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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혁] 진정 '상식과 원칙'이 통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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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02-18 12:56 조회17,6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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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나라를 만들 것을 약속하며 대통령에 당선됐다. 박 후보는 ‘상식과 원칙’이라는 노선을 기반으로 하여 이른바 ‘실용주의’를 내세운 이명박 대통령과 자신을 차별화할 수 있었고, 지난 15년 이상 쌓아온 신뢰의 이미지로 많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마치 박 당선인이 표방한 ‘상식과 원칙’이 현재 우리 사회가 얼마나 필요로 하는 가치인지 증명이라도 하듯 지난 대선 이후 두 달 동안 우리는 상식과 원칙에서 벗어난 많은 일들을 보아 왔다. 이제 박근혜 정부의 공식 출범을 앞두고 상식과 원칙이 확립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몰상식과 무원칙의 폐해를 몇 가지 짚어보고자 한다.

 


지난 1월17일 감사원은 총 22조원 이상을 투자한 4대강 사업 감사결과를 발표했다.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감사결과 보고서는, 보도자료를 그대로 인용하자면, “설계 부실로 총 16개 보 중 11개 보의 내구성이 부족하고, 불합리한 수질관리로 수질 악화가 우려되는 한편, 비효율적인 준설계획으로 향후 과다한 유지관리비용 소요 예상”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운하 사업이 여론의 반대에 부딪히자 이를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재포장하고 국가재정법을 개정하여 예비타당성 조사를 회피한 후, 국회 차원의 검증도 최소화하기 위해 수자원공사의 부채를 늘리는 형태로 추진된 사업답게 상식과 원칙에서 벗어난 일들이 자행된 것이다. 감사결과가 발표되자 현 정부는 마치 감사원을 감사하겠다는 듯 나섰으나, 이는 헌법기관인 감사원의 존재 이유를 망각한 어이없는 처사이다. 새 정부는 4대강 사업과 관련하여 이미 불거진 입찰 비리 의혹 등에 대한 전방위 조사를 실시하는 한편, 향후 유지관리비용 등을 감안하여 보 철거를 포함한 근본적인 대안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1월29일에는 박근혜 당선인 측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임기말 특별사면이 단행됐다. 이 대통령은 “사면권을 남용하지 않을 것이고 재임 중 발생한 권력형 비리에 대한 사면은 하지 않겠다고 한 원칙에 입각해 실시했다”고 강변했지만, 이번 특별사면이 상식과 원칙에 맞춰 이뤄졌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재임 중 발생한 권력형 비리는 재임 중 수사하는 데 원천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임기 종료 후 제대로 수사하여 밝혀내야 할 일이지 재임 중 사면 여부를 논할 사안이 아니다.

하지만 대선 이후 상식과 원칙에서 벗어나 일어난 많은 일들 중 압권은 역시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지명 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동흡 후보자의 경우 여직원에게 법복을 입히도록 했고 승용차 홀짝제를 피하기 위해 관용차를 두 대 요구했다는 등 깨알 같은 내부 제보가 시사하는 바와 같이 조직 내에서 신망이 두터운 인사라고 보기 어렵다. 더구나 이미 참여연대에서 고발한 것처럼 특정업무경비 유용 의혹은 인사청문회를 떠나 법원에서 규명되어야 할 사안이다. 이처럼 결격 사유가 있다면 스스로 사퇴하는 것이 도리일 텐데 이 후보자는 헌법재판소가 어떻게 되든 아랑곳하지 않고 한 달 이상을 버텼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신망과 역량이 부족한 인사가 기관의 장으로 부임하면 그 기관은 외부로부터 조롱의 대상이 된다. 내부적으로는 기관장의 비위를 맞춰가며 자기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의 입지는 확대되는 반면, 기관을 위해 고언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은 고초를 겪게 된다. 기관에 대한 애정이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저런 사람이 우리 기관의 장으로 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그래도 우리 기관의 장이니까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해야 하지 않는가”라는 생각 사이를 오가며 괴로워하게 된다.

이동흡 후보자의 경우 결국 41일 만에 자진사퇴하기는 했지만 이를 일회적인 사례로 취급해서는 안된다. 중요한 것은 박근혜 당선인이 천명한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기관의 장이 될 만한 사람을 기관의 장으로 임명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상식과 원칙부터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임원혁 KDI 글로벌경제연구실장
(경향신문, 2013.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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