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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 자유 - 엘뤼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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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04-11 22:32 조회22,8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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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노트 위에
나의 책상과 나무 위에
모래 위에 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내가 읽은 모든 페이지 위에
모든 백지 위에
돌과 피와 종이와 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황금빛 조상(彫像) 위에
병사들의 총칼 위에
제왕들의 왕관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밀림과 사막 위에
새 둥우리 위에 금작화 나무 위에
내 어린 시절 메아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밤의 경이로움 위에
일상의 흰 빵 위에
결합된 계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중략)


파괴된 내 안식처 위에
무너진 내 등댓불 위에
내 권태의 벽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욕망없는 부재 위에
벌거벗은 고독 위에
죽음의 계단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되찾은 건강 위에
사라진 위험 위에
회상없는 희망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그 한마디 말의 힘으로
나는 내 삶을 다시 시작한다
나는 태어났다 너를 알기 위해서
너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


자유여


우리는 언제나 자유의 이름을 마음껏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모든 곳에다 자유의 이름을 써넣습니다. 11일은 모든 사람이 같은 종이 위에 자신의 자유를 적는 날. 얼마 전 봉준호 감독과 변영주 감독이 진보신당에 정당투표를 하겠다고 밝혔네요. 비례대표 1번인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 김순자씨의 건강한 이마 위에 그들의 소중한 자유를 적어 넣겠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그녀의 이마는 자유를 써넣기에 가장 희망적이고 든든한 곳으로 여겨지나 봅니다. 시어를 고르는 마음으로 저마다 사랑과 미래가 가장 빛날 수 있을 장소를 찾아봅시다. 모두 정하셨나요?


진은영 시인
(한국일보. 2012.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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