병리'라는 영역으로 가두는 사고나 담론 사이에는 심연이 가로놓여 있다. 어떤 사태가 병리적이라 지각되는 것은 정상성과 비정성상의 경계가 가시화되어 현현하는 일이다. 병리적이라는 판단은 정상적인 것의 세세한 목록이 이미 갖추어져 있어 거기에 비추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사태를 병리적이라고 판단하는 순간 병리적인 것과 정상적인 것의 경계는 결정된다. 즉 병리적인 것과 정상적인 것의 구분은 판단과 결정의 연쇄로 이뤄지는 정치적이고 권력적인 게임의 장에서 벌어지는 셈이다.

그런데 이 게임의 장을 문제화하지 않고 병리적이라는 판단을 자연화할 때 위에서 말한 숙청과 살인은 그저 과거의 기이한 사건으로 기억 저편에 사라지게 된다. 즉 그 사태의 현재성을 문제화할 수 없게 되는 셈이다. 따라서 중요한 일은 '연합적군파'가 병리적이라는 판단을 한 그 순간으로 시계추를 되돌려 사고를 개시하는 일이다.


퍼트리샤 스테인호프의 <적군파 : 내부폭력의 사회심리학>(이하 '적군파')(임정은 옮김, 교양인 펴냄)은 이런 태도에서 서술된 적군파 및 연합적군파 사건에 대한 기록이자 사회학적 분석이다. 저자는 일본을 필드로 하는 사회학자이며, 1960년대 미국에서 대학과 대학원 생활을 보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급진 운동에 관계했다. 스테인호프는 패전 전 일본 공산당 활동가의 '전향'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사람의 정치적 신념을 변경하는 전향 과정이 어떤 사회적 동역학 아래에서 이뤄지는지가 그녀의 연구 주제였다.

적군파와 연합적군파 사건에 대한 접근도 기본적으로 동일한 시각에서 이뤄진다. 전향이 한 개인의 심리적 취약함이나 당국의 강압적인 물리력 행사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이듯, 적군파와 연합적군파의 저 자기파괴적 사태도 결코 병리적 현상으로 가두어버릴 수 없다는 것이 스테인호프의 관점인 셈이다.


▲ <적군파(퍼트리샤 스테인호프 지음, 임정은 옮김, 교양인 펴냄). ⓒ교양인


그런 의미에서 스테인호프의 <적군파>는 적군파와 연합적군파의 현재적 의미를 묻는 저작이며, 그녀에게 그 현재적 의미란 정치적 행위, 신념, 대립으로 구성되는 사회적 다이내믹스라고 할 수 있다. 즉 적군파와 연합적군파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그들과 그들이 일으킨 일련의 사태를 병리적이라는 틀로 가두는 사고 회로와 담론 기술을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 그녀의 의도인 것이다.

여기서 기초적인 사실 관계를 확인해두자. 물론 정파마다 타협 불가능한 강령과 전술 차이가 있었지만, 1960년대 이래 반제국주의와 반자본주의 공산 혁명을 꿈꾸던 일본의 급진 좌파(이른바 신좌파) 운동은 1972년의 이른바 '연합적군 사건'으로 몰락의 길을 걷는다. 화염병을 버리고 총을 택함으로써 무장 투쟁의 질적 변화를 꾀했던 1969년 이래의 노선 아래, 적군파와 혁명좌파(신좌파 계열의 정파 중 하나)는 서로의 강령 차이를 뛰어넘어 총이라는 매개를 통해 상호 이익을 추구하며 '연합적군'이란 단체를 결성한다. 이들은 도쿄 인근의 간토 지역 내 산악지대를 옮겨 다니면서 군사훈련을 목적으로 한 공동생활을 영위했다.

서두에서 말한 일련의 사태가 이어졌고, 그 뒤 경찰의 추격을 받아 이 산 저 산으로 기지를 옮기며 도피하다가 1972년 2월, 가루이자와의 아사마 산장에서 격렬한 총격전 끝에(농성 중이던 연합적군파만이 발포했다) 경찰 기동대의 진압으로 '혁명'은 막을 내린다.

당초 아사마 산장 총격전은 일본 내 적군파의 1차 와해로 인해 중동에 거점을 마련하던 '일본 적군파' 멤버들과 많은 신좌파들에게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기껏해야 화염병을 사용할 뿐인 가두시위를 뛰어 넘어 산악 게릴라전을 감행한 것은 가열한 무장투쟁을 지향하던 적군파들에게는 선진적이고 전투적인 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사마 산장 사건으로 체포된 이들이 그 이전의 공동생활 과정에서 숙청과 살인이 있었음을 자백하면서 사태는 일변한다.

정부 당국은 물론이고 사회 전반에서 이들이 저지른 사태에 경악했으며, 뒤이은 도덕적이고 정신의학적인 언설이 단죄의 언설을 쏟아내게 된다. 이런 도덕과 정신의학의 담론은 법률 판단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연합적군파의 리더 중 하나인 나가타 히로코에 대한 판결문에서 담당 판사는 "자기 현시욕이 왕성하고 감정적이며 공격적인 성격과 더불어 강한 시기심과 질투심을 가진 데다 여성 특유의 집요함, 못된 심성, 냉혹한 가학 취미까지 있어 그 자질에 다수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전혀 '법률적이지 못한' 성차별적이고 정신의학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사태에 대한 단죄와 담론과 기억은 개인의 심리적 성향에 사태의 병리성을 환원시키고, 병리적인 것의 틀 내에 사태를 가두어버렸다.

하지만 저자의 판단은 다르다. 그녀는 이 사태의 병리성을 어디까지나 사회적 힘의 산물로 간주한다. 즉 이 사태로 인해 모습을 드러낸 정상과 병리의 경계를 가르는 게임의 장을 사회적 힘이라는 구조로 포착하려 한 것이다.

"연합적군 숙청 사건을 보면 보편적 집단에서 집단이 스스로 멈출 수 없는 갈등이 도대체 왜 일어났는지 알 수 있다. 이 사건은 그런 집단적 갈등의 동기로서, 또 도덕적 정당화로서 이데올로기가 맡는 위험한 역할을 드러낸다. 갈등 과정에서 새로운 시스템을 조금씩 도입하다 보면 결국 무시무시한 결과가 찾아온다. 연합적군 숙청 사건은 그런 결과를 예측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이것이 저자가 연합적군파 사건에서 추출해낸 사회학적 성찰이다. 스테인호프는 이 사건을 단순한 병리현상으로 치부하기보다는, '보편적 집단'에서 일어나는 갈등이 어떻게 병리현상을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소환한 것이며, 이는 정상 집단이 병리적 사태를 발생시키는 메커니즘을 보여줌으로써 정상과 병리 사이의 게임의 장을 분석한 작업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이 그런 딱딱한 사회학적 연구를 담아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서두에서 저자가 밝히고 있듯 일본 적군파가 민간인을 사살한 1972년 5월의 텔아비브 공항 테러 사건을 TV를 통해 보고 바로 일본을 경유하여 이스라엘로 날아갔듯이, 그녀의 사회학적 분석을 지탱하는 것은 이동하는 발과 사람을 만나는 마음이다. 이 책이 이스라엘과 일본에서 이뤄진 옥중의 적군파 및 연합적군파 활동가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까닭이다.

그 발과 마음이 없었다면 사회학적 분석은 불가능했을 터인데, 그럼에도 그녀의 서술은 매우 담담하다. 열정과 냉정을 오가는 저자의 손길이야말로 적군파와 연합적군파를 기억의 저편으로 지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 집단이라면 모두 내포하고 있는 병리로의 길을 숙고하고 성찰하는 길을 제시해주는 것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급진 운동뿐만이 아니라 갈수록 인간 집단이 황폐해져 병리적 현상이 넘쳐나는 한국 사회의 전반적 상황에도 큰 시사를 준다. 아무쪼록 진보나 운동이라는 틀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 집단의 보편적 경향에 대한 성찰로 이 책이 읽히길 기대해본다.


김항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HK교수
(프레시안, 2013.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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