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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개성은 '글로벌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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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2-06-01 13:48 조회35,4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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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건에 후속한 5·24 조치가 시행된 지 만 2년이 지났다. 정부는 2010년 천안함 침몰을 북한의 공격에 의한 것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교역과 우리 국민의 방북을 불허하고 북한 선박의 우리 측 수역 항해를 금지하는 내용의 5·24 조치를 발표했다. 이후 남북관계는 단절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5·24 조치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한편에서는 북한에 대한 제재 효과가 있었다고 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남한 기업의 피해가 더 컸다고 주장한다. 모두 사실의 조각을 담은 견해이다. 즉 남북한 치킨게임의 적대관계 속에서 양측 모두 피해를 입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5·24 조치 속에서 돋보인 것은 개성(開城)의 존재감이다. 5·24 조치는 남북한 당국간 협의·합의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남북한 국가간 연합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약화시켰다. 반면에 5·24 조치의 폭풍을 뚫고 성장해온 개성지역은 남북한 국가간 갈등에도 버텨낼 수 있는 ‘글로벌 지역’으로서의 기반을 마련했다고도 볼 수 있다.


개성공단은 2003년 남북 경제협력사업으로 시작됐지만, 개성지역의 경제적 잠재력은 예사롭지 않은 연원을 지니고 있다. 개성이 지닌 과거의 힘이 현재 개성의 부활과 서로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 조선시대의 강력한 상업 억제 속에서도 개성지역은 드러내놓고 상업 이윤을 추구한 곳이다. 개성은 조선 초부터 주민 구성에서 상인이 중심이 되었고 도시재정도 화폐경제를 기반으로 했다. 개성상인이 한국을 대표하는 상인이 된 것은 조선 후기다. 이때 개성상인의 활동은 상업 전 분야와 함께 농업·금융·제조업에 미쳤으며, 육지시장은 물론 전국적 규모의 상선 활동도 전개했다. 17세기 후반 이후 청과 일본과의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개성상인들은 의주상인(灣商), 동래상인(萊商)과 함께 국제무역을 주도하는 상인으로 성장했다. 개성상인들은 국내 상업과 국제무역에서 축적한 자본을 생산부문에도 투자해 인삼·홍삼 재배업과 광업에 진출한 바 있다.


다른 한편 개성지역은 과거와는 다른 ‘글로벌 지역’이기도 하다. 개성공단은 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노동력과 토지가 결합해 추진된 사업이지만, 이제 개성지역은 남북한 양국 정부의 힘으로부터 얼마간 자립성을 지닌 존재로 발전하고 있다.

남북한 분단체제는 각각의 지역을 국가에 강하게 결박시킨 국가간 체제였다. 근대 이후 국가간 체제는 모든 활동을 국내 영역과 국외 영역으로 구분하고 국내 국가체제를 위계제로 조직했다. 특히 북한에서는 국가와 기업이 일체화됐고 시장은 억압됐다.


그런데 어느새 글로벌화가 진행되었다. 이는 지역간 활동, 상호작용, 네트워크를 통해 국가에 의해 구획된 공간적 조직방식을 변화시키는 과정들이다. 개성지역은 국가 개입에 의한 발전방식과는 달리 기업·화폐·정보·자원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이동의 심화를 통한 발전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분단체제의 국가간 갈등을 뚫고 개성지역에 ‘글로벌 지역’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개성지역은 글로벌화한 생산망과 유통망에 연계돼 있다. 1990년대 초 이래 대다수 국가는 해외투자를 자유화하고 자국에 대한 투자를 장려한 바 있다. 대부분의 경우 1차 산품에 대한 해외직접투자는 감소하고 제조업의 투자는 증가했다. 제조업 생산공정을 초국적 차원으로 확장함에 따라 중간제품 거래가 증가하고, 신흥공업국 제조업 수출에서 다국적 기업이 중요해졌다. 개성지역의 발전은 북한이 외부의 제조업 투자를 구하게 된 흐름과 남한이 글로벌 차원에서의 생산네트워크를 발전시켜가는 흐름이 서로 만나는 지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개성지역 안에서도 네트워크 조직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행기 경제의 일반적 과제는 위계제 경제조직을 유연화·효율화하는 것이다. 개성지역에 형성된 정치·경제 조직은 종래의 위계제적 조직에 비위계제적 성격을 강화하는 네트워크화의 경향을 보이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 물론 가장 뚜렷한 조직형태는 여전히 위계제적이지만, 그 위계성의 정도는 다양해지고 있다. 개성지역 입주기업들 사이의 관계, 입주기업과 노동력 알선기업 간의 관계, 입주기업과 남북한 정부기구 간의 관계 등에서 다양한 네트워크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개성지역의 경우 정부 조직도 위계원리로만 작동될 수는 없고 여러 행위 주체들의 네트워크 형태가 개입하게 된다. 남한 측 정부기구로는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가 있는데, 통일부는 물론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등이 개입돼 있다. 북한 측 정부기구로는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이 있다.


개성지역은 글로벌화와 지역화가 동시에 진행되며 서로를 강화해주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역간·지역내 네트워크의 증대는 분단체제하에서 남북한의 국가가 각각의 영토에서 무제한적·배타적으로 공적 권력을 행사하는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제 신의주와 라선이 개성의 뒤를 이을 것이다. 새로운 한반도 경제가 다가오고 있다.



이일영 한신대 교수, 경제학
(경향신문, 2012. 5. 29.)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529211300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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