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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욱] [사유와 성찰]정치개혁에도 순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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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06-05 14:43 조회28,3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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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앞두고 개헌론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새누리당에선 이재오·정몽준 의원, 선진통일당에선 이인제 대표, 그리고 민주당에선 김두관 경남도지사가 개헌론을 주도하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과 방안은 물론 서로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권력분산을 핵심으로 하는 개헌론을 제기하고 있고, 개헌공약이 이번 대선의 주요 이슈로 떠오르길 기대하고 있다.

혹자는 이 같은 개헌론을 정략적 발상에 불과하다고 폄하하지만, 나는 이제 우리 시민들이 이 개헌론에 귀 기울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참에 진지하게 고민해보자. ‘승자독식-패자전몰’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의 현행 민주주의 제도의 부작용과 폐해, 그리고 그 고비용과 저효율성에 대해서는 보수-진보 구분 없이 누구나 인정하는 바가 아니던가. 언제까지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 주기적으로 벌어지는 이른바 ‘대권 몰아주기 정치도박’에 우리 시민들의 삶을 맡겨야 하는가. 사회가 이 정도로 발전하고 다양화되었으면 우리도 이제 시민 누구에게나 동등하고 효과적인 정치참여가 보장되는 권력분점형 합의제 민주주의를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 대통령 개인보다는 정당들이 정치의 중심에 서는 분권형 대통령제나 책임내각제가 도입될 시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 조건 없이 개헌론에 찬성하자는 것은 아니다. 짚어봐야 할 핵심 변수는 정당체제다. 주지하듯, 한국의 정당체제는 여전히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에서 독과점적 지위를 누리는 전근대적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인물과 지역이 중심이 되는 정당정치다보니 사회의 다양한 이익과 선호는 정책결정과정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과소대표와 강자들의 과다대표 현상은 매우 심각한 지경이다. 이러한 정당체제를 그대로 둔 채 권력구조만 책임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 등으로 전환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개악일 뿐이다. 명망가나 소지역 중심의 지역할거주의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고, 지역정당들 혹은 그 보스들 간의 정권 나눠먹기 양상이 만연되면서 권력구조는 결국 정치엘리트들 간의 과두체제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러한 체제에서는 권력분점형 합의제 민주주의의 장점인 타협과 합의의 정치가 정책과 이념 중심이 아니라 특정 인물이나 지역이익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까닭에 사회경제적 약자집단들의 과소대표 현상이 해소될 여지가 별로 없다. 정당 및 정치가들은 정책기조나 이념에 근거한 신념보다는 정치적 보스의 사적 필요성이나 지역 이기주의적 요구에 타협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시민들이 개헌의 전제 조건으로써 선거제도의 개혁을 먼저 요구해야할 이유이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정당체제는 상당 부분 선거제도에 의해 결정된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강화될수록 정당체제는 인물과 지역보다는 정책과 이념 중심의 것으로 발전한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정치개혁은 ‘선(先)선거제도 개혁, 후(後)권력구조 개편’의 순서에 따라 추진돼야 한다. 다만, 분권형 권력구조로의 전환을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로의 개혁과 한 패키지로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수용할 만한 개혁방안이 될 것이다.

진정 ‘제대로 된’ 합의제 민주주의로의 발전을 원한다면 각 당과 대선주자들은 신뢰할 수 있는 비례대표제 개혁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것이 “3년 반짜리 대통령” 공약(필자의 본지 3월10일자 칼럼)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이 점에선 사실 야권의 대선주자들이 더 유리한 입지를 점하고 있다.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은 총선 전 이미 독일식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포함한 선거제도의 혁신을 야권연대의 공동 공약으로 채택했기 때문이다. 야권의 대선주자가 이 PR(비례대표제)연대를 잘 살려나간다면 그는 진보개혁진영은 물론 정치개혁을 바라는 일반시민들의 지지까지도 극대화해낼 수 있다. 그렇다면 작금의 통합진보당 사태를 단순한 당내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로 보아 그것의 해결을 위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도 있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경향신문, 2012.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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