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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야권이 부진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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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03-29 14:45 조회25,8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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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부터 4·11 총선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다. 곡절 끝에 야권연대가 성사되었지만 야권이 호조를 보이는 형세는 아니다. 최근 분위기는 여당이 비상대책위를 만들어야 했던 작년 말과는 사뭇 달라졌다. 야권의 상승 기세가 꺾인 데 대해서는 자업자득이라는 말이 많다. 공천과정에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정치인들은 개인적 욕심과 각 계파의 이익만을 챙긴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간 큰 의심 없이 받아들여졌던 486 그룹과 진보정당의 도덕적 이미지는 상당히 훼손되었다. 야권 안팎에서 노선의 진보성이 도덕성이나 인격의 수준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 나온다.


도덕성과 인격의 측면은 물론이고 변화에 대한 의지에서도 야권이 현저한 우위를 보인다고는 말하기 어려워졌다. 작년 서울시장 선거는 현실에 대한 분노와 여권에 대한 심판의 구도 속에서 치러졌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4·11 총선 전략의 큰 줄기로 ‘과거와의 단절’ ‘변화와 쇄신’을 들고 나왔다. 변화 지향에서 여야의 차별성은 많이 줄어들었다. 이제는 변화를 실현시킬 수 있는 정책능력이 더욱 중요해졌다.


그런데 여권에서는 야권의 정책기조가 ‘혼란스럽고 불안하다’고 규정하면서 오히려 ‘야당심판론’을 제기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한·미 FTA 폐기를 주장하고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며 자기들의 과거를 부정하고 약속을 뒤집는 세력에게 국민의 삶을 맡길 수 있겠느냐”고 말하고 있다. 야권의 정책을 심판하겠다는 것은 총선은 물론 대선에서도 새누리당의 선거전략 기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책심판이라는 선거구도가 등장한 데에는 야권의 흥분과 실수 탓이 크다. 현재 다수 국민의 좌절과 분노는 평온한 삶이 위협받는 현실에서 나오고 있다. 이는 외부환경의 제약과 얽혀 있는 복잡한 문제로 쉽게 해법을 내놓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운동의 전략과 선거와 집권의 전략은 접근 방식이 달라야 한다. 어지럽게 엉킨 실타래를 앞에 두고 주먹을 꽉 쥔다고 해서 엉킨 실이 풀리지는 않는다.


그간 한·미 FTA에 대해서는 헌신적인 반대운동을 통해 많은 문제점이 부각되었다. 그러나 야당이 협정 폐기 운운한 것은 많은 국민들에게 무책임한 언동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경위가 어떻게 되었든 한·미 FTA는 국가간에 맺어진 조약으로 발효되었다. 그렇다면 절차를 살펴서 조약 발효로 발생하는 문제점을 더 상세히 모니터링하고 이를 수정할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책임 있는 자세이다.


개인간의 거래에서도 일방적 계약 파기는 적지 않은 문제를 가져온다. 또 FTA는 미국과의 문제만이 아니고 EU와 중국과도 관련되어 있다.열강의 힘이 몰려있는 동아시아에서 한국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이 넓지 않다는 것은 일반인들도 짐작하고 있는 일이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서도 공사를 강행하는 데에는 많은 절차적 문제가 있었고 강정마을 주민의 입장에서는 반대운동의 정당성도 충분히 가지고 있다. 구럼비 바위에 대한 환경운동 차원의 문제제기도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집권을 지향하는 정당의 정책은 국가 운영의 차원에서 군사·외교적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


지금 중국은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는 물론 서태평양과 인도양에서도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장기적인 해양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한국으로서는 전략적 모호성을 취하면서 독자적 해양 전략을 짜는 것이 이익이다. 그러나 제주 해군기지 문제는 갈등이 격화되고 정치권이 개입하는 과정에서 미국과 중국의 이해관계가 함께 걸린 관심사항으로 확대되어 버렸다. 국내의 갈등 조정 능력 부족 때문에 장기적 국가전략 형성에 새로운 환경조건을 만들고 있다.


경제문제에 대해서는 제약조건과 우선순위를 고려한 프로그램이 부각되지 않고 있다. 다수의 중산층, 자영업자, 비정규직, 청년세대에게 성장의 기회가 제한되는 상황에서 다수 국민들의 좌절감이 깊다. 야권은 재벌개혁과 부자 증세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구체성·종합성이 떨어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재벌과 부자를 정의해내는 일 자체가 어렵고, 한국의 행정·입법·사법체계는 기업집단을 규율한 경험과 합법적 수단이 부족하다. 엉성하게 손을 대면 장기 거래관계나 시장거래의 사슬을 통해 엉뚱한 피해가 나타날 수 있다. 재벌개혁은 중소기업 정책과 지역혁신 정책과 함께 가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경영학자들에게서 항상 듣는 말이 있다. 좋은 기업전략을 수립하려면 세밀한 환경분석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예로부터 병법에서는 주어진 형세를 잘 이용해야 하고 상대를 깔보면 안된다고 했다. 손자병법은 “100리 밖까지 급히 추격해 이기고자 하면 상장군(上將軍)을 잃게 되고 50리를 급히 추격해 이기고자 하면 군사의 절반밖에 도착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국가 운영을 책임지겠다고 나선 정치세력 모두 귀담아들었으면 한다.


이일영 한신대 교수·경제학
(경향신문. 2012.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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